현재 워싱턴에서는 북한과 미국이 금창리 지하시설에 대한 핵 의혹
문제로 협상을 진행중이고, 서울에는 클린턴 정부의 대북정책 조정관인
페리 전 국방장관이 내한해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한 정책 책임자들을
만나고 있다. 페리 조정관은 내년 3월까지 미국의 대북정책을 종합검토해
정책 재조정을 포함한 보고서를 정부에 제출하도록 돼 있어 이번 방한은
우리 정부의 입장을 파악하고 조율하는 과정으로 보인다.
잘 알려져 있듯이, 지금 미국 안에는 대북정책을 둘러싸고 강온 기류
가 크게 엇갈려 있다. 미 의회내의 공화당 강경파들은 더이상 북한에
끌려다녀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94년 핵위기가 고조됐을 때 `북폭론’
을 주장하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들은 대북한 중유공급 예산을 볼모
로 대북 유화책을 펴온 클린턴 행정부를 계속 압박해왔다. 페리 조정관
의 임명 자체가 미 의회의 요구에 따른 것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정부는 미 의회의 대북 강경분위기를 누그러뜨리
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해왔다. 김대중 대통령은 페리 조정관에게 한반
도 현실을 설명하면서 특히 포용정책이 현실적으로 최선의 방안임을
인식시키려 애를 썼다. 미국이 북한과 모든 현안을 일괄 타결로 협상해
야 한다고 주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이 대북 강경책으로 돌아설
경우 북한의 반발은 불을 보듯 뻔하고, 이에따른 한반도 긴장사태는 겨
우 숨통을 터가려는 경제위기 극복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초래할 것
이 분명하다. 금강산 관광사업을 비롯한 정부의 포용정책이 뿌리째 흔
들리고, 길게 보면 한반도의 평화가 위협받는 심각한 사태까지도 고려
해야 한다. 이런 뜻에서 김 대통령의 주문은 페리를 통해 미 의회 강경
파들을 견제하면서, 클린턴 행정부에 힘을 보태는 이중효과를 노리는
것으로 해석된다.
북미 협상이 진행중이지만 아직 이렇다 할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
다. 금창리 지하시설에 대한 현장접근을 요구하는 미국이나 이를 한사
코 거부하는 북한의 태도가 쉽게 바뀌리라고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러
나 협상 대표들은 한반도 상황을 냉정히 인식해야 한다. 북한은 예의
벼랑끝 전술이 미국내 강경파들의 목소리를 키우는 빌미가 되는 현실
을 직시해야 한다. 미국 역시 북한을 지나치게 밀어부쳐 퇴로를 차단하
기보다는 실리를 챙기며 물러설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줘야 할 것이다.
대북 경제제재 완화나 식량지원등 지렛대는 많이 있으며, 핵의혹 해소
뿐아니라 미사일 개발 억제 등 북한의 양보를 받아내야 할 것도 많다.
양국 대표는 얽힌 실타래를 조화롭게 푸는 역량을 발휘하기 바라며 우
리 정부는 측면 지원에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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