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없에서는 모두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해서 우리가 함께 만들어야 할 권리를 모두 18개 조항으로 압축하여 기획연재를 했습니다. 그 18개의 조항은 그저 문자로 쓰여있을 뿐이지만 그 안에는 많은 이들의 치열한 투쟁과 눈물과 고통과 삶이 녹아있습니다. 우리가 ‘사회헌장’을 통해서 그 눈물과 고통의 기억들을 다시 살리고자 하는 것은, 언제부터인가 권리의 부재가 당연하게 여겨지고, 비정규직 노동자들 스스로도 그 권리없음에 익숙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본의 이윤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의 권리는 자본의 이윤을 침해하는 것이므로 언제라도 제한할 수 있는 것, 때로는 당연히 제한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모든 노동자는 안정되게 일할 권리가 있습니다.” 일하는 이들은 일회용품이 아니고 사람이며, 일을 통해서 생존을 영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업들은 이야기합니다. “모든 노동자는 우리가 쓰고 싶을 때 쓰고, 버리고 싶을 때 버릴 수 있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이것이 그들의 유연화 논리입니다.
기업의 경쟁력을 위해서는 유연화가 허용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해지는 나라에서 ‘해고를 제한하자’는 말은 대단히 급진적인 이야기로 들립니다. 그러나 정말로 그런가요? 기업이 노동자를 고용하여 이윤을 얻고자 한다면 당연히 그 노동자들의 삶과 생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닐까요? 지금은 너무나 많은 이들이 수용해버린 논리, 기업의 이윤을 위해서는 ‘유연화가 필요하다’는 그 인식은 잘못된 것이며, 모든 노동자들은 안정적으로 일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그 속에서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함부로 해고하고 계약해지하고, 혹은 재계약을 하지 않는 행위의 문제를 밝히고 싶었습니다. ‘내가 원래 2년 계약했으니, 나는 2년 후에 나가야지’라는 그 인식을 ‘상시적으로 필요한 일에 2년 계약을 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라는 것으로 변화시키고 싶었습니다.
이것은 단지 ‘안정적으로 일할 권리’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조건에 대해서 결정할 권리를 가져야 합니다. 일에 대해서 자부심을 갖고 있는 많은 이들이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일에 대한 결정권한을 모두 빼앗기고 소위 ‘비핵심적인 업무’, 혹은 ‘부수적인 일’이라고 취급받으면서 일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필요한 일’을 하는 모든 이들이 주눅들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또 있습니다. 모든 노동자는 ‘생활할 임금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저임금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이 비합리의 장벽을 깨야 합니다.
그런데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이런 차별과 권리박탈이 여러 가지 이유로 정당화됩니다. 때로는 인적속성, 즉 여성이니까, 장애인이니까, 노인이니까 비정규직이어도 되고, 그러니까 임금이 작아도 된다는 식으로 정당화되기도 합니다. 때로는 하는 일에 대한 평가, 즉 중요한 일인가 아닌가 등으로 정당화되기도 합니다. 때로는 일자리가 없어서 경쟁이 치열하다는 이유로, 때로는 조금만 기다리면 정규직이 될 것이니까 하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권리를 박탈합니다. 하지만 그 주장의 이면에는 각종 차별과 혐오가 깔려있고, 그것을 다시 들춰보면 이런 차별을 조장함으로써 거대한 이윤을 획득하는 대기업들이 보입니다.
지난 10여년의 세월동안 투쟁해왔던 이들은 이 당연한 권리들이 원래 우리의 것임을 깨우쳐주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많은 이들이 나서지는 않고 있습니다. 권리는 누가 찾아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야 가능한 것인데 말입니다. 많은 이들이 나서도록 하려면 자신이 당하고 있는 고통스러운 현실이 ‘정상적’인 것이 아니라 ‘부당한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것을 자신의 언어로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우리는 ‘사회헌장’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사회헌장’운동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 사회헌장이 그럴듯한 문구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이 헌장이 투쟁하는 이들에 의해 고쳐쓰여지고, 더 많은 이들이 더 많은 권리를 이야기하면서 더 많은 조항들이 생겨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노동자들의 권리영역이 더욱 넓어지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 공장에서, 편의점에서, 대형마트에서, 공공기관에서, 식당에서, 일하는 이들이 있는 곳 그 어디든지에서 부당함을 인식하기 시작하고 그에 맞서 싸우고자 하는 이들이 더 많이 생겨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 물결에 여러분도 함께 해주시기를 요청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