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주 이타카(Ithaca)에 있는 코넬대학교(Cornell University)의 카이 파이(Chi Pi) 사교클럽 건물

나는 코넬대학교의 한 남학생 사교클럽을 잠시 경험한 적이 있다. 고등학교 졸업반 때였다. 예전에 같은 고등학교에 다녔던 친구를 따라 주말 동안 그 사교클럽 숙소에 머물렀다. 내가 소파에서 자고 있는데 그 친구의 이른바 ‘형제들’이 나를 끌어내 바닥에 눌러 꼼짝 못 하게 했다. 그들은 내 셔츠를 걷어 올리고 배 위에 개 사료를 쏟아부었다. 그런 다음 사교클럽에서 키우던 마스티프를 불러와 개에게 “나를 먹으라”고 부추겼다.

그 옛 친구 돈 샤르티에(Don Chartier)는 나를 돕기보다는 ‘형제들’의 환심을 잃지 않는 쪽을 택했다. 이 경험 때문에 나는 코넬대학교에 지원할 마음을 접었고, 함께 크로스컨트리와 육상 경기에 나갔던 고등학교 친구와의 우정도 끝났다. 그리고 남학생 사교클럽을 깊이 혐오하게 됐다.

물론 그런 장난은 최근 보도된 한 여학생의 ‘집단 성폭행 사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 역시 모든 남학생 사교클럽에 전류처럼 흐르는 가학성과 학대의 문화와 맞닿아 있다.

이런 남성 집단에 들어가려면 신고식이라는 이름 아래 괴롭힘과 모욕을 견디고 인간적 존엄까지 내놓아야 한다. 이런 신고식은 위계질서에 맞설 만큼 자존감과 독립심이 있는 사람을 걸러낸다. 조직에 순응하고 복종하는 사람만 남게 만드는 것이다. 일종의 여과 장치다. 사교클럽의 ‘형제들’은 스스로 걸러져 모인 사람들이다. 공개적인 모욕에 맞설 힘이 있고, 새로운 신입생이 들어올 때마다 같은 모욕을 되풀이하는 데 반대하는 사람은 결국 떠난다.

미국 전역의 남학생 사교클럽에서는 강간과 성폭행 의혹이 끊이지 않는다. 사교클럽에 가입한 남성은 그렇지 않은 남성보다 강간을 저지를 가능성이 세 배 높다는 조사도 있다. 사교클럽 회원들과 대학 행정 책임자들이 이런 범죄의 실태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침묵의 문화가 이를 감춘다.

코넬대학교 총장 마이클 I. 코틀리코프(Michael I. Kotlikoff)는 대학이 집단학살에 항의하는 학생들은 퇴학시키면서, 강간을 저지른 학생들은 형사 기소를 피하도록 보호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가운데, 늘 이런 때 나오는 ‘전형적인 성명’을 발표했다. 모호한 개혁 약속이 잔뜩 담긴 성명이었다. 그는 지금쯤 거액 기부자들을 상대로 사태 수습에 바쁠 것이다. 그중 적지 않은 이들이 남학생 사교클럽 출신이다.

코틀리코프와 이 일에 관련된 모든 행정 책임자는 해임해야 한다. 강간 혐의를 받는 사람들은 형사 기소해야 한다. 대학이 비밀에 부치는 사교클럽 징계 조사 결과도 공개해야 한다. 성폭행에 가담한 것으로 드러난 사교클럽은 폐쇄해야 한다. 아마 대부분이 해당할 것이다. 성폭행을 저지른 사교클럽 회원들은 그 일이 몇 년 전에 벌어졌든 재판을 받아야 한다. 이것이 최소한의 조치다. 그러나 코넬대학교가 이 최소한조차 실현할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미국의 대학은 교육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학문과 탐구, 자기비판, 도덕적 자율성, 예술적이고 난해한 표현을 추구하는 태도, 다시 말해 윤리와 창의성, 사상의 세계를 공격한다. 대학은 부유한 동문들의 요구에 영합하고, 이들은 교육과정을 검열하며 교수와 프로그램을 축출한다. 대학은 남학생 사교클럽에 뿌리내린 엘리트주의와 인종주의, 경직된 성 역할 규범을 지속시킨다. 순응과 불관용의 문화다.

미국의 교육은 집단적 도취를 향한 무분별한 추구로 변했다. 학생들은 자존감과 자아실현을 개인의 초월에서 찾기보다 군중과 집단적 감정, 지위에서 찾도록 배운다. 부와 특권, 권력을 찬양하는 문화에 고개 숙이지 않는 사람은 별난 사람 취급을 받으며 밀려난다.

지식의 이름으로 지식을 공격하는 전쟁이다.

C. 라이트 밀스(C. Wright Mills)와 앨런 울프(Alan Wolfe)는 ⟪파워 엘리트⟫(The Power Elite)에서 이렇게 썼다. “‘지식’은 이제 더 이상 널리 이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지식을 하나의 도구로 본다. 권력과 부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지식은 권력과 부를 얻기 위한 도구로 평가받으며, 물론 대화 중에 뽐내기 위한 장식품 역할도 한다.”

다트머스대학 전 총장 제임스 O. 프리드먼(James O. Freedman)은 학교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엘리트주의와 백인 남성의 특권의식, 남학생 사교클럽과 미식축구 문화를 상대로 싸웠다. <다트머스 리뷰>(The Dartmouth Review)는 유대인이었던 프리드먼을 히틀러로 묘사한 표지 기사를 실었고, 그가 다트머스에서 전통적 보수주의를 없애기 위한 ‘최종 해결책’을 지휘하고 있다고 썼다.

프리드먼은 총장 취임사에서 학교 구성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남들과 어울리는 데서가 아니라 홀로 시를 쓰고, 첼로를 익히고, 수학 문제를 풀고, 카툴루스(Catullus)를 번역하는 데서 가장 큰 기쁨을 느끼는 독특한 학생들을 더 적극적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우리는 ‘남들과 다른 북소리에 맞춰 걷는’ 학생들이 다트머스에서 편안함을 느끼게 해야 한다. 지적·예술적 삶에 대한 열정이 너무도 강렬해, 프로스페로(Prospero)가 셰익스피어(Shakespeare)의 관객들에게 상기시켰듯 어떤 사람에게는 도서관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넓은 공국”이 될 수 있음을 아는 창의적인 고독한 이들과 대담한 몽상가들을 위한 학교가 되어야 한다.“

그 싸움은 쓸쓸하고 외로운 싸움이었다. 다트머스는 결국 변화하지 않았다.

다트머스대학의 사교클럽 회원이었던 앤드루 로스(Andrew Lohse)는 <롤링 스톤>(Rolling Stone)에 실린 한 기사에서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그는 자신이 겪은 신고식과 학대를 공개적으로 폭로했다는 이유로 학생들뿐 아니라 대학 행정 당국에게서도 따돌림을 당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내가 속했던 사교클럽은 신입 회원들에게 정식 ‘형제’가 되려면 이런 일을 하라고 했다. 구토물과 소변, 대변, 정액, 썩은 음식물이 섞인 어린이용 풀장에서 헤엄치기, 구토물로 만든 오믈렛 먹기, 식초를 컵째 들이켜기 — 한 번은 이 때문에 한 신입 회원이 피를 토하기도 했다 — 동료 신입 회원의 엉덩이 골 사이로 부은 맥주를 받아 마시기 등 온갖 학대가 이어졌다.”

그는 다트머스의 남학생 사교클럽 17곳, 여학생 사교클럽 11곳, 남녀 혼성 사교클럽 3곳을 비판했다. 당시 전체 학생의 약 절반이 이런 조직에 속해 있었는데, 로스는 이들이 “만연한 신고식 가혹행위와 약물 남용, 성폭행”의 문화를 지속시키는 것은 물론, 캠퍼스의 사교 생활을 지배하는 “도취적인 허무주의”까지 퍼뜨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다트머스에서 내가 배운 것 가운데 하나, 그리고 많은 다트머스 남학생의 심리에 하나의 선례가 되는 사실은, 선한 사람들도 아무런 이유 없이 서로에게 끔찍한 짓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교클럽 문화는 이 대학이 안고 있는 인간적·문화적 병리의 핵심에 자리하고 있다.”

미식축구 프로그램이나 그리스식 사교클럽에 책임을 묻으려는 어떤 시도도 대학에 명성과 힘을 부여한다고 여기는 집단 정체성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인다. 이런 조직을 의심하거나 비판하는 사람은 모두 적으로 취급한다.

버나드 레프코위츠(Bernard Lefkowitz)는 ⟪아워 가이즈: 글렌리지 강간 사건과 완벽한 교외의 비밀스러운 삶⟫(Our Guys: The Glen Ridge Rape and the Secret Life of the Perfect Suburb)에서 이런 문화가 얼마나 병들어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레프코위츠는 1989년 뉴저지주 글렌리지에서 고등학교 운동부 학생들이 발달장애가 있는 17세 소녀를 지하실로 유인한 사건을 다뤘다. 학생들은 빗자루 자루와 야구방망이를 이용해 소녀를 성적으로 학대했다.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자 지역사회는 피해자가 아니라 ‘우리 아이들’을 감쌌다.

코넬대 사교클럽 회원들에게 약물을 먹고 성폭행당했다고 주장한 여성은 민사소송을 취하하라는 “수차례의 협박”을 받았다고 그의 변호사 토머스 지우프라(Thomas Giuffra)가 밝혔다.

기업들은 미식축구 선수와 남학생·여학생 사교클럽 회원을 가장 좋은 채용 후보로 본다. 학생들은 팀에 들어가고, 도덕적 자율성을 포기하고, 개인의 존엄을 훼손하는 행위를 받아들이고 또 직접 수행하며, 자신들에게 반대하거나 자신들과 다른 사람을 경멸하도록 길들여진다. 탐욕과 자기과시를 중심으로 한 유치한 자기애로 삶을 규정하고, 자신이 목격하거나 가담한 범죄에 대해서는 침묵하도록 배운다.

바로 그것이 기업의 윤리다.

지배 엘리트는 그리스식 사교클럽과 대학 스포츠 프로그램을 나라를 약탈하는 비도덕적 투기꾼과 은행가, 기업 권력자들을 길러내는 훈련장으로 본다. 목표는 개인이 자신을 집단 속에 완전히 묻고, 아무런 의심도 없이 기술적·직업적 능력을 체제에 봉사하는 데 쓰도록 훈련하는 것이다.

이처럼 순응을 강요하는 힘은 인문학을 적대한다. 인문학은 학생들에게 기존의 전제와 구조를 의심하도록 가르치기 때문이다. 인문학은 학생들이 삶의 의미를 찾고 윤리적 기준을 세우도록 자극한다. 그리고 기업과 군대가 주입하는 권력과 이윤에 대한 맹목적이고 도구적인 복종에 맞서도록 한다.

교육의 목적은 학생들에게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데 있지 않다.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데 있다. 도덕적으로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다.

이번에 드러난 성폭행 사건은 코넬대학교에 대한 처절한 고발이자, 동시에 우리 모두에 대한 처절한 고발이다.

[출처] Thoughts on the Mass Rape at Cornell University

[번역] 이꽃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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