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10주간 학교점거한 고등학생들

인터내셔널뷰포인트 3월호

그리스 청소년들의 생활은 가장 중요한 시험인 고등학교 졸업고사를 위한 준비로 채워진다. 높은 실업률과 그리스 경제의 “근대화”는 젊은이들이 대학 입학에 필사적으로 매달리게 만든다. 학교는 자금난에 처해있고 학생들은 과밀집되어 있으며 많은 부모들은 수천개의 사설 학원에 과외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자살률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교육 개혁은 중도좌파 정부의 “근대화” 계획에 있어서 중심축이었다. 코스타스 시미티스 총리는 “학교를 근대사회에 적합하도록” 만들 것을 약속했었다(다른 말로 하자면 고용주들의 단기적 요구)

이 자체로도 충분히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실제 12월에 학생과 학부모들의 저항을 유발했던 것은 “교육적 응집력”을 도입하려던 정부의 시도였다. 그러나 정부 관료들은 구식의 비효율적인 체계를 오히려 악화시켰다. 1998년 초, 교육부장관 예라시모스 아르세니스는 새로운 교사채용 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는 수천명의 보조교사들을 일자리에서 밀어냈다. 이는 교사노동조합(OLME)의 2개월에 걸친 강력한 파업을 불러 일으켰으며 경찰과의 폭력적 대치상황을 유발했다.

8월 여름 휴회 이후에 의회는 지속적 평가의 도입과 사설 과외수업에 대한 수요를 제거하기 위한 조치들을 승인했다. 2년차 최종시험 대신에 학생들은 이제 같은 기간에 22번의 테스트를 치뤄야 한다! 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두배나 많은 학생들이 사설 과정에 등록했다.

새로운 교육체계 하에서는, 실패한 학생들은 더 이상 최종 학년을 되풀이할 수 없다. 교육체계에 의해서 거부당한 이들은 미숙련 직업과 실업이라는 미래에 직면한다. 학생들

과 많은 학부모들은 맹렬히 저항하며 개정법의 완전한 폐기를 주장했다. 프랑스 학생운동의 파고에 의해서 촉발된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저학년 학생들도 참가했으며 학교점거는 항의의 전형적인 양태로 자리 잡았다. 크리스마스까지 절반 이상의 학교들이 영향을 받았으며 정부측과 학생측 어느 쪽도 상대편의 주장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교육부장관 아르세니스는 교만한 접근태도로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그는 미래에 대한 학생들 자신의 깊은 우려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점거가 끝날 때까지 어떤 대화의 여지도 남기지 않음으로서 그는 양보는 곧 패배라는 원칙을 확고히 했다. 이와 같은 완고한 태도에 맞서 학생들은 항의의 수위를 높였다. “우리들이 학교를 점거하고 있는 상황에서마저 무시당한다면 우리는 밖으로 나가 거리를 점령할 것이다.” 시위와 거리점거는 일상적 사건이 되었다.

논쟁을 지속하고 열기를 높임으로써 아르세니스는 투쟁의 폭과 깊이를 점차적으로 확장시킬 완벽한 조건을 창출한 것이다. 또한 크리스마스 방학 때까지 통합된 전략을 확립할 목적으로 지역적, 전국적 협력구조를 확립하였다. 1998년 프랑스 학생시위 때처럼, 여학생들은, 젊은이들 사이의 인간 관계라는 측면에서 장기간의 여성주의 운동의 성과를 반영하며, 어느 때보다 두각을 나타냈다. 정부는 폭력적으로 응했다.

1월초 언론은 술병, 주사기, 시위대 주위에 있던 과잉 흥분된 12살짜리의 사진들과 함께 점거에 의해서 발생됐다고 추정되는 손실액을 보도하며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목적은 학부모를 놀라게 만들어 시위대에 반대하도록 만들기 위해서였다. 우파와 공산당이 젊은이들의 마음을 조종하고 있다고 비난받았다.

경찰의 폭력과 더불어 시위에 반대하는 소규모의 학부모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대화보다는 오히려 폭력에 의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점거의 숫자는 1월에 감소하기 시작했으나 1월 15일과 21일에는 수만명의 학생들이 거리를 점거하는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 학생들은 또한 이미 과잉적체된 도로 상태의 붕괴를 유발하는 도로봉쇄 기술을 터득했다. 매일 계속되는 대치상황으로, 경찰당국조차 정부가 위기에 대한 정치적 해결책을 모색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2월초 대다수의 학생들은 이번 학기에서 최소한 몇 가지는 확보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점거를 끝마쳤다. 정부측으로부터 받아낸 일부 양보는 이 과정을 가속화시켰고 분쟁은 무승부로 끝난 것으로 보인다. 주요 정당들 가운데 어느 쪽도 이익을 얻지 못했다. 사회주의자들은 개혁을 강화하지도 철회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인기없는 장관을 지지하지도 대체하지도 않았다.

보수야당은 학생들의 요구에는 동정을 보냈지만 시위 방식에 대해서는 유감을 표명했다. 그리고 공산당은 당내 의회주의적 분파의 이해에 복무하기를 거부한 자발적 시위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 지에 대해서 아무런 판단도 내리지 못했다. 아무리 학생들이 더 이상 매일 시위를 벌일 준비가 되어 있지는 않지만 양질의 교육에 대한 요구는 여전히 강하다. 다가오는 몇 달 동안 학생들과 교원노조, 학부모들이 질 높은 교육에 대한 요구를 관철시킬 새로운 토대를 발전시킬 수 있을지 밝혀지게 될 것이다. 또한 몇 달간의 시위로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사회주의적 정책들에 대해서 급진화되었는지는 시간이 보여줄 것이다.

사회당 청년 조직은 정부개혁을 비난했고 교육부 장관의 사임을 요구했다. 새로운 분위기를 보여주는 또다른 유력한 신호가 있다. 6개월 전, 젊은이들은 자신들을 “이해한다”고 주장하던 반동적 선동가 크리스터덜러스 그리이스 정교 대주교의 손에 입맞췄을 것이다. 시위의 파고가 끝나는 지금, 주교는 “카쩨 칼라”({입닥치고} 앉아!)라는 함성을 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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