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중국 수출허가 제도, 이제 베이징을 돕는다

출처: Getty Images, Unsplash+

많은 미국 기업이 중국에 제품을 판매하기 위한 수출허가를 받는 데 오랜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이들 제품 대부분은 이미 중국에서 구할 수 있다. 더욱이 해당 기업의 82%는 미 상무부가 심사 중인 제품을 중국이나 다른 비()미국 공급업체가 대신 공급할 준비가 돼 있다고 답했다.

이 같은 사실은 미중무역전국위원회(U.S.-China Business Council·USCBC)8월 초 발표한 긴급 설문조사에서 드러났다. USCBC는 지난 7월 기술, 산업 제조, 에너지, 의료 분야의 회원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USCBC가 지적했듯이 미국은 상무부의 정책 때문에 해외 경쟁업체에 시장점유율을 내주는 동시에 연구개발에 투입할 수 있는 기업 이익도 줄이고 있다.” 보고서가 보여주는 현실은 미국이 민감한 기술을 경쟁국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제도가 아니다. 그저 제도 자체가 버거워하며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고, 그 부담은 상무부가 중국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막으려는 제품보다 압도적으로 미국 수출업체에 집중되고 있다.

한국은 이미 이를 입증하는 사례를 보여줬다. 2023년 워싱턴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검증된 최종사용자(Validated End User·VEU)’ 지위를 부여해 두 회사가 중국 내 반도체 생산시설로 미국산 반도체 제조장비를 들여올 때마다 새로 허가받지 않아도 되도록 했다. 하지만 2025년 미국은 이 지위를 철회했고, 두 회사는 그해 남은 기간 동안 개별 연간 허가를 신청해야 했다. 이전보다 느리고 언제든 철회할 수 있는 제도로 대체한 셈이며, 결국 12월에야 허가가 나왔다. 《재팬타임스》에 따르면 8월이 되자 두 회사는 중국의 어드밴스드 마이크로패브리케이션 이큅먼트(Advanced Micro-Fabrication Equipment)가 생산한 반도체 제조장비를 조용히 시험하고 있었다. 이는 다음번 공급 차질에 대비하는 한편, 더 구체적으로는 워싱턴이 중국 공장에서 이미 가동 중인 미국산 장비의 부품 공급을 중단할 위험에 대비하려는 조치였다.

두 회사 모두 아직 중국산 장비를 대규모로 도입하기로 결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두 회사에는 그 선택지가 생겼다. 느리고 언제든 철회할 수 있는 수출허가 제도가 미국의 동맹국에 가져다준 결과가 바로 이것이다. 미국의 정책에 순응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워싱턴을 거치지 않는 두 번째 공급망을 구축하도록 만들었다.

USCBC 보고서에 참여한 기업의 95%는 장기간 이어지는 수출허가 심사를 최대의 사업상 골칫거리로 꼽았다. 관세나 환율 위험보다도 심각한 문제로 지목했다. 71%는 특히 중국으로 향하는 수출허가가 지연됐다고 답했다. 66%는 상무부가 자체적으로 정한 법정 심사기간인 90일을 넘겼는데도 허가가 나오지 않았다고 답했다. 31%는 신청서를 제출한 뒤 1~2년 동안 기다리고 있었다. 제품 한 세대가 완전히 바뀌고도 남을 만큼 긴 시간이다.

비용은 서류 업무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점유율 하락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73%는 수출허가가 심사 대기열에 머무는 동안 중국 경쟁업체에 계약을 통째로 빼앗겼다. 55%는 다른 지역에서 더 빨리 제품을 공급할 수 있는 중국 이외 국가의 경쟁업체에 주문을 빼앗겼다. 64%는 특히 중국 시장에서 입지가 약화했다고 답했다. 3분의 1 이상은 손실 규모가 수천만 달러 이상이라고 밝혔다. 몇몇 기업은 USCBC에 수억 달러의 손실을 예상한다고 답했고, 일부 기업은 수십억 달러에 달한다고 밝혔다.

수출허가 제도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런 마찰 자체가 정책의 목적이라고 주장한다. 민감한 제품이 중국으로 흘러가는 속도를 늦추면 중국의 군사·산업 기반이 더 뒤처진다는 논리다. 하지만 USCBC가 제시한 82%라는 수치는 이 논리를 무너뜨린다. USCBC는 비용을 부담하는 수출업체를 대변하는 조직이므로 이 수치를 중립적인 감사 결과가 아니라 업계의 문제 제기로 받아들일 필요는 있다. USCBC 회장 숀 스타인(Sean Stein)은 더욱 직설적으로 말했다. 그는 수출통제가 중요하지만 제대로 조정하지 않으면 정반대의 효과를 낸다국가안보를 보호하는 데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하면서 미국의 경쟁력과 기술적 리더십을 약화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하는 기록 자체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미국이 수출허가를 거부하거나 지연하는 순간 고객이 중국이나 제3국 공급업체에서 똑같은 부품을 이미 구입할 수 있다면, 심사 절차는 해당 기술이 중국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지 못한다. 단지 미국 기업이 그 거래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막았을 뿐이다. 현재 심사 중인 신청 5건 가운데 4건에서 워싱턴이 안보 수단이라고 부르는 제도는 사실상 베이징의 자국 공급업체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 비용은 바로 이 정책이 보호한다고 주장하는 미국 기업들이 부담한다.

지난해 9월 상무부는 기업목록에 오른 중국 기업이 지분을 50% 이상 소유한 전 세계 모든 기업에 규제를 자동으로 확대했다. 동맹국과의 거래에는 60일의 과도기적 허가만 허용한 뒤 규제를 전면 적용하기로 했다. 이 규정은 오하이오의 기업뿐 아니라 아시아 전역의 합작회사와 자회사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한 달 뒤인 1030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한국에서 무역 휴전에 합의하면서 이 규정의 시행을 1년간 유예했다. 20251110일부터 효력이 정지됐으며, 이는 관세전쟁을 1년 동안 진정시키기 위해 미국이 내놓은 양보 가운데 하나였다.

상무부가 다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이 규정은 오는 1110일 자동으로 부활한다. 서울과 싱가포르, 시애틀을 비롯해 규제에 노출된 기업의 컴플라이언스 담당자들은 3개월 뒤 존재할지조차 알 수 없는 규정에 대비해 지금 별도의 심사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것은 수출통제가 아니다. 석방 날짜를 미리 정해놓은 인질극이다.

실제로 기술 이전을 차단해야 하는 수출 우회 단속은 사실상 잠들어 있었다. 상무부는 62일 고성능 AI 반도체에 대한 규제를 1년 넘게 제대로 집행하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상무부가 새로 내놓은 지침에 따르면 허가 없이 규제 대상 하드웨어를 구매한 기업도 이제 추후 통지가 있을 때까지이를 계속 가동할 수 있다.

이전 규제 체계에서 수출을 허가하기에는 성능이 지나치게 높다고 판단했던 엔비디아의 H20012월 원칙적으로 수출허가를 받았다. 1월이 되자 젠슨 황은 중국의 수요가 매우 높다고 밝혔다. 같은 달 중국 규제당국은 바이트댄스(ByteDance), 알리바바(Alibaba), 텐센트(Tencent)가 모두 합쳐 40만 개가 넘는 H200을 구매하도록 승인했다. 미국은 2월부터 소량만 허가를 내주기 시작했다. 5월까지 워싱턴은 약 10개 기업에 H200 공급을 승인했지만 단 한 곳도 실제로 제품을 출하하지 못했다. 첫 물량은 8월에야 중국에 도착했다. 바이트댄스와 텐센트가 각각 약 1만 개를 공급받았는데, 이는 양국 정부가 이미 7개월 전에 승인했던 물량의 일부에 불과했다.

대만의 TSMCH200을 생산하고,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공급하는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사용한다. 따라서 규제 집행을 한 달 늦추거나 앞당길 때마다 엔비디아의 재무상태뿐 아니라 아시아의 세 개 공급망에서 동시에 조달 결정이 달라진다. 허가 처리 속도는 해당 기술이 얼마나 민감한가보다 그 거래가 무역외교에 얼마나 유용한가와 더 밀접하게 연동된다.

한편, 베이징은 미국의 정책이 어떻게 바뀔지 기다리고 있지 않다. 중국은 20254월 희토류 수출허가를 무기화했고, 6월까지 해외 기업이 신청한 수출허가 가운데 겨우 4분의 1가량만 승인했다. 이후 런던에서 합의한 협상 틀이 일부 수출을 다시 가능하게 했다. 올해 6월에는 미국 기업 10곳을 자국의 수출통제 명단에 추가했다. 중국은 수출허가를 몇 주 만에 강화하거나 완화해 상대방으로부터 양보를 얻어내는 수단으로 활용한다. 반면 미국은 애초 수출허가 제도가 달성하려던 정책 목표와 관계없이 스스로 끊임없이 늘어나는 대기열처럼 운영한다. 제도가 표류하는 시간이 한 주씩 늘어날 때마다 서울과 도쿄, 타이베이는 미국을 우회할 대안을 구축하는 데 그만큼 더 많은 시간을 쓴다.

1110일이 되면 아시아 지역은 워싱턴의 제도가 실제로 어떤 것인지 확인하게 될 것이다. 아무도 다른 결정을 내리지 않아 상무부의 규제가 자동으로 부활한다면 USCBC의 진단이 옳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의 수출허가 제도는 판단이 아니라 관성으로 굴러가고 있다. 중국에 대한 수출을 막았다고 주장할 수도 없는 거래에서 미국 기업이 계약을 잃게 만들면서, 동맹국 반도체 기업들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미 걷기 시작한 길을 더욱 빠르게 따라가도록 내몰고 있다.

반대로 상무부가 앞으로 11주 동안 국가안보에 실제로 중요한 소수의 수출허가와 그렇지 않은 압도적 다수의 허가를 구분한다면, 비로소 합리적으로 판단할 줄 아는 누군가가 운전대를 잡았다는 첫 신호가 될 것이다. 상무부가 그렇게 하지 않은 채 한 달을 보낼 때마다 중국의 주요 반도체 제조업체들은 자신들이 경쟁해서 따낼 필요조차 없었던 고객을 더 많이 확보하게 될 것이다.

이 글은 《포린 폴리시 인 포커스》(Foreign Policy in Focus·FPIF)에 처음 실렸다.

[출처] America's China Licensing Regime Now Helps Beijing - CounterPunch.org

[번역] 하주영 

덧붙이는 말

임란 칼리드(Imran Khalid)는 지정학 전략 분석가이자 국제문제 칼럼니스트다. 그의 글은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여러 국제 언론과 출판물에 폭넓게 실렸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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