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지표 호전 경기회복 기대 곳곳서 꿈틀… 증시, 부동산, 창업, 수출 98년 경제 대전망
올 한해 내내 울상을 짓던 백화점들이 웃음을 되찾았다. IMF 구제금융 이후 1년 내내 판매부진에 시달리다가 12월 들어서면서 증가세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그동안 소비자들의 소비자제로 말미암아 잠복돼 있던 소비수요가 차츰 되살아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년에도 큰 폭은 아니지만 판매증가가 꾸준히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현상은 자동차 반도체 등 일부 공산품과 항공여행권 등 서비스 분야에서도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자동차는 하반기 들어 업체마다 무이자 장기할부금융까지 해가며 판매촉진을 위해 안간힘을 썼으나 최근에는 이런 판매지원이 점차 축소되고 있다.
실물경제 흐름이 달라졌다
이렇듯 실물경제의 흐름은 최근 들어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다. 게다가 지난달에는 수출도 6개월 만에 증가세를 보이면서 분위기를 북돋웠다. 때문에 정부와 경제연구소 등 주요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조심스럽긴 하지만 우리 경제의 앞날에 대한 낙관적인 시각과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 종전 같은 비관과 걱정은 눈에 띄게 사라졌다. 정부의 싱크탱크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KDI는 지난 10월에 내년 우리 경제성장률을 마이너스 1.5%로 내다봤다. 그러나 12월16일 발표한 경제전망치는 2.2%였다. 정부가 내놓은 전망치 2.0%보다 높은 것이다. 한국금융연구원이나 삼성 대우 등 주요 민간경제연구소들은 지난 10월 내년도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 1∼2%에 불과할 것이라고 전망했으나 최근에는 플러스 2.0% 안팎으로 수정했다. 재경부 관계자는 “지난 9월 2.0%의 전망치를 내놓았을 때만 해도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으나 요즘은 그런 비판이 크게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국내보다 더 낙관적인 전망도 있다. 미국의 JP모건은 이달 초 “한국경제가 이미 회복단계에 들어섰다”면서 내년도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을 4%로 예측했다. 공식적으로 발표는 하지 않았지만, 내부적으로는 6%선까지도 전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낙관적 전망의 가장 유력한 근거가 되는 것이 제조업 재고동향이다. 기업의 재고부담을 나타내는 재고율이 지난 10월 102.1로 떨어져 지난 96년 2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최고로 높았던 지난 2분기의 120.1에 비해 상당히 떨어진 것이다. 제품을 생산해도 팔려나가지 않아 기업이 생산을 계속 줄여온 결과 이제는 생산하는 즉시 팔려나갈 만큼 재고가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올 한해 동안 제품재고 감축규모가 25조원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JP모건도 “한국기업의 재고조정이 거의 끝나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일부 품목은 재고부족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처럼 재고가 거의 바닥에 도달했으므로 생산이 늘어나게 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별로 없다. 한국은행의 이성태 조사부장은 “최근의 재고동향을 볼 때 내년부터는 경기가 자율반등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금리하락 계속 경기회복 기대 부추겨
연초부터 일관되게 추진된 구조조정이나 금리인하도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를 뒷받침하고 있다. 금융기관 구조조정을 통해 부실금융기관을 퇴출시키고 은행 자본금을 확충한 데다 5대 재벌까지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착수함으로써 불확실성을 대폭 제거했다고 재경부 관계자는 밝혔다. 이에 따라 신용경색이 완화되고 금리가 크게 내려가는 등 금융시장도 한층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금리는 최근 콜금리가 연 7% 이하로 내려가고, 회사채금리도 연 7∼8%에 형성돼 장단기금리가 모두 사상 최저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물가가 안정될 것으로 전망되고 따라서 금리는 내년 들어 더 내려갈 가능성이 크다. 재경부는 이미 콜금리를 5% 안팎으로 낮추겠다고 공언했다. 한국은행도 조금 신중하기는 하지만 더 낮출 수도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최근의 주가상승도 금리 추가하락의 가능성을 예고한다. 주가가 상승함으로써 대기업들이 유상증자 등을 통해 직접 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고 금융기관 차입금이나 회사채 등에 대한 의존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년 1분기 중에 대기업이 회사채 발행을 대폭 줄이는 반면 유상증자는 늘릴 계획이다.
이처럼 금리가 하락하고 대기업의 차입금의존이 줄어들자 창업도 다시 활발해지고 있다. 여윳돈이 있는 사람들이 더이상 고금리의 혜택을 누릴 수 없는 반면, 소비확대에 따라 사업기회는 확대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들로 미뤄 볼 때 내년 1분기쯤에는 경기가 저점에 도달한 뒤 차츰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는 견해가 전문가들 사이에 우세하다. 다소 늦어진다 해도 상반기중에는 회복세를 탈 것이라는 전망이다. 신중론도 적지 않다. 재고조정이 완전히 끝났는지가 불투명하고, 소비나 투자가 아직 충분히 되살아나지 않았다는 견지에서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이수희 박사는 “기업의 과다재고가 대폭 축소된 것은 사실이지만 재고조정이 완전히 끝났다고 단정짓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수요측면의 뒷받침이 없으면 기업이 생산과 재고를 더 줄이려 들 것이라는 얘기다. 수요를 구성하는 소비와 투자가 충분히 회복되지 않았다는 점이 이런 신중론을 떠받쳐준다.
내수회복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소비는 기업구조조정으로 인한 실업자 증가로 크게 늘어나기가 어렵게 돼 있다. 투자 역시 설비가동률이 아직 70%선을 밑도는 데다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당분간 자제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신규투자는 가동률이 최소한 80% 이상은 돼야 하는데 조만간 그 수준에 도달할 지 속단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전경련 조사로는 내년에도 설비투자가 감소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건설투자와 민간 건축활동도 여전히 저조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 따라서 내수가 되살아나기까지는 아직 적지 않은 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내수회복이 이처럼 더디다 해도 수출만 잘되면 경기회복은 예상 밖으로 빨라지고 성장속도도 훨씬 빨라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수출이 6개월 만에 다시 증가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반가운 징후다. 특히 반도체와 자동차 등 주력제품의 수출이 최근 회복되고 있다는 사실은 고무적이다. 그렇지만 세계경제가 내년에 다소 침체되리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원화의 환율도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환율 하락이 구조조정 비용 절약에는 유익하지만, 당장 수출에는 나쁜 영향을 주기 쉽다. 일본 엔화나 중국 위안화의 동향도 우리에게 반드시 우호적으로 움직여주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러니 수출 역시 크게 좋아진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요인이 많다. 오히려 물량면에서는 줄어들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LG경제연구원의 이종원 박사는 “수출이 크게 늘어나지 않는 한 내년도 우리 경제의 성장률이 크게 높아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내년중 우리나라는 극도로 위축됐던 민간소비가 재개되고 수출의 소폭 증가로 약간의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서는 데 그칠 것이라는 얘기다. 말하자면 양복구입을 미뤄오던 사람들이 내년쯤 값싼 것으로 한벌쯤 장만하는 정도에 그치는 셈이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기업의 재무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늘어난 실업자를 흡수하는 데도 불충분하다. 줄어든 개인소득을 다시 끌어올릴 여지도 별로 없다. 다만 개인이나 기업이 한숨을 돌릴 수 있도록 여건이 다소 개선될 뿐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이수희 선임연구원은 “내년 한해 조정기를 거치고 나서 2000년쯤이나 돼야 잠재성장률 수준인 5%대의 성장률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이러한 회복은 경제구조의 질적인 개선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금융연구원의 최공필 박사는 “수치상으로 경제상황의 호전이 나타나고 업종이나 부문에 따라 흥청대는 경우도 있겠지만, 중장기적 불안요인은 아직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올 한해 구조조정을 열심히 해왔다고 하지만 기업수익성이 여전히 낮고 대외신인도 회복은 쉽사리 이뤄지지 않고 있다. 특히 일부 부실징후 대기업들의 연착륙이 안 된다면 모든 것이 허사로 돌아갈 수도 있다. 최근 금리하락과 주가상승으로 생사여부가 불분명한 기업의 채산성이 개선되고 회생가능성이 커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부실징후 기업들이 회생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섣부른 기대 ‘거품’ 다시 키울 수도
이럴 때 정부는 달콤한 유혹에 빠지기 쉽다. 성급하게 경기를 부양하려는 나머지 인플레 유발적인 정책을 쓰기 일쑤다. 금융긴축 완화로 돈이 많이 풀려 있는 터에 이런 정책이 남발될 경우 물가안정을 해치고 실물자산의 거품을 다시 부풀어오르게 할 것임은 불문가지다.
금융연구원은 최근 잇따라 해온 금융긴축 완화의 영향으로 내년 물가상승률이 올해보다 높은 5.7%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주택을 사고난 뒤 1년 이상만 보유해도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게 한 최근의 조처는 이런 위험한 정책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단순히 수요자의 구매력을 도와주는 차원을 넘어서 돈벌이만을 위한 부동산 거래를 부추기고, 이를 낮은 금리로 뒷받침하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의 이성태 조사부장은 “우리 경제의 거품이 아직 다 빠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수요확대에만 집착하면 곤란하다”면서 “지금은 금리환율 등 가격변수를 안정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차기태 기자
도움말 주신 분: 이성태(한국은행 조사부장) 김대유(재정경제부 종합정책과장) 이종원(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이수희(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최공필(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 임준환(한국금융연구원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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