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분업 연기론 펴는 보건복지위 위원들, 알고보니 병원장·제약회사 사장 출신

지난 12월16일 헌법재판소에는 눈길을 끄는 헌법소원이 한건 접수됐다. 시민단체인 참여민주사회시민연대(참여연대)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의원 10명의 상임위 배정처분이 잘못됐다며 국회의장을 상대로 낸 헌소였다. 한마디로 말해 ‘자격없는’ 의원들이 ‘있어서는 안 될 자리’에 배정됐으니 바꿔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참여연대가 이들 의원의 자격을 문제삼게 된 계기는 이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의료계의 숙원사업인 ‘의약분업 내년 실시’를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과다책정된 보험약값 1조원 넘어

의약분업은 ‘처방은 의사에게, 조제는 약사에게’라는 의료원칙을 위한 첫걸음으로, 지난 63년 약사법에 명시되면서 약의 오·남용을 방지하고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대전제로 받아들여져 왔다. 그러나 실시가 계속 미뤄져오던 의약분업은 94년 개정 약사법에 99년 7월 안에 시행한다고 명시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문제는 보건복지위 소속 의원 16명 가운데 참여연대가 문제삼은 의원 10명이 최근 “준비 부족, 환자 불편”을 내세우며 “2년 연기”를 위해 법을 개정하려는 데서 불거졌다. 참여연대가 밝힌 이들 의원의 현업을 보면 “2년 연기” 주장의 배경을 단번에 알아챌 수 있다. 이들 가운데 한나라당의 김찬우 박시균 황규선 황성균 정의화 의원 등 5명은 현직 병원장이다(정의화 의원은 헌법소원 이틀 뒤인 12월18일 과학기술위원회로 자리를 옮겼다). 또 국민회의 김명섭 김병태, 자민련 어준선, 한나라 오양순 김정수 의원 등 5명은 약사출신 또는 제약회사 사장이다. 의약분업 실시여부에 따라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극명하게 달라지는 처지에 있는 것이다. 물론 대한의사협회와 병원협회, 약사협회 등 압력단체의 로비가 있었음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권이 달린 문제이다 보니 이들에게는 당론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국민회의 총재인 김대중 대통령은 지난 12월3일 “의약분업의 내년 7월 실시에 차질이 없도록 하라”고 내각에 지시했다.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도 최근 시민단체의 방문을 받은 자리에서 “내년 7월 실시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그래도 이들은 흔들리지 않는다. ‘의약분업 연기론’은 지난 12월10일 보건복지위 법안심사소위에서 김명섭 정의화 의원이 대한의사회 대한약사회 등이 제출한 연기 청원을 긴급의제로 올리면서 구체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연기론을 주장하는 근거는 “준비가 덜 됐다”는 것이다. 지금같은 시스템으로는 의약분업에 따른 효과보다는 부작용이 크다는 것이다. 환자가 처방을 받고 다시 약국을 찾아야 하는 불편을 겪는 데다 지금의 보험수가로는 의료계의 타격이 크기 때문에 조정해야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일견 타당한 측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격’이라는 반응이다.

더구나 항생제 사용 세계 1위인 우리나라의 의약품 남용현실에 비춰보면 의약분업 연기론은 설득력이 전혀 없다고 할 수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감기환자의 70% 이상에게 항생제를 사용하고 있어 다른 나라의 30% 수준을 훨씬 뛰어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 급성호흡기감염 처방지침에 따르면 감기환자에게 약은 크게 필요가 없으나 우리 현실에서는 무시되고 있다. 이렇게 해서 과다책정된 보험약값이 지금까지 1조원을 넘었다는 조사결과도 나온 상태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소속 전공의 강영호씨의 설명이다. 실시 시기가 늦어도 한참 늦었다는 얘기다.

고이윤 구조 사라질까 노심초사

의약분업이 실시되면 처방은 병원에서, 조제는 약국에서만 하게 된다. 병원에서는 약을 팔 수 없다는 얘기다. 따라서 약의 조제에 따른 이윤동기가 사라지는 만큼 병원쪽의 약 남용은 줄어들게 자명하다. 약국도 처방전에 따라 조제하게 되면서 약 사용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제약회사 역시 매출이 감소하게 된다. 당연히 약을 많이 처방하면 할수록 병원과 제약회사의 매출이 높아지는 지금까지의 공동 이익구조도 자취를 감추게 되는 것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책부실장 김승보씨는 “결국 이들의 주장은 의약분업이 실시될 경우 지금까지 누려오던 고이윤 구조가 송두리째 사라질 것이라는 피해의식에 근거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의약분업 연기론’의 배경은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연기론을 주장하는 의원들도 의약분업 실시원칙에 대해서만큼은 찬성하고 있다. 다만 시기가 문제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들이 주장하는 2년 뒤인 2001년 7월은 15대 국회가 끝난 뒤다. 16대 국회에서 다시 논의하자는 얘기에 다름아니다. 의약분업이라는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지만 자기들 손으로 결정하지는 않겠다는 속내다.

이들이 연기론의 목소리를 높이는 데는 그동안 5년 가까운 유예기간 동안 제대로 제도정비를 마치지 못한 보건복지부의 무능과 태만도 한몫 하고 있다. 그동안 이곳저곳의 로비에 밀려 제대로 준비를 마치지 못한 탓에 연기론의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하지만 복지부도 이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꼴로 서두르고 있다. 대통령이 내년 실시를 거듭 밝힌 데다 김총필 총리까지 나서서 거들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김 총리는 지난 12월14일 의약분업에 대해 개혁법안이 후퇴할 경우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까지 들먹이며 내년 실시에 대한 강경입장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아직까지 ‘의약분업 연기론’은 개정안 형태로 외화되지는 않고 있다. 대한의사회와 약사회 등이 국회에 제출한 연기청원만 있을 뿐이다. 경실련 인의협 등 시민소비자단체와 보건의료단체들의 저항이 상당한 탓이다. 최근 보건복지위는 이들 단체의 저항에 따라 여론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법안의 개정문제를 내년 1월 다시 논의하기로 결정했다. 여전히 불씨는 남아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인의협 강영호씨는 “그동안 전문가집단으로 부와 명예를 향유해온 의료계는 이제 국민들을 위해 의약분업 실시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며 “만약 의약분업 실시에 대한 여론을 무시하고 내년 1월 연기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찬성하는 의원들의 정치적 생명은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성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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