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1년 전 오늘, 당시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는 노사정위원회 현판식에 참석, 3가지 약속을 했다. “정부가 먼저 고통분담한다, 노·사 모두에게 공정하게 하겠다, 모든 것은 국가경쟁력 강화에 맞춰져야 한다”
그러나 지난 1년동안 노사정위는 이같은 약속에도 불구하고 노동계에는 ‘일방적으로 고통을 전담시킨다’는, 경영계에는 ‘구조조정을 하라고 하면서도 불가피한 실업발생 책임은 재계에만 떠넘긴다’는 불만을 안겨줬다. 특히 2기 노사정위 출범 이후에는 1기 합의사항 조차 이행이 더뎌지고 계속되는 구조조정에서는 노동계 요구를 전혀 수렴하지 못한다는 비난도 받고 있다.
* ‘설거지 부대’ 전락… 사회갈등 완충역할 상실
1기 노사정위에서 정리해고제와 구조조정에 노동계의 동의를 끌어내는 한편 이에 따른 대량 실업은 정부의 실업대책으로 보완하면서 대신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는 선에서 합의했다. 하지만 합의직후부터 거의 4개월여 공전을 거듭하다 지난해 6월3일 다시 진영을 갖춘 2기 노사정위는 시작부터 어려웠다.
민주노총은 정리해고제가 남용되고 있다며 불참방침을 고수해 왔고, 참여한 뒤에도 한국노총과 함께 정부의 일방적 금융·공공부문 구조조정에 항의하며 함께 불참선언을 했다. 양 노총은 현대자동차 사태 등 몇가지 현안문제 해결에 합의한 뒤 복귀하긴 했지만 양 노총과 이뤄진 합의에 반발하며 경영계가 다시 불참선언을 하는 등 서로 ‘시소게임’을 하며 공전을 거듭했다.
더욱이 ‘사회통합적 구조조정’이라는 목표아래 운영됐던 금융산업 발전대책위, 공공부문 구조조정 특위는 수차례 회의만 거듭했을 뿐 구조조정의 원칙이나 방향 등에 대해서는 거의 노동계 목소리를 담아내지 못했다는 비난을 샀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구조조정을 하고 노사정위는 우려되는 고용문제에 대해서만 논의하는 기구냐며 ‘설거지 부대’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1기 합의사항의 이행에 대한 부분. 실업자 초기업단위 노조가입, 기업경영 투명성 제고 및 기업지배구조 개선 등의 과제는 1년여를 끌도록 해결 가닥을 잡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교원노조 합법화, 의료보험 통합 등이 국회에서 통과되긴 했지만 너무도 지리했던 논쟁 탓인지 예상됐던 큰 환대를 받지는 못했다.
* ‘빅 딜’을 할 ‘카드’가 없다
노사정위가 지지부진하자 지난해 말부터 김원기 위원장은 직접 관료사회를 겨냥, 여러차례 비난 발언을 하면서 노사정위 합의사항이 정부 정책으로 이어질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최근 김 위원장은 국민회의 회의에서 “어렵게 만든 합의가 관료사회 벽에 막혀 번번히 실패했다”고 맹비난하며 “노사정위라는 대타협제도가 붕괴될 경우 초래될 후유증을 진지하게 생각해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김 위원장은 13일 김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도 이같은 불안을 거침없이 토했고 “합의사항이 이행될 수 있도록 관계부처에 각별히 지시하겠다”는 답을 얻어내기도 했다.
당에서도 노사정위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 관계부처에 자료제출 요구권, 출석요구권을 부여하는 특별법 제정을 추진중이다. 14일 오전 열렸던 노사정위 본위원 간담회에서 이규성 재정경제부 장관은 “노사정 합의사항을 이행 점검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관계부처 장관이 모여 협의하는 자리를 만들자”고 먼저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같이 관계부처 협의를 제도화하는 등 위상강화 시스템을 만들더라도 조만간 노사정위가 정상 운영되리라고 기대하긴 힘들다. 당장 탈퇴를 선언한 민주노총은 위원장 선거도 앞두고 있어 노사정위에 참여하기 쉽지 않고, 한국노총도 민주노총 탈퇴한 상황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기가 어렵다. 재계도 노동계 유인책으로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조항 삭제 등이 논의된다면 즉각 탈퇴하겠다며 배수진을 치고 있다.
특히 올들어 계속될 공공부문 구조조정, 대기업 빅딜 등 구조조정에 대해 노사정위 틀 안에서 논의·합의, 실천할 수 있는 내용을 찾기가 쉽지 않다. 말 그대로 딜(deal) 카드가 없다.
“앞으로 기업 구조조정 위원회 등을 만들어도 고용문제 외에 달리 논의할 수 있는 내용이 있느냐”는 질문에 김 위원장은 “지난해 공공·금융특위와는 다른 형식이 갖춰여야 할텐데…”라며 고민의 일단을 털어놓기도 했다.
* 근로시간 단축, 논의 불 지핀다
노사정위는 참여 각 주체들의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더이상의 공전은 막아야 한다며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휴일·휴가제도 개선 등 논의를 공론화시킬 계획이다. 지난해 노동계가 탈퇴할 때마다 6.5 합의니, 7.23 합의니 야반도주식의 약속을 하며 노동계를 링 위로 올렸지만, 이제 그럴만한 내용도 명분도 없는 상황에서 참여해서 논의하지 않으면 불이익이 초래될 수밖에 없는 과제들을 상정, 참여를 독려할 방침이다.
그러나 이같은 논의에도 불구하고 올 상반기부터 봇물처럼 터질 구조조정 태풍 앞에서 노사정위는 한국형 ‘노사정협의체’로서 또다른 실험대에 설 것으로 보인다. 노사정위원회에게는 아직 시험이 끝나지 않았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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