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유승준이 북한의 서해안 월선 행위에 자극 받아 국토를 지키러 미국 시민권을 버리고 군에 자원입대를 한다는 소문이 터져 나오더니 연이어 요즘 같은 시국에, 더욱 경건하게 그 날(?)을 상기해야 할 6·25에 하필이면 마이클 잭슨의 공연이 열리는가를 놓고 한 판 논쟁 아닌 논쟁이 붙었다. 이것은 지난 2주간 연평도 앞바다에서 벌어진 교전으로 인해 벌어진 웃지 못할 해프닝들 중 일부이다. 또 한편에선 라면 사재기나 은행의 현금 인출 폭주와 같은 사태가 벌어지지 않은 것에 대해 성숙한 시민의식이라는 둥 안보불감증이 걸렸다는 둥 여러 얘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번 서해안 교전사태는 국민 모두에겐 북한의 무력도발 의지(?)를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하며 반공의식의 확장을 가져왔고 정부는 집권이래 가장 강력한 햇볕정책의 위기를 맞았으며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햇볕정책이 이 사건을 계기로 후퇴하지 않고 계속적인 북한 포용정책으로 나아갈 것을 요구하고 있다. 서해교전 사태에 연이은 금강산 관광중인 민간인의 억류로 이러한 사회 전반적인 파장력은 극에 달했었다. 현재 민영미씨의 무사귀환(?)으로 일정 소강상태에 접어든 남북관계는 이후에도 이런 사태들의 불씨를 남기며 수습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북한의 월선 행위를 놓고 전문가들, 사회단체들, 시민들, 정부의 반응은 가지각색이었다. 주로 왜 북한이 월선 행위를 했나에 관한 진단과 정부의 햇볕정책을 두고 지속해야 된다 혹은 버려야 한다, 혹은 지속하되 강경할 땐 강경해야 한다 등등 시각도 다양하다. 급기야는 김대중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문이 발표되고 신중하게 대북관계를 처리해 나가는 것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한바탕 폭풍우가 휩쓸고 지나간 지금 우리는 다시 한 번 이번 사건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이고 무엇을 놓치고 지나갔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할 것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평화연대 특집에서는 이번 서해안 교전사태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들을 정리해 보는 것과 햇볕정책의 본질을 비껴 마치 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현재적 지형에서 진보적인 입장이

고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주의자들의 주장이 반민중적인 것처럼 대별되는 모습 속에서 과연 그렇다면 햇볕정책의 본질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되짚어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이번 서해교전을 바라보면서 보여준 언론의 반평화적 전쟁 선동의 사례들을 소개하며 한반도의 평화는 언론의 개혁이 없고선 이루어질 수 없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확인하도록 하자.

서해 5도 지역의 긴 공방

‘본 정전협정이 효력을 발행한 후 십일 이내에 상대방의 한국에 있어서의 후방과 연해도서 및 해면으로부터 그들의 모든 군사역량, 보급물자 및 장비를 철거한다. 만일 철거를 연기할 쌍방이 동의한 이유 없이 또 철거를 연기할 유효한 이유 없이 기한이 넘어도 이러한 군사역량을 철거하지 않을 때에는 상대방의 치안을 유지하기 위하여 그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어떠한 행동이라도 취할 권리를 가진다. 상기한 연해도서라는 용어는 본 정전협정이 효력을 발생할 때에 비록 일방이 점령하고 있더라도 1950년 6월 24일에 상대방이 통제하고 있던 섬들을 말하는 것이다. 단 황해도와 경기도의 도계선 북쪽과 서쪽에 있는 모든 섬 중에서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의 도서군들을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의 군사통제하에 남겨두는 것을 제외한 기타 모든 섬들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과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의 군사통제하에 둔다. 한국 서해에 있어서 상기 경계선 이남에 있는 모든 섬들은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의 군사통제하에 남겨둔다.’『정전협정 2조 13항 b목』서해 5도는 황해도와 경기도의 도계선 북쪽과 서쪽에 있는 섬 중에서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를 가리킨다. 예로부터 이 근해는 꽃게를 비롯하여 물고기들이 풍부한 수자원의 보고로 알려져 왔으며 북한도 외화벌이 차원에서 매년 6월이면 이 근해에서 꽃게잡이 조업을 하였다고 한다. 이번 서해교전 사태도 그러한 차원의 꽃게잡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으나 조금 다른 측면은 예년 같으면 남한 해군 측의 경고방송에 어선들이 곧 다시 북한으로 되돌아가곤 하였는데 이번엔 수 차례의 경고방송에도 불구하고 한계선을 다시 넘어 돌아가지 않았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서해 5도 일대는 지난 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이와 같은 계속적인 크고 작은 공방들이 끊이지 않았다. 그것은 정전협정 체결 당시 육지에 군사분계선을 설정한 것과는 달리 해상에는 군사분계선을 설정하지 않은 데서 연유하는데, 정전협정을 채결할 당시 이승만 정권은 북침으로 통일전략이라는 전략을 취하고 있었고 이것을 막고자 하는 의도에서 미국은 지금의 해안경계선을 북한과의 아무런 협의 없이 설정을 하였다. 정전협정에서도 명시되어 있듯 당시 서해 5도 근해의 군사분계선은 북한측과의 협의를 거치지도 않았으며 또 명확하게 이를 규정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서 북한은 72년에 서해 5도 근해의 영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또 73년에는 유엔군이 설정한 북방한계선을 월선하고, 한국이 서해 5도 일대의 해역을 통과할 경우 북한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하였다. 정전협정이 체결되고도 한참 후에 이렇게 뒤늦게 이러한 주장을 북한이 제기하게 된 것은 여러 가지 추측들이 있으나 당시 북한은 전후 복구가 늦었고 해군력이 약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서해 5도 일대의 수역은 국제법상에서 보자면 이러한 문제점을 안고 있었기 때문에 남북기본합의서 ‘남북 불가침의 이행과 준수를 위한 부속합의서’ 10조에는 “남과 북의 해상불가침 경계선을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 해상불가침 구역은 해상불가침 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하여 온 구역으로 합의한다”고 명시하였다.

하기 때문에 서해교전이 발생했을 당시 남한에서 주장하는 정전협정 위반이나 영해침입이란 말은 타당하지 않다.

서해교전의 원인은?

5월 말 미국의 윌리엄 페리 대북정책조정관이 평양을 방문해 대북 포괄협상안을 전달했다. 6월초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이끄는 북한 대표단이 중국을 방문해 북-중 정상외교가 회복 단계에 들어섰고 6월21일엔 베이징에서 남북한간에 차관급 회담이, 23일엔 북-미 회담이 열렸다.

이렇듯 한반도 주변은 예년 어느 때보다도 북한과의 직접적인 접촉과 만남을 통한 화해무드가 조성되고 있다. 이런 움직임 속에서 과연 북한은 페리의 대북 포괄협상안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하는 점은 주목되는 사실이었다. 이번 서해교전 사태는 북한의 포괄협상안에 대한 첫 반응으로 해석할 수 있다.

얘기를 현재 북한의 사회적 상태에서부터 시작해보자. 북한은 현재 소련 및 동구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극심한 경제난으로 고통받고 있다. 기아도 죽어 가는 어린이와 여자의 모습을 우리는 언론이나 다른 매체를 통해서 많이 접하고 민간에서 광범위하게 북한 난민을 돕고자 하는 운동도 펼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북한의 입장에선 외부의 경제적 지원은 매우 절실하달 수 있다. 그 동안 핵무기개발, 미사일개발 등과 관련하여 미국과 협상해서 북한은 상당한 경제적 지원을 얻어냈으며 특히 나진·선봉 자유무역지대 전략의 실패 이후 북한은 남한 재벌과의 합작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경제협력과 대화를 통한 최근의 한반도 분위기는 북한에게는 매우 심기가 불편해지는 기류를 타고 있는데 그것은 남한 사회 내에서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이 남북관계와 통일에 있어 역대 정권의 그것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진보적인 정책인 것처럼 비춰지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국제사회에서 현 정권의 햇볕정책에 동조하고 북한의 더 많은 개혁과 개방을 바라는 여론들이 그것이다. 마치 진정한 통일을 원하는 세력은 남한 쪽이고 북한은 그것을 거스르고 오히려 냉전체제를 부추기는 세력인 것처럼 비춰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 체제의 유지를 원하는 북한은 공식매체들을 통해 최근 나토의 유고공습에 이은 다음 차례는 북한이 될 것이라고 선전해 왔으며 또 미군의 ‘작전계획 5027-98’을 북한 공격계획이라고 하며 비난을 강화하면서 미국에 대한 극도의 경계심을 보이고 있다.

또 이런 맥락에서 한반도 문제에서 남북대화가 북-미 관계를 대체해 가는 현실을 북한은 우려하고 있으며 이번 사태를 통해 북한은 남북대화를 앞두고 북-미 관계이 개선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것은 한때 사태가 교전으로 확대되기도 했지만 교전 직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자제해야 한다고 발언하는 등 전후 정황으로 볼 때 처음부터 북한이 무력충돌까지 상정하며 사태가 확대되기를 바라지 않았으며 이 사태를 통해 효과적으로 북방한계선 문제를 국제적으로 부각시키면서 북-미 관계의 중요성을 경고하고 깊어한 것이라 하겠다. 실지로 북한은 지난 22일 열린 제7차 유엔사와 북한군 장성급회담에서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해 장성급 회담 대신 북한-남한-미국의 3자 군사회담을 열자고 제의했으며 6·25 당시 북한 땅에서 숨진 미군의 유해송환 문제에서도 북한군은 뚜렷한 이유 없이 송환을 거부하고 있다. 이것은 북한이 최근 들어 유해송환 주체를 유엔군 사령부에서 미군으로 바꿀 것을 강력하게 요구해왔지만 그렇다고 실제 송환을 거부한 적은 거의 없었다는 설례에 비춰 볼 때 서해사태를 미군과의 대화채널 확보의 계기로 삼고자 하는 북한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하겠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북한은 서해 교전사태 이후 잇따른 강경 대응 발언을 통해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킨 뒤 북-미 군사대화의 필요성을 여론화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현재의 정전협정을 북-미 평화협정으로 전화시키기 위해 3자 군사회담과 유해송환 등 이슈를 적극 제기하고 있는 셈이다.

햇볕정책에 대한 재사고

일각에서 아니 어쩌면 대세적인 입장으로 보이는 정부의 햇볕정책에 관한 지지와 보족은 이번 서해교전 사태로 더욱 명확하게 보여지고 있는 것 같다. 북한의 북방한계선 월선과 금강산 관광객이었던 민간인의 억류 사건은 한반도 전체를 대북 반공 이데올로기에 물들게 했고 정부의 종래적으로는 정부의 햇볕정책에 관한 비판으로 이어지고 있다. 마치 아주 진보적인 정책인 것 같아보이는 햇볕정책에 관한 이러한 접근들은 사실상 햇볕정책이 가지는 본래의 의미를 상실케 하고 왜곡되게 하는 인식지반들을 가져오고 있다. 또 마치 햇볕정책이 남북관계에 있어 최선의 대안인 것처럼 보여지고 있다. 과연 햇볕정책은 그러한가.

‘햇볕 정책’은 한마디로 북한의 변화 노력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살을 좀더 붙여 말하자면, 적극적으로 북한의 개방 및 국제 사회로의 진출을 유도하는 정책을 편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정경분리의 원칙에 따른 경제협력이란 언명에서 정확하게 드러난다.

우선 김대중 정권의 대북관에서부터 출발해보자.

문민정부의 대북 강경책과 비교되어, 국민정부의 햇볕 정책이라는 입장은 상당히 유연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달라진 구체적 조치들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북한의 개방과 국제사회의 진출을 유도’한다는 커다란 줄기에는 문민정부나 국민정부가 별 차이가 없다. 다만 강경하게(혹은 경직되게) 대북한 압력을 행사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라는 유연성의 차이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러한 유연성의 차이가 김대중 대통령의 ‘통일 전문가’적인 이미지와 융해되어 근본적으로 차별성이 존재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의 기조가 잘 나타나 있는 통일부가 내놓은 소위 대북정책 3대 원칙과 대북정책 추진 6대 기조를 살펴보면 ‘평화를 파괴하는 일체의 무력도발 불용, 흡수통일 배제, 화해·협력의 적극 추진’과 ‘안보와 협력의 병행추진, 평화공존과 평화교류의 우선 실현, 화해·협력으로 북한의 변화 여건 조성, 남북간 상호이익 도모, 남북당사자 해결 원칙 하에 국제적 지지확보, 국민적 합의에 기초한 대북 정책 추진’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원칙과 기조에서도 보이듯이 북한만이 타락했으므로 변해야 할 것은 오로지 북한이고 우리는 변해야 할 것이 없다, 혹은 현재는 통일을 얘기하기는 시기상조이므로 선평화를 이룩하고 후통일을 말하자라고 하는, 분단을 관리하는 것에 역점을 두겠다라는 것이 현 정권의 정책기조인 것이다.

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미국의 대한반도 전략의 핵심이랄 수 있는 대북 정책이다.

미국의 경제제재와 소련의 붕괴로 북한은 경제 위기를 심하게 맞이하게 된다. 특히 1992∼94년에는 에너지 위기로 인해 제조업이 크게 타격을 받게 되었으며 엎친데 덮친 격으로 1996년에는 자연 재해 등으로 식량 위기가 발발하면서 북한은 근본적인 체제붕괴의 상황에 처하게 된다. 미국은 판단하기를 이러한 심각한 상황 속에서 북한을 심하게 몰아치면 러시아-동유럽 식의 개혁을 강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북한은 의외로 강경하게 미국의 이러한 의도를 거부했고 또 자체 핵 개발 위협과 중국의 식량 지원으로 미국의 이러한 강경노선을 실패하게 된다. 이후 미국은 북한의 체제를 지원하는 유화책으로 전략을 변경하게 된다. 그것은 독일식 흡수통일 전략과는 다른 정경분리 원칙에 따라 북한의 국제경제기구 가입 및 초국적 자본의 북한 진출로 북한의 개혁·개방을 이루어내겠다는 것이며 이를 위해 미국은 정치·군사적인 측면은 미국이, 남한 정부는 이산가족 재회, 문화·스포츠 교류 등을 통한 여론 조성을 전담한다는 것을 제안하고 있고 김대중 정권 이후 남북한 고위급 회담이 재개되고, 나아가 정상회담도 재시도 되는 것은 이러한 역할 분담의 틀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미국은 남북한의 공존 속에서 경제통합을 이루기 위해서 남한에서는 김영삼 정권 말기 금융 위기와 대선을 시작으로 구조조정을 준비했으며, 북한에서는 러시아-동유럽 식의 개혁을 꿈꾸고 있다.

한마디로 햇볕정책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일환이면서 미국의 대 한반도 구상을 충실히 이행하고자 하는 김대중 정권의 정책인 것이다.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은 이렇듯 북한의 변화에 따른 미국의 한반도 구상 변화에 조응해 들어가는 정책일 뿐이다. 따라서 기존 정권과 사뭇 달라 보이는 대북 포용정책을 놓고 진보적이라 옹호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한반도의 평화체제 정착을 위하여

다시는 서해안 교전과 같은 사태가 벌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대결과 긴장의 현재의 국면을 평화정착으로 전화시켜내는 것이 중요하다. 즉 남북한 쌍방이 상호체제를 인정하고 대결과 긴장의 상징인 남북한 군사적 대치라는 정치적 상황을 바꾸어 내는 것이 급선무라고 할 것이다. 특히나 남한 정부가 추구하고 있는 ‘포괄적 안보체제의 구축’이라는 입장은 자칫하면 군사적 대치의 강화를 불러올 소지가 존재할 수 있기에 한반도 평화정착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갈 수 있다. 왜냐하면,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북한의 ‘무력 도발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입장이 차세대전투기 사업 등 남한 군사력의 최첨단화, 초현대화를 꾀하는 과정으로 현실적으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남한과 미국의 안보 협력의 강화에 대한 거듭된 천명은 결코 평화정착으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될 수 없으며 평화와 화해의 실현이, 냉전과 분단고착화의 결과인 대결과 긴장을 해소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라면, 가장 우선적으로 군사적 대치의 순환을 종결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단순히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대체의 문제가 아닐 것이며, 남북한 모두의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더욱더 비경제적인 과도한 군사비 지출을 양자의 대화와 협력 하에서 실질적으로 줄여나가는 것이 요구되는 것이다. 또한 아직까지 남한에서 바꿔내기 힘든 개념일지 모르나 군사적인 힘만이 우리의 안보를 보장해 줄 수 있다는 기존의 안보개념의 해체와 인간 중심의 대안적 안보개념으로의 전화와 구축이 필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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