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퍽거리는 시장바닥, 초겨울 찬 바람을 보자기로 감싼 아이들이 속살을 드러낸 채 맨발로 시장바닥을 헤매고 다닌다.
초점없는 눈길이지만 진흙바닥에 떨어진 음식찌꺼기를 볼 때는 잽싸기 짝이 없다. 국수가락을 집어넣는 아이, 생선가시를 열심히 빨아먹는 아이, 시궁창을 헤매는 아이…. 20일 밤 KBS – TV ‘일요스페셜’ 에 방영된 ’98년 지금 북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를 시청한 사람이라면 동정을 넘어선 충격
과 경악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북한의 식량사정이 어렵다는 소식을 익히 들어 왔지만 북의 내부 실정이 이 지경에 이르렀나 하는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다. 비디오 촬영 현장을 밝히지 않아 특정지역의 특수사정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95년 식량사정 악화 이후 신의주역.청진역 등지에서 이미 ‘꽃제비’ 현상이 확산돼 골치를 앓고 있다는 북쪽 사정을 감안한다면 전국적 현상임을 감지할 수 있다.
북한에선 고아나 버려진 아이들, 소매치기로 전전하는 아이들을 ‘꽃제비’ 라고 통칭한다. 이들이 늘어났다는 것은 극심한 경제난으로 사회 유동성 인구가 증가하면서 범죄가 늘고, 이들을 통제할 능력마저 상실하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국가통제 이완현상은 여행증제도가 사실상 사문화되고 식량구입을 위한 이동이 급증하고 있다는 데서도 드러난다. 식량배급이 원만치 않으니 농민시장인 ‘장마당’ 이 서고 지방에선 의류.신발.세면용품의 극심한 부족현상을 보이고 있다.
경제난이 여기에 이르니 ‘사회주의 꽃’ 이어야 할 어린이들이 방치되고 꽃제비화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을 수용한 ‘927수용소’ 의 비참한 모습을 외국인들이 방문하는 평양의 호화 보육원과 비교한다면 북의 이중성이 어떠한지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례가 된다. 사정이 이런 형편인데도 북한 당국은 민생에 눈을 돌리지 않은 채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고 강성대국을 외치는 허장성세 (虛張聲勢) 를 부리고 있다. 과연 누구를 위한 정치고 누구를 위한 군사대국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북한 당국은 군사력강화에 열중하기보다는 먼저 민생에 눈을 돌려야 한다. 중공업 우선정책보다 경공업정책으로 주민생활 향상에 주력해야 한다. 결국 개혁.개방정책 확대를 통해 경제를 재건하고 주민생활의 편의를 도모해야 민생이 살아난다는 평범한 진실을 외면해서는 북의 경제난을 해결할 방도가 없을 것이다.
참혹한 꽃제비들의 실상을 지켜본 우리로서는 대북한 인도적 쌀지원문제를 다시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주민들에 대한 고른 분배를 보장받지 못한 상태에서 무턱대고 지
원만 할 것인가. 쌀을 보내면 잠수정을 내려보내는 변치 않는 북의 전략을 무시하고 꽃제비를 돕자는 캠페인을 벌일 수 있겠는가.
북도 이젠 햇볕정책을 선의로 수용하고 인도적 쌀지원을 실질적인 주민공급으로 이어지게 하는 변모된 모습을 보여야 남북간 실질적인 지원과 협력이 이뤄질 수 있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