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의 아픔을 호소하고 싶었습니다”

문정현 신부 21일 만에 단식 풀고, 다시 대추리로

"이제 갈 데도 없어“... 청와대 앞에서의 20여 일

문정현 신부는 지난 5일, 김지태 팽성주민대책위 위원장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식음을 전폐하고 단식투쟁에 돌입했다. 그리고 7일, 김지태 위원장이 구속되자 8일부터는 청와대 앞으로 장소를 옮겨 단식투쟁을 이어갔다.

청와대 앞 단식농성에 돌입한 날 문정현 신부는 “주민들은 절망을 넘어 이제 벼랑 끝에 서 있다. 1년 넘도록 갇혀 살던 고통... 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겠어. 할 일이 아무 것도 없어. 김지태 위원장 구속 소식 듣고 밤잠을 한 잠도 못 이뤘어. 그래서 주민들이 만류했지만 청와대로 오게 된 거야. 이제 갈 데도 없어”라며 청와대 앞까지 온 심정을 전했다.

그리고 17일이 지난 26일, 단식 21일 만에 문정현 신부는 청와대 앞 단식투쟁을 마무리 지었다.

문정현 신부, “국민 소리 듣지 않는 노무현의 결단을 촉구하는 건 무의미... 다시 대추리로”

  문정현 신부는 21일간의 단식을 마무리하고 다시 대추리로 돌아갔다./참세상 자료사진

문정현 신부는 “주민의 아픔을 호소하고 싶었다”는 글을 통해 단식농성간의 심정과 이후 투쟁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문정현 신부는 “저는 처절한 주민의 모습을 볼 수 없어 몸과 마음을 가누지 못했습니다. 식음을 전패하고 혼자 무질 없이 걷던 게 여러 날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저 거대한 위선과 폭력 앞에 왜소하기만 합니다”라며 그동안의 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이후 싸움에 대해 “국민의 소리에 귀 먹고 눈 멀은 노무현 정부의 결단을 촉구한다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이것을 확인한 이상 단식을 접고 대추리와 도두리 마을로 돌아갑니다”라고 노무현 정부에게 느꼈던 실망감을 표하고, “각자의 일상에서 조금만 더 관심을 갖고 대추리, 도두2리를 방문해 주십시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라며 평택 대추리, 도두리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삶을 기억해 주길 호소했다.

평택범대위, “정부, 미국의 압력 두려워 재협상 못하는가”

평택범대위도 26일, 기자회견을 통해 “심장 질환을 앓고 있는 70노구의 목숨을 담보한 단식에도 정부는 재협상과 군부대 철수는 물론 구속자 석방 요구조차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며 정부의 태도를 규탄하고, “우리는 자신의 눈과 귀를 막고 오로지 힘과 오기로 국민을 짓누르던 역대 정권의 말로가 어떠했는지를 노무현 정부가 되새길 것”을 엄중히 경고했다.

이어 평택 미군기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타당한 방법으로 한·미간 재협상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국민의 80% 이상이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는데 정부는 재협상은 절대 할 수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며 “정부의 결단만 있으면 재협상은 언제라도 가능한 일이지만 정부는 미국의 압력이 두려워 미국에 이를 요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평택범대위는 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7월 빈집 철거, 10~12월 강제철거 계획 중단을 요구했다.

[전문]주민의 아픔을 호소하고 싶었습니다.

주민의 아픔을 호소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대추리에 이사한지 일 년이 넘었습니다. 그 동안 정부가, 국가권력이 얼마나 무자비하고 잔인한지를 똑똑히 지켜보았습니다. 땅에 까마귀 떼, 하늘에 독수리 떼가 한꺼번에 몰려와 공격한다면 당할 자 누구겠습니까. 평택미군기지 확장을 일방적으로 강행하면서 주민들을 탄압하고 있습니다. 미국에 굴종이요 평화를 파괴하는 짓입니다.

군대와 경찰은 황새울 들녘을 공격하여 점령하였습니다. 속전속결 강을 파고 철조망을 겹겹 갈래갈래 구축하였습니다. 재탈환을 막듯 방어, 사수하고 있습니다. 국민이 적인가? 그러고도 위풍당당합니다. 대추리 도두2리 주민은 처절하게 당해왔습니다. 저는 그 고통의 산 증인입니다.

정부는 주민들에게 야비합니다. 지난 4월 30일 정부와 주민은 첫 대화를 가졌습니다. 단 번에 깨버리고 6월7일 두 번째 대화가 정해졌습니다. 김지태 위원장은 대화에 임하기 위하여 하루 전에 자진 출두하였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즉시 구속했습니다. 그러고서 하는 말이 ‘검찰과 법원이 하는 일이라 우리가 어찌할 수 없다, 하지만 보상에 응하면 김지태 위원장도 풀어주고 올해 농사도 짓게 해 줄 테니 대화에 응하라’고 달콤하게 유혹합니다. 얼마나 야비합니까! 제의에 응하지 않자 돌아서서 등에 칼을 꽂는 정부입니다.

정부는 법을 빙자하여 주민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국방부의 행정대집행 이후 줄곧 조여 오는 군경의 압박으로 대추리, 도두2리 주민들은 나라를 잃고 난민수용소에 갇혀있는 난민들 같습니다. 한 밤 중에 철조망 안 군 초소에서 비치는 서치라이트, 꼭두새벽에 군화발소리 기합소리, 밤낮으로 검문검색을 받아야만 통행을 할 수 있는 곳이 되어 버렸습니다. 숨이 막혀 죽을 지경입니다. 항의를 하지만 요지부동의 바위에 대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정부는 대추리 도두2리 주민들을 서서히 단계를 밟아가며 말라죽이고 있습니다. 주민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사업목표만 달성하면 그만입니다.

저는 처절한 주민의 모습을 볼 수 없어 몸과 마음을 가누지 못했습니다. 식음을 전패하고 혼자 부질없이 걷던 게 여러 날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겠다고 다짐하지만 저 거대한 위선과 거짓과 폭력 앞에 왜소하기만 합니다. 김지태 이장님의 구속을 보고 더 이상 견딜 수 없었습니다. 저는 단신으로 평택경찰서 앞에서 단식을 시작으로 이곳 청와대 앞에 자리를 옮겨 20여일 가까이 단식을 하였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조여 오는 심장의 압박과 고통을 참아가면서 바램은 오직 하나 주민들의 아픔을 호소하고 싶었습니다. 솔직히 저의 단식으로 구속자를 풀 수 있다는 실낱같은 믿음과 기대가 있었습니다. 그 기대를 이제 거둡니다.

김지태 위원장과 강상원 집행위원장을 비롯하여 17명이 영어의 몸입니다! 한 분이라도 감옥에 갇혀있는 한 저희 모두가 갇힌 것입니다. 감옥의 동지 여러분, 단식 시작 때 논의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박순희대표, 인권단체, 통일원로 선생님들 여러분의 동조 단식은 큰 힘이었지만 한 편 마음이 아팠습니다. 많은 분들에게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평택미군기지 확장을 완전히 저지하는 날이 바로 우리 모두의 석방입니다.

저는 이를 위해 제가 하고 있는 단식 이상의 투쟁할 것을 각오합니다. 국민의 소리에 귀먹고 눈멀은 노무현정부의 결단을 촉구한다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이것을 확인한 이상 단식을 접고 대추리와 도두리 마을에 돌아갑니다. 주민의 아픔을 가슴에 담고 유랑 길에 나서겠습니다. 평택미군기지확장 문제는 나라의 존폐문제인 만큼 국민적 힘을 모아야 하겠습니다. 저는 이에 혼신의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정부는 명심하시오. “구속자를 석방해야 합니다.” “평택미군기지 확장을 재협상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군대를 철수하고 황새울은 원상복귀 해야 합니다.”

국민들에게 호소합니다. 안보를 가장한 정부의 불의를 폭로하고 주민의 애절함을 호소합니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한반도의 평화를 가져올 수 없다.” “평택미군기지 이전을 전면 재협상하라.”고 말합시다. 각자의 일상에서 조금만 더 관심을 갖고 대추리, 도두2리를 방문해 주십시오. 아직도 늦지 않았습니다. 국민의 힘으로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은 훌륭한 경험을 우리는 가지고 있습니다. 저도 이를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치겠습니다.

2006년 6월 26일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범국민대책위원회
상임공동대표 문정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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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 , 문정현 , 평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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