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1. 선악과(善惡果:Tree of Good and Evil)는 무엇인가?
아버지께서는 둘째사람들을 위하여, 첫째사람들을 위한 세상과는 다른 땅을 준비하셨다. 그러므로 둘째사람들을 위한 그 에덴동산은 사람들이 현재 보고 있는, 원수가 더럽힌 이 땅보다, 또한 처음에 첫째사람들을 위해 창조된 그 땅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고 계획을 하시니, 에덴동산은 두 명의 사람과 각종 짐승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크기였다. 아버지께서는 둘째사람들을 위하여 셋째하늘의 지성소와 성소에서 흘러나오는 생수와 포도주, 젖과 꿀을 상징하여, 그 안에 그 네 강을 그대로 두셨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둘째사람의 범죄 후 그 에덴을 땅속으로, 또한 둘째하늘로 옮기셨으나,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자들은, 사람들을 자신의 뜻으로 이끌고자 원수가 더럽혀놓은 문명발생지의 4대강을 숭배하며, 심지어 죄악의 도시인 갈대아 우르에 있는 그 두강이 에덴의 네 강 가운데 둘이었으며, 그러므로 에덴동산은 그곳에 있었다는 어리석은 추측을 하고 있다.
아버지께서는 네 강뿐만 아니라, 동산의 곳곳에 각종 실과를 맺는 나무들을, 둘째사람들을 위하여 심어 놓으셨으며, 동산의 중앙에는 생명나무의 실과를 맺는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들도 심으셨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에덴동산을 완벽하게 준비하신 후, 아들을 통하여 둘째사람들을 창조하시고, 그리스도의 모양인 그들에게 자신의 영을 주시므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이 되도록 하셨다.
그런데 사람은 아버지의 창조의 계획에 따라 자신의 마음이 원한다면,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생명을 이룰 수 있다. 반대로 자신의 마음이 원한다면, 살고자하는 마음을 버리고, 사망으로 향하는 죄와 불의와 허물들을 이루어 갈수도 있다. 그러므로 그 동산 중앙의 두 나무는 사람의 몸과 혼의 중앙인 마음 안에 심겨져있는 것이다.
사람에게 두 마음이 있다는 것은, 사람은 선할 수도 있으며, 동시에 악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사람은 오직 보고, 느끼고, 향을 맡고, 맛을 보며, 만지며 생각을 한다. 그리고 이 육적인 것들의 선함을 베풀고자하며, 그것을 선하게 본다. 예를 들어 가난한 사람을 보고 불쌍한 생각이 들어 자신에게 있는 것을 나누어 다른 자를 돕거나, 자녀들에게 육적인 좋은 것을 준다. 그러나 그 사람의 도움을 받은 사람과 그 사람을 도운 사람이 그 육적인 도움을 주고받은 것을 통해 영원히 살지는 못한다.
이와 같이 썩어져버릴 것으로 돌아가 버리는, 사람의 선함은 오직 육신을 위한 선함이며, 그러므로 열매 없는 그것에는 선한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육신이 하루를 더 살며 죄를 이루고, 그 죄의 형벌을 영원히 받는 것보다, 육신이 하루를 덜 살더라도 선과 의를 이루어, 선하고 기쁜 생명을 영원히 얻는 것이 훨씬 나은 것이다.
하지만 거듭난 자라 할지라도 자신과 다른 자들의 육이 아닌 영을 불쌍히 여기지 않는다면, 영원한 선을 멀리하고 썩어질 선을 따르게 되어있다. 또한 사람은 자신과 다른 사람을 가만히 바라보며, ‘사람이 선하면 얼마나 선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과, ‘사람은 악해지면 한없이 악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2. 악은 왜 생기며, 그 악의 뿌리는 누가 심었나?
사람은 악이 언제, 왜, 생기는지를 깨달아야한다. 악은 자기를 위해 다른 사람을 해치기 위해 생긴다.
예를 들어 놀부는 아무런 잘못 없는 자기의 동생을 내쫓았다. 자기 혼자 부모의 재산을 다가지고자하는 욕심을 품고, 다른 사람을 해친 것이다. 심지어 죄 없는 짐승의 다리를 일부러 부러뜨렸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 그랬던 것이다.
악은 또한 나의 부끄러움보다는 상대방의 부끄러움을 더욱 드러내며 생긴다. 사람들은 큰 죄를 저지른 사람을 보고 손가락질하며, 그의 부끄러운 허물을 대중매체에 연일 드러낸다. 또한 그것을 보고 덩달아 정죄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렇게 행하는 것은 자신과 다른 영혼의 죄를 책망하고자함이 아니요, 자신과 다른 영혼의 거룩을 이루고자함도 아니다. 오직 남의 부끄러움을 열심히 드러내므로 자신의 안에 있는 그 동일한 죄를 숨길 수 있으며, 또한 그렇게 하여 자신의 의로움과 거룩함을 드러내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때 자신의 마음 안에 오히려 강한 악이 생긴다는 것을 깨닫고 돌이켜야한다.
만일 아버지께서 에덴동산 중앙에 그 두 나무를 두셨다면, 또한 사람의 마음 안에 그 두 마음이 심겨져있다면, ‘아버지께서는 악을 계획하신 것이 아닌가?’, ‘원수를 에덴동산으로 허용하시므로, 악이 발생토록 하신 것은 불의하신 것이 아닌가?’ ‘사람이 처음부터 오직 선만을 행하도록 하실 수는 없으셨나?’하는 의문을 품을 수 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둘째사람을 창조하실 때 오직 자신과 같이 선하게, 또한 거룩하신 영을 주시어 거룩하게 창조하셨다. 그렇다고 하여 사람이 로봇처럼 무조건 아버지의 말만 듣고, 자신이 하기 싫어도 선만을 행하도록 하신 것은 아니셨다. 오히려 자신이 만일 선을 원치 않고 악을 원한다면, 그것을 따르며 취할 수 있는 마음을 주셨다. 바로 이 마음을 가지고 원수와 둘째사람인 아담이 타락한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 타락했을 때, 원수의 죄악의 나무뿌리가 비로소 사람의 마음에 심겼으며, 그 어두운 굴을 통해 악이 자유롭게 들락날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선을 사모하는 자는 아버지께로 나와, 말씀에 순종하며, 점점 선해지며, 선을 이루게 되어있다.
이와 같이 아버지께서는 악을 계획하시거나, 사람의 마음을 강제로 조종하시지 않으신다. 오히려 선하고 거룩하게 창조하신 후에는, 이제 각자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품고 행할 수 있도록 자유를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에 순종하는 거룩한 자녀를 얻고자, 아버지께서 두 나무를 계획 하신 것은 의로우시고 선하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자들은 아직도 선하시고 거룩하신 아버지를 욕하고 저주하고 있다.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의 존재를, 혹은 죄의 심판과 형벌이 있음을, 모르거나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 악을 원하기 때문이며, 오직 자기의 유익만을 생각하며 따르기 때문이다.
3. 택할 수 있는 아버지의 선하심
그렇다면, 선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결국 모든 선한 것은 사람이 아닌 오직 의롭고 거룩하신 아버지께로부터 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 자기의 유익과 악을 원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말씀을 따를 때 그리스도처럼, 또한 아버지처럼 선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아담과 하와는 타락하기 전에는 오직 아버지의 말씀만을 들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아버지와 같이 선했으며, 아버지와 같이 선한 것만을 따랐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마음에 있는 원함과 자신의 눈에 선하게 보이는 것을 따라, 그 선악과를 취했다. 그러므로 그것은 아버지의 선을 따르지 않은 것이며, 그 후로는 점점 더 자신을 따르므로, 점점 더 아버지의 선함을 따르지 않았다. 그들은 그렇게 자신이 선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따랐으니, 결국 자신에게 있는 그 한 악한 것만을 따르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말씀에 순종하신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의 변명할 수 없는 분명한 모습이다.
4. 언제 타락하는가?
타락이라는 것은 생명이신 아버지와 멀어지는 것을 뜻한다. 물론 아버지께서 말씀하신대로 심판하시어 쫓아내시는 것이나, 두 나무를 이해한 사람들은, 스스로의 마음이 원했던 대로 자신이 아버지를 멀리 떠나는 것이라는 것과, 아버지께서는 그들의 마음이 원하는 대로 심판을 내리시는 것임을 깨달을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은 또한 종들은 자신의 자리와 주어진 것에 만족과 감사를 하지 않고, 더 높은 자리와 더 좋은 것을 원할 때 타락을 하게 된다. 즉, 말씀에 기록된 대로 욕심은 말씀에 불순종하는 죄를 낳고, 욕심을 품고 스스로 타락한 그 죄는 아버지와 멀어지는 사망의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원수는 아버지의 가장 높은 그 120종의 한명으로 있는 것보다, 그 아들의 자리와 심지어 그 아버지의 자리를 차지하기 원했으며, 아담도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아들로 있는 것보다, 자기가 아버지보다 더 높은 자리에 있기를 원해 타락한 것이다. 그러나 그만한 의와 거룩이 없는 자가 그 자리에 앉는다면, 다른 모든 피조물들에게 어떠한 악한 영향을 끼칠지 쉽게 깨달을 수 있다. 또한 그 의와 거룩에 이르는 땀과 눈물과 고통과 피를 흘리지 않은 자에게, 혹은 덜 흘린 자에게 더 높은 영광이 주어지는 것은 불공평하고 불의한 것이다. 그 누구도 그것을 의롭거나 거룩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아버지께서는 누구든 이처럼 원수와 아담 같이 욕심을 가지고, 자신과 다른 영혼을 타락케 하는 것을 사망으로 이끄는 죄로 여기신다. 그리고 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마음에 품은 그것을 심판하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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