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파병을 한 지역에서 2004년 6월 고 김선일 씨가 피랍되어 살해 된 후, 2007년 5월에는 다산부대 윤장호 하사가 무장세력의 폭탄공격으로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김선일씨를 납치했던 이라크 무장세력 알 지하드는 한국군의 철군을 요구했으나,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김선일 씨를 살해했다. 윤장호 하사는 미 부통령 딕 체니를 겨냥한 것이라고 분석되었지만, 다산·동의 부대가 파견된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기지 정문 앞에서 자살폭탄테러가 일어났다는 점에서 파병과의 연관성을 부인할 수는 없어 보인다.
그리고 또 다시 19일 한국인 23명이 아프간 탈레반 무장세력에게 피랍되는 소식이 들려왔다. 탈레반 무장세력들은 요구로 한국군의 철수와 탈레반 동료 석방을 내걸었다.
두 번의 사건에 이어 또 다시 파병지역에서 한국인들의 생명이 위협에 놓인 지금의 상황은 우연이 아니라‘파병’에 기댄 정부의 중동정책이 만든 필연으로 보인다.
파병 책임론 부인하는 정부
한국 정부는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그 원인을 ‘테러세력’에게로 전가하면서 ‘파병책임론’을 부인하는 자세를 유지해왔다.
윤장호 하사의 죽음에 대해서 합참은 “특별히 한국군을 대상으로 한 테러가 아니었다”며 파병과 연결하는 것을 극구 부인했다. 그리고 사건의 배경을 딕 체니 부통령의 아프간 방문을 겨냥한 것이라며, 파병 자체에 문제의 초점을 맞추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노 대통령은 김선일씨 피랍사건 당시 “테러를 통해 목적을 달성하게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면서, 추가파병 방침을 고수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어 사태를 악화시킨 바 있다. 윤장호 하사 사망사건에 대해서도 “국가의 이익이라는 이름으로 국민들에게 위험을 감수할 것을 요구하고 때로는 목숨을 바칠 것을 요구한다”며, 파병정책 자체에 대한 원인진단보다는 ‘국가이익을 위한 희생’으로 의미를 부여한 바 있다.
노 대통령은 이번 아프간 23명 한국인 피랍사건에 대해서도 "동의.다산 부대는 의료와 구호 지원을 위한 비전투부대이고, 아프가니스탄 재건을 돕기 위해 노력해왔다"며 철군 일정에는 변함이 없다는 점을 확인했다.
‘파병=국익’론 고수하는 정부
“‘국익’ 위해 파병 연장하자”주장도 공공연히
피랍자들이 납치된 19일은 공교롭게도 동명부대 본진이 레바논 현지에 도착한 날이다. 이날 한국은 아프간, 이라크에 이어 레바논에 파병함으로서 미국 3대 대 테러전선에 직접적으로 부대를 파견한 국가가 되었다.
정부는 파병을 설득하기 위해 전면에 ‘한미 동맹 강화’와 ‘전후 복구사업 참여’를 내세웠다. 여기에 ‘중동지역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을 덧붙였다. ‘한반도의 전쟁방지를 위해서는 파병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도 덧붙였다.
정부는 파병을 통해 미국에 협력하면,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군사행동이나 긴장고조행위에 대해 협상력이 높아질 것이라고 설득하면서 파병을 ‘평화를 위한 실용외교’라고 표현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라크 재건 특수를 기대하기도 했다.
정부의 국익 논리는 파병연장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군과 정부 일각에서는 자이툰 부대의 9월 이후로 미뤄진 철군 시한 확정을 앞두고 “우리 기업의 석유개발권 확보와 현지 재건사업 진출 등을 위해 필요하다”며 자이툰 부대의 주둔기간을 1년 더 연장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기대는 악화되고 있는 중동의 정세에서 실현되기 어려워 보인다.
악화일로의 美 대테러전쟁
철군은 세계적 추세
한국 정부가 파병을 한 3개국에 대한 미국의 대 테러전쟁의 정당성은 아프간 전쟁부터 이라크, 레바논까지 국제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3대 테러전쟁을 통해서 상황이 나아지기는커녕, 각국의 상황이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이라크에서 미군에 대한 저항세력의 공격이 거세지자 이라크 주둔 미 사령부는 6월 그 동안 등을 돌려왔던 수니파 저항세력과 손을 잡는 조치를 취했다. 2007년 들어 3만 명이 넘는 추가병력을 파병했지만,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한 채 상황만 악화되고 있다. 최근 들어 미 의회 내에서 이라크 철군 법안을 둘러싸고 이라크 전쟁의 ‘정치적 비용’을 공화당이 질 것인지 민주당이 질 것인지 공방을 하고 있는 것은 이라크 전쟁이 실패했다는 반증이다.
아프간에서도 미국이 승리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상황은 다르다. 미국은 카르자이 현 아프간 대통령을 내세워 아프간에 대한 통제력을 행사하려고 하고 있지만, 무능하고 부패한 대통령이라는 민심이반을 배경으로 해 미군과 나토군의 거듭된 공격에도 불구하고 아프간 남부와 동부에서 과거의 세력을 회복하는 등 어느 정도 재기에 성공하고 있다.
레바논에서도 미국의 정책은 실패하고 있다. 작년 7월 미국을 등에 업은 이스라엘이 레바논 정부와 합세해서 ‘테러범’으로 미국이 지목하고 있는 헤즈볼라를 공격하고 있지만, 오히려 헤즈볼라는 세력을 확장해가고 있다.
2003년 이라크전 발발 당시 최초 이라크전 파병국가는 36개국이었다. 2004년 스페인, 뉴질랜드, 태국, 필리핀, 싱가포르 등 11개국이 철군했다. 2005년에는 포르투갈, 네덜란드 등 4개국이, 2006년 7월에는 일본 육상자위대 병력이 철수하는 등 철군은 전 세계적인 추세이다.
심지어 이라크 개전에서 미국과 손을 잡았던 영국마저도 브라운 총리 취임 후 토니 블레어 전 총리의 실패로 평가하며 철군을 서두르고 있다. 호주도 철군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인과는 동떨어진 정부의 중동인식
‘파병’정당성 없어...현지에서는 분노와 저항의 대상
그러나 정부는 이런 세계적인 추세에 역행해 파병을 고수하고 있다.
특히 동명 부대의 파병을 앞두고 6월 24일 스페인 출신 UN평화 유지군이 저항세력의 공격을 받아 6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을 입는 상황이 발생했는데도 불구하고 정부는 파병을 고집했다. 파병반대국민행동은 “헤즈볼라의 무장해제를 임무로 하는 UN평화유지군으로 파병”하는 것에 대해 계속해 우려를 표해왔다.
국가정보원은 헤즈볼라를 테러단체로 규정하고 있다. 이런 정부의 시각은 헤즈볼라 저항세력을 바라보는 미국의 시각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현지 레바논인들의 시각과는 정면으로 배치되고 있다. 작년 7월에 조사된 바에 따르면 레바논인들의 90%가 헤즈볼라를 지지한다고 답 한바 있다. 헤즈볼라는 테러집단이 아니라 레바논 정부에 장관과 의원을 참여시킨 정치정당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이라크에서도 미군에 대한 무장세력의 공격을 갈수록 증가하고 있어, 미 일간지 US투데이는 7월 초 미군에 대한 공격이 하루 평균 17건씩 일어나고 있다며, 이라크 내 저항세력의 추가파병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늘어나고 있어 위험수위에 이르렀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현지인들의 인식과는 동떨어진 ‘파병’에 초점을 둔 한국 정부의 대 중동 정책은 정부가 주장했던 ‘국익’은 커녕 오히려 자국민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미국과 ‘파병’에 의존한 한국 정부의 대 중동 정책은 이번 피랍사건으로 인해 다시 도전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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