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통신이 충북 영동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이 사실임을 확인했다고 보도하면서 49년간 묻혀 있던 진상이 밝혀지고 있으나 당시 미군이 왜 양민들을 학살했는 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이 통신은 미 정부 문서와 당시 사건 현장 미군들의 증언을 통해 주민 수백명을기총 소사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보도했지만 그 이유에 대한 참전 미군들의 증언이 엇갈려 정확한 배경은 확인되지 않았다.

우선 가장 꼽을 수 있는 가능성은 당시 미군이 피란민 대열에 북한군이나 첩자가 잠입했을 가능성을 우려했기 때문일 것이라는 추측이다.

“당시 피란민 대열을 통해 북한군이 미군 방어선을 침투하려 한다는 소문을 들었다”는 당시 참전 미군들의 증언과 ‘전선을 넘어 오거나 적 지역에 남아 있는 피란민을 적으로 간주하라’는 미군 문서는 이같은 가능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다른 참전 미군은 “피란민 대열에서 미군을 향해 사격을 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미군은 혹시 피란민 대열에 끼어 있을 지 모르지만 ‘색출’이 쉽지 않았을 북한군이나 첩자를 어떤 식으로든 ‘확실하게’ 처리해야 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또 다른 가능성은 미군들의 오해에서 비롯됐을 수도 있다.

한국 전쟁 이후 발발했던 베트남 전에서 죽창 등 전근대적 무기에 호되게 당한 경험도 있듯이 동양 문화에 대한 이해가 낮았을 것이 분명한 미군들이 농민들의 낫과 톱 등을 `무기’로 오인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전쟁 발발과 함께 오산 죽미령에서부터 북한군에 패퇴를 거듭, 밀리면서 신경이 날카로웠던 미군들이 이들 농기구를 보고 피란민들을 ‘적군’이나 ‘적군의 동조자’로 여겼을 것이라는 얘기다.

어린이와 여성, 노인들이 대부분인 피란민 대열이 북한군에게 밀려 퇴각하는 미군들에게 성가신 존재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발걸음이 급했던 미군이 ‘장애물’ 제거하는 방법으로 기총 소사를 택한 것 아니겠느냐는 얘기다.

그러나 주민들은 이같은 어떤 가능성에 대해 여전히 이해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목격자들은 우선 미군이 피란시켜 주겠다며 주민들을 집합시켰고 미군들이 폭격직전 어디론가 무선 교신을 하고 일제히 빠져 나갔으며 폭격이 그친 뒤 기관총으로아이·여자·노약자까지 무차별 사살했다고 밝혀 오인 사격 가능성을 일축했다.

또 미군이 집집마다 방문, 주민들을 집합시켜 임계리 계곡, 주곡리 냇가, 경부선 철로 등으로 며칠씩 끌고 다녔고 일일히 짐 검사를 하면서 땔감을 구하기 위해주민들이 갖고 있던 낫과 톱 등을 압수한 점 등을 열거하며 ‘북한군 잠입 가능성’등이 ‘학살’의 이유가 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이 때문에 주민들 사이에서는 막강한 전투력을 보유했음에도 불구, 북한군에 밀리면서 극도로 상한 자존심 때문에 주민들에게 화풀이를 한 것 아니겠느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생존자 양해찬(59)씨는 “전투기가 철로의 피란민들에게 공중 사격을 가한 이후 굴 속으로 피한 주민 대부분이 어린이와 노약자, 부녀자였는 데도 미군이 3일간 계속 기관총을 쏘아 댄 이유를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청주/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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