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압 속에서 더욱 빛난 비정규노동자들의 투쟁

[2005참세상이슈](7) - '비정규직 투쟁'으로 시작과 끝을 장식한 2005년

이제는 노동운동의 가장 중요한 과제이자 사회적으로도 널리 화두가 된 ‘비정규직’ 문제는 2005년에도 예외가 없어, 매년 늘어나는 비정규직 노동조합과 비정규직 투쟁이 일 년 내내 주목을 받았다. 2005년에는 특히 ‘사내하청노동자’라는 이름으로 정규직과 같은 작업장에서 같은 일을 수행해 온 파견 노동자들의 투쟁이 두드러져 ‘불법 파견’에 경종을 울리기도 했고, 아예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한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심각성이 드러난 해이기도 했다. 그러나 노동조합 설립 자체를 부정하거나 노조활동을 탄압하는 자본의 행태도 여전했다.

  6월 9일, 1공장 의장부 비정규직노조 집단가입운동 [출처: 현자비정규직노조]

불법 파견, 사내하청노동자들의 투쟁과 사측의 노조 탄압

2004년 12월 16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89개 업체 일만여 명에 대해 울산지방노동사무소가 ‘불법 파견’ 판정을 내림에 따라,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 요구가 2005년 내내 거셌다. 그러나 현대자동차 사측의 노조 탄압은 상상을 초월해, 2005년 새해 벽두부터 불법 대체인력을 투입하는 한편, 회사 경비와 관리자를 동원해 비정규직노조 조합원들을 폭행하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졌다.

2월에는 안기호 현자비정규노조 위원장을 납치, 긴급 체포되게 했으며(안기호 위원장은 노조 활동을 이유로, 한 사업장에서 4번이나 해고되는 사상 초유의 기록을 세웠다), 단식농성자들에 대한 폭행, 노조 탈퇴 협박, 구속 수배, 손배 가압류, 블랙리스트 작성과 노조 사찰, 서쌍용 사무국장 납치, 권수정 현자아산사내하청지회장 납치 등 현대자동차는 ‘노조 탄압 백화점’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됐다. 급기야 9월에 현자비정규노조의 류기혁 조합원이 노조사무실 옥상에서 자결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9월 7일, 열사정신 계승과 비정규직 철폐 결의대회

그러나 윤여철 현대자동차 사장은 10월 5일 열린 노동부 국정감사에서 “불법 파견 한 적 없다”는 엉뚱한 주장을 펼쳐 노동부의 판정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한편, 현대 자본의 불법 파견에 대한 시각을 고스란히 드러내보였다. 협력업체인 대서공영의 이병식 사장은 국정감사에 무단으로 증인 불출석해 환노위 위원들로부터 고발당한 상태다.

정규직 노동조합과 함께 꾸린 ‘원하청연대회의’를 통해 어렵게 사측과 ‘불법파견 특별교섭’ 형태로 협상의 약속을 얻어냈지만 원청인 현대자동차 측은 비정규노조와의 교섭 자리에 나오지 않고 있다. 최근까지도 김태윤 수석부위원장의 구속(12월 21일) 사태를 겪은 현자비정규노조는 현재 독자 임단투를 준비중이다.

  9월 7일, 고 류기혁 열사 장례식

한편 노동조합 결성을 이유로 2004년 12월 25일을 기해 폐업을 단행한 ‘하이닉스-매그나칩’ 사측의 처사로 하이닉스-매그나칩 사내하청노동자 수백여 명이 추운 겨울 거리로 내몰린 이래, 이들은 1년 넘게 거리에서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2005년 민주노총의 첫 전국 규모 집회는 1월 12일 청주 하이닉스-매그나칩 공장 정문 앞에서 열렸다. 지금은 구속 수감중인 신재교 하이닉스-매그나칩 사내하청지회장은 “주야 맞교대에 특근을 하고도 겨우 연봉 2000만 원의 임금을 받으며 조합원의 70%가 마이너스 통장 빚에 시달려야 하는 가혹한 현실에서 선택할 것은 노조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10년 근속에 이들의 기본급은 67만 원, 조합원들을 공장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 고용된 용역 직원의 일당은 25만 원이었다.

7월에는 하이닉스-매그나칩 사내하청지회 조합원 전원에 대한 ‘불법 파견’ 판정이 대전지방노동청으로부터 내려졌으나, 아직도 직접 고용은 커녕 사측과의 대화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사측은 ‘정규직화’ 대신 ‘완전 도급’ 계획을 세웠고, 10월에는 신재교 지회장이 강제 연행됐다. 충북지역 노사정협의회가 ‘대화’를 권고했음에도 사태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지회는 12월 27일부터 지도부 단식농성에 돌입해 있는 상태다.

  6월 30일, 하이닉스 문제 해결을 위한 전국노동자대회

  6월 9일, 민원제출을 위해 청와대로 행진하다가 연행되는 하이닉스-매그나칩 사내하청지회

2005년 벽두부터 불법파견 노동자 정규직화 투쟁을 벌인 이 두 노조 이후, 기아자동차, 쌍용자동차, 지엠대우 창원공장, 경마진흥회, 기륭전자 등 불법파견 관련 논란과 투쟁이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울산플랜트, 덤프연대 등 특수고용노동자들의 투쟁

2005년 3월 총파업에 돌입한 울산지역 건설플랜트 노동조합은 위력적인 가두투쟁과 그에 못지 않은 공권력의 폭력 진압으로 주목을 끌기도 했지만, 정작 소박하다 못해 인간적인 요구안과, 그 배경이 된 플랜트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으로 인해 많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이들은 요구안으로 유급휴일, 노동조합 인정 등과 함께 점심식사 제공, 식당과 화장실 설치 등을 내걸었다.

4월 내내 울산 집회에서 수십 명 부상, 울산시청 항의방문 시 400여 명 연행 등 과도한 공권력 개입으로 탄압받아온 울산플랜트노조는 4월 30일을 기해 70미터의 정유탑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이게 된다. 이들은 5월 18일 강제 진압된 후 연행됐고, 대규모 상경투쟁단을 조직하여 나선 상경투쟁길도 집단 연행으로 귀결됐다. 울산플랜트노조는 온갖 모진 탄압을 받으면서도 보수 언론에 의해 ‘폭도’로 매도되는 등 어려움을 겪다, 울산에서 전국노동자대회가 진행된 날인 5월 27일에 ‘다자간 협상’이란 형태로 투쟁을 마무리지었다.

  5월 17일, 울산플랜트노조 파업투쟁 승리를 위한 영남권노동자대회 [출처: 울산노동뉴스]

9월 10일 김동윤 화물연대 부산지부 조합원이 투쟁조끼와 머리띠 차림으로 신선대 부두에서 분신, 운명한 사건으로 화물연대 총파업도 가시화되는 듯 했다. 김동윤 열사의 분신 자결 이후 화물연대는 총파업 찬반투표를 실시했으나 다시 정부 제시안에 대한 찬반을 묻는 방식으로 총파업을 철회하고, 김종인 의장에 대한 신임을 묻는 등 한동안 내홍에 시달렸다.

덤프연대는 5월과 10월, 11월에 세 차례 총파업을 벌였다. 과적 관련법 개정, 유가보조, 다단계 하도급 근절 등의 요구를 내걸고 벌인 덤프트럭 기사들의 파업은, 2004년 9월 덤프연대의 결성과 함께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처지를 사회적으로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2005년 국회 본회의에서 덤프연대 노동자들의 요구를 일부 반영한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통과됨에 따라 일련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이들 건설업과 관련된 특수고용노동자 투쟁보다는 규모가 작았지만, 한원CC, 레이크사이드CC, 여주CC, 익산CC 등 골프장 경기보조원 노동자들의 투쟁은 올해도 이어지거나 새로 시작됐으며, 학습지 노동자와 최근의 서울의류업노조에 이르기까지 특수고용노동자들의 투쟁도 여전히, 혹은 더 많았던 한 해였다.

2006년, 탄압이 커질수록 투쟁도 커질 것

  10월 10일, 고 김동윤 열사 장례식
매년 비정규직 투쟁이 증가하고 비정규직 노동조합 결성도 늘어나고 있지만 그에 비례한 사업주의 탄압과 정부의 무책임도 두드러지고 있다는 것이 2005년 비정규직 투쟁의 특징이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경우 공장 내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부당노동행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이 현실이다. 노동부의 ‘불법 파견’ 판정도 정부의 방조 혹은 묵인 하에 개선되지 않고 있다.

구속이나 해고 등 고전적이고 직접적인 방식의 탄압은 물론, 배달호 열사 죽음의 원인이 된 손배 가압류를 통한 탄압도 여전하다.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를 포함, 20여 개 노동사회단체로 구성된 ‘비정규공투본’에 따르면 2005년에 구속된 비정규직 노동자는 91명, 해고자는 1,362명, 손해배상 액수는 무려 1,498억 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탄압에 대다수 비정규직 노조들이 농성하고, 단식하고, 점거하고, 자결하는 등 극한의 투쟁을 벌인 데 비해 크게 두드러진 투쟁의 성과가 없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노동조합 인정과 대화’를 요구하며 물과 식량 없이 열흘간 순천공장을 점거했던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노조는 노동부의 중재로 11월 3일 ‘확약서’를 체결했지만, ‘노동조합 인정’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더구나 확약서마저 현재까지 이행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현대하이스코는 최근 두 곳의 하청업체를 폐업하는 등 사태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

울산건설플랜트노조나 덤프연대의 투쟁도 일련의 성과는 얻었지만 후속 작업이 더욱 중요한 사례로 꼽힌다. 더불어 ‘노동자성 인정’과 ‘노동3권 쟁취’라는 근본적인 요구보다 당면한 현안 투쟁과 그에 기반한 요구를 우선시했던 특수고용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평가도 노동계 일각에서 존재하는 만큼, 2006년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 투쟁이 더욱 주목된다.

  11월 22일, 국회 앞에서 쇠사슬 농성중인 산업인력공단비정규직노조

한편, 2,3차 하청노동자들에 대한 단협 미적용에 반발하며 다시 천막농성에 돌입하긴 했지만 기아자동차 비정규직지회에서 사내하청노조로는 최초로 단체협약을 체결한 바 있고, 66일간 파업투쟁을 벌였던 산업인력공단 비정규직노조가 ‘고용승계’와 ‘단계적 정규직 전환’ 약속을 이끌어내며, 비정규직 투쟁에 가능성과 희망을 심어줬다. 긴 준비기간을 거쳐 10월 16일 공식 출범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전비연)의 2006년 활동도 기대된다.

2005년 겨울, 혹은 한 해 내내 꼬박 거리에서 보낸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또다시 새로운 투쟁의 해를 맞게 됐다. 상시적인 업무를 하는 노동자는 정규직으로 고용하라, 기간제노동자를 사용할 때는 엄격하게 사유를 제한하라, 불법으로 파견된 노동자는 정규직으로 채용해라,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해라, 원청 회사가 사용자 책임이 있음을 인정하라. 이런 당연한 요구와 원칙을 견지한다면, 2006년 비정규직 투쟁도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