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年을 떠나 보내며

최정민/ 평화인권연대 상임활동가

박노해 시인의 ‘오늘은 다르게’를 얼마 전에야 읽을 수 있었다. 그 책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많고, 또 직접 듣고 읽은 것도 있어서 일정한 선입견을 가지고 책을 보기 시작했었던 것 같다. 이미 통신 등에서 읽었던 내용도 있고 해서 금방 다 볼 수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의 느낌과는 다르게 난 그냥 막 뛰고 싶었다. 마지막 장을 넘기던 지하철 안에서 난 마음이 급해졌다. 당장 뛰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바로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살기 위해서 치르는 국가 고시(?)가 바로 다음 주에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 때문에 밤에 공부하고 낮에 자는 습관이 들어 있던 터라 그 패턴을 갑자기 바꾸는 것이 왠지 불안했다. 그래서 일요일 시험이 끝나면 시험 보느라 수고했으니 월요일은 쉬고 화요일부턴 아침 6시에 뛴다. 이렇게 생각했다. 뛰고 싶은 생각에 시간이 굉장히 느리게 느껴졌다. 막상 시험이 끝나고 월요일 저녁이 되니까 그간의 습관 때문에 잠이 오질 않았다. 이러다 내일 어떻게 뛸까 하는 걱정을 하며 잠깐 눈을 붙였다. 드디어 다음날 아침, 자명종이 울리기 전에 눈이 떠졌다. 새벽 공기를 마시며 한 발 한 발 발을 옮기는데 기분이 너무 좋았다. 어떤 씻김같은 행위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마음이 차분해졌다.

하지만 시작한지 3주 째 되는 지금은 아침에 일어나기가 죽기보다 싫다.

‘오늘은 다르게’를 읽기 전 어떤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난 TV 드라마 같은 것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때론 백 마디의 말보다, 몇 권의 책보다 우습지도 않은 드라마 한 편이 더 깊은 감동을 주기도 한다. 지금 드라마의 내용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TV를 보는 내내 내 눈에선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흐르던 눈물과 함께 난 내 마음 속 어떤 응어리들도 함께 흘러나가는 것을 느꼈다. 내 마음을 검게 덮고 있던 어떤 것으로 난 그간 너무나 힘든 시간들을 보냈었다. 차마 부끄러워 누구에게도 비칠 수 없었던 내 어리석음이 하나, 둘 무너져 내렸다.

언제부턴가 꿈속의 모습도 바뀌고 있었다. 사실임을 믿고 싶지 않은 내 마음이 이전 꿈속에 보였다면 이제는 사실 그대로의 모습으로 모두가 행복한 꿈을 꾼다. 이젠 사진을 봐도 어떤 추억들을 떠올려도 슬프게 울지 않는다. 대신 미소 띤 눈물을 흘릴 뿐이다. 사람들의 얼굴을 눈을 똑바로 볼 수도 있게 되었다. 그리고 웃을 수도 있게 되었다.

지금 난 평화인권연대에 다시 출근하기 시작했고 조금씩 활동을 재개하고 있다.

이번 평화연대 준비 13호는 그 첫걸음이다. 힘들게 보낸 1999년이 내게 민중운동에 대한 보다 깊은 호흡, 동지에 대한 깊은 애정이 충만할 수 있는 성숙한 한 해였길 빈다.

이번 13호로 1999년의 평화연대는 마감을 하고자 한다. 연말과 연초엔 잠깐 평화연대를 쉬면서 차분하게 정리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설계하는 좋은 시간들을 가져볼 생각이다. 1월 말 발간하게 될 평화연대 준비 14호에선 보다 좋은 모습으로 독자들께 다가갈 것을 약속드린다.

개인적으로, 평화인권연대에게도 힘들었던 1999년이 내년에 좋은 활동을 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을 믿는다.

모두가 함께, 기쁘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과정이 운동이라 믿는다. 운동하는 과정이 힘들거나 동지들끼리 서로 얼굴을 붉힌다면 그건 운동이 아니다. 그것이 아무리 좋은 목적을 가지고 있어도 말이다. 새 천년엔 좀 더 어려운 사람이, 장애인이, 여성이, 각 부문에서의 소수자들의 인권이 존중되길 바란다. 그 길에 나도 조그만 힘이라도 보탤까 한다.

1999년을 떠나보내며 생각해본다. 나의 이러한 결심이 작지만 큰 결실을 맺기를

“누나, 잘 했어. 잘 하고 있어. 내 맘 이해할 줄 알았어…”

멋쩍은 웃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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