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정권은 주민들의 기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핵무기와 미사일등대량 살상무기 생산을 포기하고 농업경제 정책을 본질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같은 올곧은 소리는 의당 북한 주민의 실상을 누구보다 잘 아는 한국 지식인에게서 먼저 나왔어야 했다. 그런데 불행히도 이것은 프랑스 지성인 21명이 르 피가로지에 기고한 성명의 골자다. 철학자 앙드레 클리크스만([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의 저자), 파리 정치대학 부학장 장 뤽도메나흐, 아시아 민주인권 감시기구 위원장 피에르 리구르 등은 최근 북한 정권에 보내는 성명을 통해 핵을 포기하고 기아 해결에 나서라고 촉구한 것이다. 이들은 북한의 식량난이 홍수 가뭄 등 자연 재해가 아니라 잘못된 농업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하고 국제 사회가 북한 지도부에 기아사태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프랑스 지성인들의 이런 주장이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계획으로 야기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방한한 윌리엄 페리 미국 대북정책조정관이 한국 일본 등을 순방하는 때에 맞춰 제기됐다는 점에 주목한다.미국은 금창리 지하 의혹시설 현장접근을 위한 대가로 식량 60만t을, 우리는 햇볕정책이라는 명분으로 비료 5만t을 지원할 계획이다. 이는 외교 협상의 방법일 수는 있어도 북한 기아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접근은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지금은 프랑스 지성인들이 주장한 북한 지도부의 정책전환과 이를 위한 국제적인 논의가 바른 해결의 열쇠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TV를 통해 북한 주민들의 참상이 방영될 때마다 북한 정권의 무책임을비판해 왔다. 인도적 차원에서의 지원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 동포를 이 지경에 빠뜨린 지도부의 발상전환 없이는 밑빠진 독에 물붓기나다름없음을 강조해온 것이다.
또 하나 근본 문제는 한국 지식인의 태도다. 프랑스 지성인들이 한반도 문제의 정곡을 찌르고 있는데 우리 지식인 사회는 어떤 태도를 취하고있는가 자괴하지 않을 수 없다. 무릇 지식인이란 양심과 소신에 따라 바른 소리를 하는 인텔리 계층을 지칭한다. 그런데 북한 어린이들이 시장바닥에 흩어진 음식 찌꺼기를 주워먹고 꽃제비가 되어 중국땅을 두더지처럼 헤매는데도, 지도자는 호화 생일잔치를 벌이고 핵과 미사일 등 군비증강에 혈안이 된 실상을 보면서도, 한국의 지식인 일각은 당연히 할 수있는 비판도 없이 따지지도 말고 {주자}는 말만 한다. 그럴 만한 지식인들은 말을 안하고, 일부 지식인들은 북한의 지도부 비판을 꺼린다. 더욱이 북을 비판하는 것은 곧 진보를 비판하는 것인양 왜곡되고 있다. 또 일부는 북한 방문을 못할까 봐서인지 코를 꿰인듯 함구한다. 지식인이 이러니 대북 정책이 혼선을 빚는 것은 당연하고 따라서 죄없는 북한 주민들만 도탄의 수렁에서 헤어날 길이 아득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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