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몸이 기억할 수 있는 투쟁

[전국행진연속기고](1) - 새로운 운동과 실천의 두려움을 벗고

최근 들어 한미FTA 협정, 평택 미군기지 확장, 포항 건설노조 탄압 등 굵직한 사회적 현안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놀라운 집착 속에서 어느새 3차 본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한미FTA 협상, 주민들의 분노와 활동가들의 계속되는 구속에도 불구하고 기필코 강제철거를 하겠다는 평택 문제, 노동자를 거리에서 때려 죽이고도 사과는 고사하고 탄압의 강도만을 높이고 있는 포항 사태...

시간이 지날수록 결코 감출 수없는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군사주의의 본질이 노골적으로 들어나고 있다. 위선이 밝혀진 인간의 돌변한 포악함처럼, 참여민주주의의 가식마저 벗어 던진 채 노무현 정부는 그 어느 지배 권력보다도 자본주의의 폭력성을 노골적으로 과시하고 있다.

새로운 운동과 실천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야

그 끝이 보이지 않는 노무현 정부의 사회적 폭력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사회적 저항과 투쟁 그리고 대안은 여전히 자욱한 안개 속을 허우적대고 있다.

먼저 어느 새 굳어져 버린 개별 운동의제 중심의 접근이 “하반기 대투쟁”, “11월 민중 총궐기” 등의 목표를 신뢰할 수 없는 추상적인 구호로 고착화하고 있다.

모든 투쟁의 현장에서 “신자유주의의 실체를 폭로”하고 “민주주의를 복원”하고 “노무현 정권을 심판하자”고 주장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각자의 눈 앞에 있는 일정과 실무만이 빠듯한 일상을 지배할 뿐이다.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 등 많은 연대체에 비슷한 운동단위들이 결합하여 유사한 실천을 진행하고 있지만, 최소한의 의사소통과 연대조차 쉽지 않을 정도이다. 과도한 중앙 집중식, 거대담론 중심의 운동이 내재하고 있는 문제점만큼이나 배타적인 의제별 운동 방식과 성과주의 역시 사회투쟁의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대중조직에 의지한 대의제 운동은 너무나 깊숙이 관성화 되어, 대중조직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한탕주의가 실질적인 사회투쟁의 구체적 실천을 생략하게 만드는 효과를 낳고 있다.

오랜 실천과 투쟁을 통해 만들어 온 진보진영의 대중조직들은 거대한 사회투쟁에 있어 부정할 수 없는 거점이자 진지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확인되고 있는 현재 대중조직들의 제한된 역량과 내재적 한계, 나아가 대중조직 지도부의 개량주의는 오랫동안 축적된 대의제 운동의 결과이다. 지금처럼 개인과 일상의 자율적 실천과 투쟁이 없이 대중조직을 통한 진보적 역량의 발산만을 반복적으로 요구하고 계획하는 것은 “먼 산 바라보기”에 다름 아니다.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대중조직에 기대기”는 대중조직의 관료화와 패권주의를 확대 재생산하고, 새로운 진보적 실험과 자율적 실천의 공간을 억압하는 효과를 낳는다.

따라서 하반기 투쟁을 새롭게 기획하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현재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운동‘권’의 오래된 습관과 관성은 물론, 새로운 운동을 기획하고 실천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조차 과감하게 벗어던져야 한다. 현실 투쟁의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현실의 관성에 의지한다면 새로운 사회투쟁이란 시작조차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개별의 의제를 넘는 실질적인 자본주의 반대 사회투쟁이 필요한 때

하반기 투쟁을 꿈꾸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한미FTA 반대 운동, 평택 미군기지확장 저지 운동, 다양한 노동 현안 투쟁 등 현재의 주요 투쟁에 대한 유기적, 통합적 관점과 접근이 필요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개별 의제의 자율성이나 특이성의 수준이 아니라 자기 의제 중심의 배타적 접근과 성과주의는 제한된 역량의 진보진영에게 있어 피로감과 패배주의만을 가중시킬 뿐이다. 한미FTA 협상, 평택 미군기지 확장, 노동운동 탄압 등은 노무현 정부의 입장에서는 신자유주의(자본 재편)와 군사주의(전략적 유연성) 전략 속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는 “동일한 목적의 다른 양태”일 뿐이다. 따라서 진보 진영 역시 당위의 수준을 넘어 각각의 현안을 자본주의, 특히 신자유주의와 군사주의의 심화(가속화)에 대한 강력한 반대 투쟁으로 정교하게 꿰매어 나가려는 시각이 필요하다. 개별의 사안을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가로지르는 연대성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이다.

하반기 투쟁은 각각의 운동 의제들에 내면화되어 있는 다양한 운동의 실체들이 노무현 정부와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커다란 흐름으로 매개되어, 포괄적인 사회투쟁의 형태로 확산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한미FTA 반대 운동, 평택 미군기지확장 저지 운동, 노동현안 투쟁 등의 실체와 목표를 명확하게 하는 것을 그 출발점으로 해야 한다.

한미FTA 반대 운동은 제대로 된 협상을 요구하거나 오직 한미FTA만을 막기 위한 투쟁이 아니다. 평택 미군기지확장 저지 운동 역시 주민들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나 미군기지 확장이 평택에서 일어나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하는 투쟁이 아니다. 수많은 노동 현안들 역시 투쟁 현장에서 해당 노동자의 권리만을 확대하기 위한 투쟁이 아니다. 한미FTA 반대운동과 노동자 투쟁은 초국적 자본주의의 강요된 경쟁과 삶의 빈곤화에 반대하는 투쟁이고, 나아가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적 삶의 구성을 모색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평택 미군기지확장 저지 운동은 전략적 유연성의 문제를 넘어 지구적 차원의 군사주의가 강요하는 폭력과 전쟁에 반대하는 투쟁이고,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권리와 환경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우리가 운동의제 개별의 구체적이고 단계적인 목표와 성과를 넘어 각각의 투쟁에 내재되어 있는 본질적인 모순에 직면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사회화 했을 때, 다양한 투쟁들은 현실의 자본주의와 군사주의에 전면적으로 반대하는 사회투쟁으로 확대될 수 있고 실질적인 연대투쟁으로 전환될 수 있다.

열 번의 한숨보다, 한 번의 실천을 제안한다!

마지막으로 현실 투쟁에 대한 통합적, 유기적 사유는 연대투쟁의 구체적 과정으로 실천돼야 한다. 구체적인 연대 투쟁이라는 것은 대중조직에 기대거나 조직에 위임한 투쟁이 아니라 운동가 개개인의 자율적인 실천에서 출발해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추상적 구호로써의 “대동단결”이나 “총궐기”가 아니다. 통합적이고 유기적인 관점이 구체화될 수 있는 투쟁과정을 개인과 조직이 직접적으로 설계하고 행동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할 뿐이다.

9월 8일에 ‘평택미군기지확장반대와 한미FTA협상저지를 위한 전국행진’(전국행진)이 시작된다. 한미FTA와 평택 미군기지 문제라는 현안을 분절적으로 접근해 온 관성을 넘어, 우리가 지금 이 순간에 직면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와 군사주의에 반대하는 실질적인 공동행동이자 직접행동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한 번의 전국행진이, 몇몇 활동가들의 힘에 기대고 있는 전국행진이 우리가 직면한 운동의 위기를 극복해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전국행진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단순히 평택 문제와 한미FTA 사안이 묶여 있기 때문이 아니다. 아무리 미약할지라도 하반기 투쟁에서 새로운 사회투쟁, 신자유주의와 군사주의에 직접적으로 반대하는 사회투쟁의 구체적인 실천이자 출발점이 바로 전국행진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막연한 대규모 집회나 실체 없는 총궐기만을 선언하고 기다릴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있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투쟁의 과정을 기획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한 때이다. 신자유주의와 군사주의에 직접 맞서는 다양하고 자율적인 행동들이 축적되고 숙성되고 연계되었을 때야 비로써 우리는 제목만의 민중 총궐기가 아닌 아래로부터의 제2의 민주화 투쟁, 노무현 정권 퇴진 투쟁, 자본주의 반대 투쟁 등과 마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권의 퇴진이나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사회투쟁은 조직을 굳게 믿거나, 분담금을 내거나, 공동성명에 연명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가혹하게도 당신의 투덜거림과 한 숨이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당신의 자율적인 행동, 당신의 몸이 기억할 수 있는 투쟁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아니 세상을 바꾸는 것까지는 아닐지라도 다른 삶에 대한 새로운 희망과 마주칠 수 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이 있다면, 새로운 운동과 투쟁의 실패가 아니라 정작 무엇 하나 시작해보지 못하고 또 다시 시간만 반복되는 것이다.
덧붙이는 말

이원재 님은 한미 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 공동상황실장으로, 문화연대 공동사무처장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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