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성의 편지 1>
우리, 리얼리스트 100인에 함께 들어갑시다!


  세상에는 현실과 다른 헛소문이 떠돌곤 합니다. 리얼리즘 문학에 대한 괴담도 그 중 하나입니다. 벌써 십여 년 동안, 여러 평론가들이 거듭해서 사실주의 문학의 죽음을 선언해 왔습니다. 진실보다는 자신이 세운 가설을 믿는 그들은 여전히 대중들에게 읽히는 것이 사실주의적인 작품들이라는 사실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은 관념적이고 사적인, 실험적인 작품들이 한국문학의 주류가 되었다고 진단하고, 그런데 도무지 이런 작품들이 팔리는 기색이 없으니까 이제는 문학은 죽었다고 과감히 선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을 죽었다고 진단하는 의사는 당장 돌팔이로 매장될 텐데 멋대로 문학 전체의 죽음을 언도하는 평론가들은 교수로, 학장으로 승승장구하니 참 요상한 세상입니다. 그들이야말로 80년대 후반기 겨우 십여 편의 장편 노동소설이 나왔을 때, 마치 노동문학이 한국 문학판을 점거한 듯 호들갑을 떨던 사람들이었음을 생각하면 새삼스러운 일도 아닙니다만, 그들이 오늘날 한국 문단의 거의 모든 문학상과 출판사를 장악하고 자신들이 세운 가상의 잣대에 맞지 않는 작품들을 걸러내느라 열심인 꼴을 보면 혐오스럽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오늘 한국 문학의 진정한 문제는 평론가들의 요설이나 출판사의 상업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작가들 자신에 있습니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가진 무수한 독자들이 기다리고 있음에도 써내지 못하는 우리 작가들의 문제라고 봅니다. 요즘 문학상 응모작의 절대다수는 관념적이거나 사적인 글들로, 사회와 역사에 대한 고찰이 들은 좋은 작품을 발견하기는 매우 힘든 게 사실입니다. 설사 좋은 작품이 있다 해도 응모작의 주류인 관념주의적인 작품들 중에서 하나를 뽑겠지만, 진보적 이념을 가진 작품들이 대중에게 다가갈 만한 흡인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불특정한 특정 다수가 아니라, 적어도 인권과 민주주의에 관심을 가진 30% 정도의 진보적인 대중의 사랑조차 받지 못한다는 것은 심각한 결함입니다.   이는 명백히, 독자들을 흡인하지 못한 작가들의 능력의 한계이거나 혹은 판단의 잘못입니다. 별로 해보지도 못한 노동문학의 실패가 준 충격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스스로 사실주의 문학을 부정하거나, 섹스나 폭력 같은 상업적인 기법들을 동원하면 읽히지 않을까 하는 얕은꾀에 빠져버리거나, 아니면 자기연민에 푹 빠져 너무나 무거운 주제를 너무나 무겁고 지루하게 쓰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무엇보다도, 작가들이 너무 게으른 건 아닐까요? 아무리 돈 벌려고 시작한 일이 아니더라도 작가로 등재한 이상, 혹은 문예운동가로 나선 이상 혼신을 다 해 좋은 글을 쓰려 노력해야 하는데 그런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뛰어난 글재와 올바른 가치관을 가진 시인, 소설가들이 생활을 이유로, 신변잡사들을 핑계로 거의 아무 작품도 쓰지 않고 술에 묻혀 세월을 보내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문학의 현실에 대한 장황한 진단을 하기 위해 이 편지를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나 자신을 포함한 우리 리얼리즘 작가들을 질타하기 위해 시작한 것도 아닙니다. 어떤 위대한 개인도 그것을 밑받침해 주는 토대가 없으면 일어설 수 없다는 점을 말하고 싶을 뿐입니다. 유구한 한옥의 전통 속에 부석사 무량수전이 만들어지고, 석조건물의 전통 속에 콜롯세움이 만들어집니다. 에디슨이 조선 땅에서 태어났다면 뛰어난 대장장이에 불과했겠지요. 오늘의 문학 풍토 속에서 진정으로 인간과 사회에 빛이 되는 작품을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지리멸렬하게 무너져가는 진보적 리얼리즘 작가들이 활동할 공간을 만들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저급한 문학풍토에 치어 자포자기하고 있거나, 정도를 버리고 새로운 길을 찾아보겠다고 나섰다가 진흙수렁에 빠져있거나, 아니면 열의는 가지고 있어도 경험이 부족한 사람까지 포함하여 이 땅에 진정한 민주주의와 인권과 평화가 자리 잡기를 바라는 실천적 작가들이 하나가 되어 서로서로를 격려하고 가르치고 배우고 힘을 모아 싸워나가는 조직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이를 토대로 다시 활발한 작품 활동이 이뤄진 바탕 위에 우리 중의 누군가는, 혹은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역사에 길이 남을 좋은 작품을 쓸 수 있겠지요.        그렇다고 100인의 리얼리스트가 단순한 자조 단체인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만나는 그 자체가 이미 관념주의 문학에 대한 경고이며 이 땅을 지배하려드는 불의의 세력과 사상에 대한 선전포고입니다. 민족문학이라는 이름 아래 오만 잡다한 경향이 집합되어 있는 진보문학 진영과의 차별화입니다. 명백히 민중주의 문학운동의 복권이자 문학의 현실 참여에 대한 재 선언입니다. 따라서 저는 기왕에 리얼리즘 문학을 했다 해서, 명망이 있거나 연배가 높다 해서 가입을 권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70년대에 출판된 한국문학전집에 이름이 오른 작가 중 우리가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아시는지요? 명망이란 진실로 하찮은 것입니다. 우리는 본인이 들어오고 싶다 해도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좁은 문을 세우고, 꼭 필요한 사람들만을 선별하고 초청하여 들여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는 자신이 발전한다는 진단 이외의 예언을 결코 허락하지 않습니다. 어제는 상상할 수 없던 일들이 오늘 이뤄지고, 또 오늘은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이 내일은 현실이 되는 것이 인간의 역사입니다. 질곡에 빠져버린 한국 문학을 되살리는 임무를 부여받은 리얼리스트 100에 우리 함께 들어갑시다. 가서, 오늘의 문학판을 뒤집어 버리고, 문학사의 새로운 장을 열어 나갑시다! 그것은 꼭 필요한 일이고, 또 가능한 일입니다. 함께 합시다!
2007년 5월 18일 안재성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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