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주민 삶 밝혀온 도서 발전 노동자, “해고는 살인”... 집단 해고 이후 생활고·건강 악화 심각해

소득 77% 감소, 60%가 우울증 고위험군… 올해 4월 해고노동자 목숨 잃기도

섬 발전소에서 빛을 밝히며 주민들의 삶을 책임져왔던 도서 지역 발전 노동자들이 무더기로 해고된 지 1년 6개월이 지났다. 이들은 한국전력의 하청 노동자로 이미 재작년 법원 판결을 통해 한전의 불법파견 관계를 인정받았음에도 자회사로의 전적을 강요받다 해고된 후 ‘해고는 살인’이라 환기하며 한전의 직접 고용을 촉구하는 고된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 해고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심각한 고통을 가늠할 수 있는 실태조사 결과가 나왔다. 해고 노동자들은 소득이 해고 전과 비교해 77%나 감소해, 식대를 가장 먼저 줄여야 할 정도로 극심한 생활고를 겪고 있으며, 불면증과 우울증, 불안장애 등을 겪으며 건강 악화도 심각한 수준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섬 주민들 삶 밝혀온 노동자들, 불법파견 인정 판결에도 무더기 해고한 한전

울릉도 등 65개 도서 지역에서 일해온 발전노동자들은 한국전력의 지시에 따라 일하면서도 하청업체 JBC에 소속되어 지난 30여 년간 섬에서 발전과 송배전 업무를 맡아왔다. JBC는 한전 퇴직자 단체인 한국전력전우회가 100% 출자한 자회사로, 수십 년간 한전과의 독점적인 수의 계약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해 왔다고 알려졌다. 그동안 한전이 관리하는 도서 지역 발전시설의 노동자들은 한전과 JBC가 1년 단위로 체결하는 위탁 운영 계약에 고용의 지속가능성이 매여 있어, 상시적 고용 불안과 함께 열악하고 차별적인 노동조건을 견디며 도서 지역 주민들에게 전기를 공급해 왔다.

이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한국발전노동조합 도서전력지부 소속 노동자들이 지난 2020년 3월 한전을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제기했고, 2023년 6월 1심에서 승소해 도서전력 노동자들이 한국전력이 직접 고용해야 할 노동자로서 근로자 지위를 확인받았다.

그러나 한국전력은 법원의 판결에 따르지 않았다. 한전은 즉각 항소에 나섰고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지 않고 버티다 지난해 1월, 30년간 이어온 JBC와의 업무 위탁 계약을 종료한다고 통보하고, 노동자들에게는 근로자 지위 확인소송을 취하하고 부제소 확약서를 작성한 후 자회사 한전MCS로 전적할 것을 강요했다. 지난해 8월에는 전적을 거부한 노동자 184명 전원을 무더기로 해고했다. 이들 중 울릉도 발전소에서 일을 하다 해고된 고 이병우 씨는 올해 4월 22일 새벽 숨을 거두었다. 고인은 발전노조 도서전력지부의 조합원으로 지난해 8월 한국전력에 의해 해고 통보를 받은 후 스트레스와 생활고에 시달려 왔다고 한다. 유족과 동료들에 따르면 고인은 해고 이전, 건강을 잘 유지해 왔으나 해고 이후 8개월 만에 급격히 건강이 악화되었고 갑작스러운 심정지로 사망에 이르렀다.

지난 5월 9일, 해고노동자 고 이병우 씨의 죽음에 대한 한전의 책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 현장. 참세상

“해고는 살인”… 해고 이후 고통 어린 현실 드러내는 조사 결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한국발전산업노동조합(이하 ‘발전노조’)는 더불어민주당 이용우 국회의원과 함께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해고된 도서 지역 발전 노동자의 긴급 생활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한국전력에 해고 노동자에 대한 직접 고용을 촉구했다.

이날 발표된 발전노조 도서전력지부의 의뢰로 정책연구소 이음이 진행한 ‘도서전력 해고노동자 긴급 생활실태조사’에 따르면 노동자들 다수가 해고로 인해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 47세, 근속 17년…34년 평생을 바친 노동자도

이달 1일부터 7일까지 실시된 이번 조사에는 해고노동자 181명(184명 중 3명은 복직) 중 151명이 참여했다. 이들 도서전력 해고노동자들의 평균연령은 47세로, 평균 17년간 도서 지역 발전소에서 일해온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들 중 다수는 도서전력이 거의 첫 직장이었고, 34년 평생을 도서 지역 발전 현장에서 일해온 노동자도 있었다.

나고 자란 일터·삶터에서 쫓겨난 이들

내륙에서 멀리 떨어져 ‘고립된’ 생활을 이어가야 하는 도서 지역 발전 현장의 특성상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도서전력 일을 이어왔다. 응답자 중 3/4이 발전소 소재 지역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약 70%가 혼인 상태로 2명에서 3명의 부양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이들이 다수였다. 가족들과 떨어져 도서 지역 현장을 지켜온 이들도 40%에 이르렀는데, 이들 모두가 갑작스러운 해고로 나고 자란 지역에서 일하고 관계 맺으며 사랑하는 이들의 삶을 지켜갈 터전을 잃게 된 것이다.

소득은 줄고, 빚은 늘어… 극심한 생활고, 식대부터 줄였다

해고된 노동자들 중 35%는 전혀 일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일을 하는 경우도 대부분 일용직·단기 계약직 노동을 수행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해고 이후 소득은 해고 전과 비교했을 때 23.1% 수준에 그쳤고, 60%의 응답자들이 해고 전보다 빚이 크게 늘었다고 답했다. 이들은 평균 54.7% 수준의 빛 증가가 있었다고 답했다.

생활비는 해고 전과 비교해 평균 51.2%로 절반이나 줄어들었고, ‘식대’를 가장 많이 줄였다고 답해 기본적인 생계마저 위협을 받고 있는 현실을 드러냈다.

PTSD, 불면증, 우울증 위험군 다수… 건강 상태 크게 악화돼

‘배우자 또는 연인’을 비롯해 모든 관계가 악화되었고, 건강도 크게 나빠졌다.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 조사 결과 응답자의 30%가 PTSD로 의심되는 결과가 나타났다. 우리나라 국민의 PTSD 1년 유병률이 남성은 0.2%, 여성은 1.1%이고, PTSD 유병률이 매우 높은 직종인 소방공무원의 경우에도 2021년 호소율이 5.7% 수준임을 고려했을 때 이같은 수치는 해고 노동자들이 겪는 고통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드러낸다.

불면증으로 정신건강의학과의 상담이 필요한 이들도 무려 50%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응답자의 3/4은 알코올 의존성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우울 수준도 매우 심각해 60%가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한 것으로 집계되었으며, 약 10%에서 병원 진료가 필요한 불안장애를 겪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10월 23일, '해고 섬발전 노동자 긴급 생활실태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 현장. 국회인터넷의사중계시스템 화면 갈무리

공공기관 한국전력, 직접 고용으로 모범 사용자 역할 해야

발전노조는 이날 기자회견문을 통해 “한국전력은 (법원이 인정한) 불법파견을 시인하고 반성하기는커녕 도서 지역에서 일하는 노동자 180여 명에게 한전MCS라는 자회사에서 일할 것과 불법파견 소송의 취하서를 내도록”강요하고, “결국 이를 거부한 노동자 전원을 해고했다”면서 “1년이 넘은 해고된 조합원들의 삶은 엉망이 되었다”고 규탄했다. 노조는 “(불법파견 인정 판결에 대해)항소를 진행하고 있는 한국전력은 (해고된) 노동자 180명의 삶이 무너지게 할 셈인가”라고 묻고는 “섬에서 발전소를 운영하고 도서 지역의 주민들과 함께 일했던 노동자들이 현장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맞다”면서 “한국전력은 지금이라도 불법파견에 대한 항소를 취하하고 불법파견에 대해 사과하고, 섬에서 발전소를 운영하던 조합원들을 한국전력으로 직접 고용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한국전력이 공공기관으로서의 모범적인 사용자의 역할을 다하는 길이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들 도서전력 발전노동자들의 집단 해고 사태는 당사자 노동자뿐만 아니라 도서 지역 주민들의 삶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송재봉 의원실이 한전 자회사 한전MCS를 통해 확인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도서 지역의 연평균 정전 발생 총 소요 시간은 1,774분이었던 반면, 집단 해고 이후 259일간 소요 시간은 2,477분으로 40% 가까이 늘어났다.

10월 23일, 국회 앞에서 한전의 직접 고용을 촉구하는 선전전에 나선 도서발전 해고 노동자들. 참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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