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에 대한 많은 국민의 수긍에도 불구하고 잇단 북한의 도발 행위와 이에 따른 정부의 체계적이지 못한 대국민 설명 때문에 현 정부의 국가 안보 정책에 대해 불안해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거기에다 각종 군기 사건이 발생하고 국회에서는 국방부장관 해임건의안 등을 둘러싼 정치 논쟁에 몰입함에 따라 국방 정책의 범위와 수준, 그리고 관리 책임에 대한 혼돈을 낳고 있고 군의 사기는 바닥을 헤맨다. 따라서 국가 안보와 국방 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최고위 수준에서의 문제의 근원에 대한 옳은 인식과 처방이 요구되는 게 현 시점이다.
‘국가 안보 정책’이란, 대내외적인 위협으로부터 국가를 보호하고 국가 이익을 증진하기 위한 정치·외교·경제·군사적 제반 행동과 방책인 반면 에, ‘국방 정책’은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국가와 국민의 기본 가치를 보호하는 정책이다. 한편 ‘군사 정책 및 관리’란 군사력을 유지·건설하고 운영하는 측면에 한정된다. 지난 제3공화국 이래 30여년간 우리는 이 안보와 국방, 그리고 군사를 거의 동일 개념으로 취급해 왔다. 우리의 군사적 방위능력이 상대적으로 약한데다가 북한의 남침위협이 상존해 왔기에 ‘국방’은 국가 안보의 제1의 관심사였고, ‘군사’는 국방의 모든 것일 수 있었다.
그런데 90년대에 들어선 후 탈냉전적 국제 질서가 형성되어 가고, 세계화 과정이 심화하는가 하면, 국내적으로 민주주의의 공고화 과정이 진행되면서‘국가 안보 정책’과 ‘국방 정책’은 상호 일정한 구분을 요하게 되었다. ‘문민정부’는 민·군 관계와 政·軍(정·군) 관계에 대한 재정립과 일부 군 개혁을 시도했었으나, 선진형 국방 정책 체계를 마련해 놓지 못한 채‘국민의 정부’에 숙제를 떠넘긴 셈이다. 현 정부도 경제 위기 극복에 몰입할 수밖에 없었기는 하지만 대북 정책의 전환을 시도하면서 국가 안보와 국방 정책의 상대적 위치와 범위 및 수준에 대한 납득할 만한 체계화를 이룩해 놓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면 현 국방 정책 부문의 문제는 어디로부터 연유하는가. 우리의 정부형태가 강력한 대통령중심제이기에 국가 안보 및 국방 정책의 형성 및 집행의 모든 책임과 권한이 대통령의 손에 있다고 인식하는 데서 시작한다. 60년대와 70년대에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 때문에 박정희 대통령이 국방 분야
에 관한 한 개념과 철학, 그리고 실천 의지에 있어서의 전문성과 체계성이 특출했기에 문제가 안 되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의 국가 안보와 국방 부문은 대통령 개인의 총괄 능력에 의존하기에는 너무 공룡화해 있고 복잡다단하다. 거기에다 대통령이 ‘햇볕정책’ 추진을 강력히 원하는 상황에서 국방 관계 고위 책임자들은 옳든 그르든 ‘감히’ 국방 부문의 독자적 자세나 입장을 개진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달리 말하면 아직도 국방 정책 부문의 전문적 역할 분화와 그 인정 체계가 정립되어 있지 못함을 뜻한다.
그렇다면 당장의 시급한 과제는 무엇인가. 우선 대통령 수준에서의 국방 정책에 대한 명확한 개념과 범위 및 수준에 대한 정의를 국민 앞에 내놓아야 한다. 미국의 경우를 보면 대통령 명의로 ‘국가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을 공표·발간하고, 합참에서는 ‘국가 군사 전략’을 내놓는다.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하여 햇볕정책을 추진한다’는 선언적 발표에 감동받을 국민은 많지않다. 국방 정책의 명확한 지향과 체계에 대한 백서 등의 발간을 통해서 합리적 설득과 국민적 동원을 해야만 할 것이다.
다음으로 대통령과 국방부장관의 한계 역량을 보완하기 위해 국가안보회의의 대통령 보좌 기능을 강화시켜야 하며, 미국의 경우처럼 국방부장관실(OSD)과 같은 기능 체계의 도입도 고려해볼 만하다. 그리고 국방 정책의 법적 체계화를 추진해야할 것이다. 군사 관리를 위해서는 선진국의 경우처럼 ‘국방법전’이 마련되면 좋다.
민주 정부에 걸맞은 국방 정책이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역시 국회에 의한 국방 정책 과정에의 관여와 참여가 확대돼야 한다. 국회가 전문적인 국방 관계법 제정에 앞장설 수 있도록 되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만이 국민의 국방에 대한 관심과 자주적이며 합리적인 의식이 고양될 수 있기 때
문이다. 선진국은 군사혁신(RMA)과 국방관리혁신(RDM)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는 이에 앞서 국가 안보와 국방에 대한 국민적 자발 의지와 확신이 더욱 필요함을 인식하고 문제 해결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할 것이다.
<김동성·중앙대 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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