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금창리에 공사중인 지하시설의 핵시설 여부를 놓고 재연되고 있는
한반도의 안보위기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훨씬 심각한 것 같다. 필자는
최근 방북후 방한한 미국의 4자회담 수석대표 찰스 카트만 특사와 방북에
앞서 방한한 윌리엄 페리 대북정책 조정관을 직접 만나서 의견을 나눴다.
그 결과 필자는 북핵 문제를 보는 한-미 양국 정부의 시각에 현격한 차이가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금창리 지하시설의 핵시설 의혹에 관한 정부의 입장은 지난 11월21일
서울에서 빌 클린턴 대통령과의 공동기자회견에서 있었던 김대중대통령의
발언에 담겨져 있다. 즉 북한의 움직임에는 몇가지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 혼재해 있기 때문에 {긍정적인 면은 키우고 발전시켜가는 반면 지
하 의혹시설 접근과 사실여부 규명은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김 대통령의 안보관계 측근참모들은 {금창리 지하시설에 대해서
는 아직 핵시설이라고 단정할만 한 증거가 없을 뿐 아니라 핵시설로 판명
되더라도 완공까지는 4∼5년이 더 소요되기 때문에 지금부터 법석을 떨
필요가 없다}고 했다.
미국은 한국정부가 햇볕정책 추진의 근거로 제시하는 북한 움직임의
이른바 몇가지 긍정적 측면에 대해서는 현시점에서 시비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문제의 금창리 시설에 대한 김 대통령의 안보관계 측근 참모들의
안이한 평가에 대해서는 격렬한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미국측의 이의는
두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금창리의 문제 시설에 대해서는 핵관련 시설
로 추정하지 않을 수 없는 [강력한(Compelling) 증거]를 한국정부와 공유
하고 있으나, 한국측은 이것이 [결정적(Conclusive) 증거]가 아니라고 그
의미를 축소, 격하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한국정부는 금창리 시설
이 완공되려면 아직 4∼5년의 시간여유가 있다고 보지만, 지금 호미로 막
을 수 있는 것을 그때가서는 가래로도 막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북핵 문제를 보는 미국의 시각은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방치하면
4∼5년후에는 북한이 핵탄두 뿐 아니라 생화학 무기까지 탑재한 장거리
탄도미사일로 미국본토의 서해안을 공격할 수단을 갖게 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문제의 심각성은 미국은 이미 금창리 시설을 사실상 핵관련 시
설로 단정하고 있고 이같은 단정에 근거해서 대처하고 있다는 데 있다.
시한내에 현장접근이 이뤄지고 이를통해 금창리 시설이 핵관련 시설로
확인되거나 아니면 시한내에 현장접근을 못하게 될 때, 미국은 구체적으
로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가. 이에 관해서 한국정부는 한반도의 평화와
한국의 경제위기에 대한 배려 및 주변국가의 태도 때문에 미국이 과격한
행동은 취하지 않으리라고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김대통령과 그
의 참모들의 기대는 짝사랑일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안보정책과 한국의
대북정책이 정면으로 충돌할 때 미국이 한국의 대북정책을 위하여 미국의
안보정책을 양보할 가능성은 적다. 특히 대포동 미사일 시험발사 이후
북한의 핵문제에 대한 미국의 관심은 단순한 [핵 비확산]의 차원을 넘어
[미국 본토에 대한 안보위협]으로 변질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앞으로 수개월안에 한반도에서 일촉즉발의 전쟁분
위기가 조성되었던 1994년 여름의 상황이 재연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
렵다. 북한의 대응 여하에 따라 우리는 [실제상황]에 대비해야 할지도 모
른다. 금강산 관광이나 경수로 사업이 영향을 받으리라는 것은 자명하지
만 사태는 거기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나라의 사활과 관련하여 위험과
기회를 공유하는 국가안보상의 중대한 위기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국회의원·자민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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