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 장관과 ‘나의 칼 나의 피’

– “노동계 이해 대변 노동부밖에 없다”… 경제논리 치중 정부정책에 ‘화살’

1999.02.19

이정희 기자(매일노동뉴스)

이기호 노동부장관의 최근 발언이 심상치 않다.

얼마전 이 장관은 출입기자단과 식사를 하면서 “노동계 이해를 대변하는 부처는 노동부밖에 없다”며 다른 경제부처들의 경제논리를 비판하고 나섰다. 이 장관의 논리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노동자들인데 이를 무시하고 재계논리로만 접근하니까 (제대로) 되는 게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산업자원부 중심으로 빅딜을 추진하고 있지만 노동자들의 반발을 막지 못하자 뒤늦게서야 노동부로부터 중재에 나서달라고 요청하더라”며 출발점이 잘못됐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그는 이어 “LG반도체 중재에 내려갔던 실무자 얘기를 들으니까 직원들이 ‘왜 빅딜을 추진해야 하는지’도 모를 뿐더러 이 이유를 설명한 문서 한 장 없더랍니다”며 ‘노동’을 뺀 ‘경영’ 일색의 정부정책으로는 빅딜을 제대로 마무리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LG반도체, 삼성자동차 등에서 협상 타결 기미는 보이지 않은 채 조업중단이 계속되자 공안쪽 중심으로 ‘공권력 투입’이 초읽기에 들어갔을 때에도 이 장관은 “하루만 더 기다려보자”며 협상을 독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노동부 실무자들이 2주일여를 꼬박 투자한 결과 빅딜대상 노동자들의 고용승계, 명예퇴직금, 위로금 등과 관련된 협상을 마무리지었고, 그 결과 본격적인 양수·도 협상에 나설 수 있었던 것도 장관의 이같은 발언에 힘을 싣고 있다.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이 장관은 “최근 제주도 경제설명회에 다녀오는 비행기 안에서 읽었던 김남주 시인의 ‘나의 칼 나의 피’ 시집이 가슴에 와닿습디다”며 그간의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 장관의 이런 심상치 않은 발언들이 그야말로 정치적 제스춰인지, 공정한 노동행정 집행자로서 본분에 충실하기 위한 것인지는 앞으로 장관이 걸을 ‘길’을 조금은 더 지켜봐야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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