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푸라기라도 잡기 위해 홍콩으로 떠나다

[이랜드 홍콩통신](2) 뉴코아-이랜드 홍콩원정 첫 날

오도엽 작가는 4월 30일, 뉴코아-이랜드 노동자들과 함께 이랜드 홍콩법인 홍콩증시 반대 홍콩원정투쟁을 떠났다. 오도엽 작가는 오는 5월 7일 귀국하기까지 홍콩에서 뉴코아-이랜드 노동자들의 투쟁을 '민중언론 참세상'에 매일 전해올 예정이다. -<편집자 주>

4월 30일 새벽. 뉴코아 노동자 김석원 씨는 잠을 자지 못했다. 비행기를 타고 홍콩으로 가는 날이다. 해외를 나간다는 설렘에 잠을 자지 못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착잡함. 지난 삼백일의 날들이 밤새 천정에 영상처럼 떠다녔다.

“생활비가 바닥이 난 게 언젠데, 비싼 비행기 삯을 들여 홍콩까지 가서 싸워야 하나. 비참하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홍콩으로 간다. 국내에서 죽는 것 말고도 다 해봤다는 김석원 씨의 목소리는 분노로 들떠 있지 않다. 착 가라앉아 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

팔십만 원을 받는 유통업체 비정규직 노동자가 한 달에 이 백만 원을 달라고 외친 게 아니다. 하루 종일 계산대에 달라붙어 살았다. 쉴 새 없이 밀려드는 고객을 웃음으로 맞이했다. 화장실에 가지 못해 방광염이 생기고 다리가 탱탱 부어도 생글생글 웃으며 일한 게 쫓겨난 이유다. 비정규직법 시행을 앞두고, 지난해 6월 홈에버에서 쫓겨나고 뉴코아에서 쫓겨난 노동자들은 ‘일을 하고 싶다’는 요구만을 삼백일이 넘도록 하고 있다.

홍콩 출국에 앞서 이랜드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이 열리기 30분 전. 이랜드 노동자보다 경찰이 먼저 기자회견장에 도착한다. 경찰버스 3대가 정문 앞을 가로막는다. 버스에서 내린 경찰들은 정문 안으로 들어간다.

  홍콩 출국에 앞서 이랜드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남신 이랜드 일반노조 수석 부위원장이 이랜드 본사에서 나온다. 출입문에 철제 셔터가 새로 설치되었다고 전한다.

“철제 셔터가 설치된 것을 보니 마음이 참 씁쓸하다. 쓸데없는 데는 돈을 팍팍 쓰면서…….”

참 씁슬하다

팔십만 원 받는 노동자들을 거리로 내쫓으면서 용역경비와 사무실 경호에는 비용을 아낌없이 쓰는 경영진의 모습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기자회견장에는 멀지 않아 공장에서 쫓겨난 지 1,000일이 되는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함께 했다. 기자회견이 끝나자 홍콩 원정투쟁단에게 하얀 봉투를 내민다. 더 많이 도와주지 못하는 아쉬움에 기륭전자 노동자의 얼굴에 미안함이 가득하다. 이랜드 노동자는 봉투를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한참을 주저한다. 바라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붉게 만들었다.

4월 30일. 뉴코아 노조의 김석원 씨, 서비스연맹의 박동식 씨, 사회진보연대의 한지원 씨가 원정투쟁 선발대로 출발한다. 선발대는 5월 1일 홍콩노총 주최 노동절 집회에 참석하여 이랜드 그룹의 부도덕성을 폭로할 예정이다.

오후 2시 30분, 인천공항 출국장으로 들어갔다. 김석원 씨는 “여러 생각이 교차한다. 얼마만큼 성과를 거둘지 지금은 모른다. 온 힘을 다해 투쟁하겠다는 생각밖에 없다”고 출국 소감을 밝혔다.

  4월 30일 새벽. 뉴코아 노동자 김석원 씨는 잠을 자지 못했다. 비행기를 타고 홍콩으로 가는 날이다. 해외를 나간다고 설렘에 잠을 자지 못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지금은 모른다

비행시간은 3시간 30분. 홍콩에 도착했다. 5월 2일 베이징 올림픽 성화 도착을 앞두고 출국장 앞에는 연두색 군복을 입고 무장을 한 이들이 진을 치고 있다. 나오는 이들을 바라보는 눈이 예사롭지가 않다.

선발대의 개인의 짐은 간단했다. 고추장이나 김치 하나 없다. 의례 해외를 나갈 때 사가기 마련인 컵라면이나 종이 팩 소주도 없다. 대신 현수막과 유인물, 몸자보, 머리띠가 짐의 전부다.

화물로 맡긴 짐들 가운데 각목을 끼운 현수막이 보이지 않는다. 성화 봉송을 앞둔 민감한 때라 혹 올림픽 관련 시위용품으로 오인 받아 빼앗기지 않았을까, 모두들 긴장을 한다.

몇 해 전 농민들과 WTO반대시위를 하러 홍콩에 왔을 때, 농민회 깃발 때문에 출국장에서 가로막혔던 기억이 떠올랐다.

찾지 못했던 현수막은 다행히 컨베이어에 걸려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었다.

공항을 나서자 습기를 머금은 뜨거운 기운이 확, 밀려온다. 저녁인데도 25도다. 습도는 80%가 넘는다.

뜨거운 기운

공항으로 마중 나온 사람은 아무도 없다. 원정투쟁단은 여기에서 시작해야 한다. 돌아가는 날에도 이랜드 노동자가 왔는지 홍콩 시민들은 모를 수도 있다. 손가락질을 받을 수도 있고, WTO 시위 때처럼 경찰에 끌려가고 재판을 받을지도 모른다. 공항버스를 기다리는 김석원 씨의 얼굴에는 출국 때 한 말처럼 만감이 오가고 있다.

물론 박수를 받으러 온 것은 아니다. 국내에서 죽는 것 말고는 지난 300일 동안 일터를 찾기 위해 온갖 일을 했다. 김석원 씨의 말처럼 홍콩에 온 것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절체절명의 마음, 그 하나뿐이다.

시내로 들어오니 ‘쇼핑의 천국, 홍콩’이 실감 나도록 네온사인이 요란스럽게 빛나고 있다. 숙소에는 홍콩노총의 후이 시오 레잉 조직간사와 AMRC(ASIA MONITOR RESOURCE CENTRE)의 도리스 리가 기다리고 있다.

5월 1일 홍콩노총의 노동절 집회와 이랜드 원정투쟁단의 일정에 대해 논의를 했다.

지금은 5월 1일 새벽 2시 35분이다. 어제 한숨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던 김석원 씨는 내일 노동절에 쓸 연설문 작성에 졸린 눈을 부릅뜨고 있다. 영어로 연설해달라는 홍콩노총의 부탁에 연설문을 영어로 작성하느라 끙끙대고 있다. 주어진 5분의 연설시간동안 김석원 씨가 던지는 말이 이후 원정투쟁의 시금석이 되리라는 부담감에 어깨가 더욱 무거울 거다.

  4월 30일. 뉴코아 노조의 김석원 씨, 서비스연맹의 박동식 씨, 사회진보연대의 한지원 씨가 원정투쟁 선발대로 출발한다. 선발대는 5월 1일 홍콩노총 주최 노동절 집회에 참석하여 이랜드 그룹의 부도덕성을 폭로할 예정이다.

오늘 밤도 잠 못 들고

저녁식사는 오후 4시경에 비행기에서 먹었던 기내식으로 대신했다. 선발대의 재정을 맡은 박동식 서비스연맹 사무국장은 생각보다 비싼 숙박비에 계산기를 두들기느라 바쁘다. 박스를 깔고 길 위에서 잘 날이 가깝다는 느낌이 팍팍 밀려온다.

지난여름 홈에버 월드컵몰점에서 보았던 한 여성 조합원의 편지가 떠올랐다. 며느리 보렴, 으로 시작한 편지다.

‘보잘 없는 시어머니가 되서 미안하다. (줄임) 우리 일곱 식구가 한 자리에 모여서 즐겨서면 좋아을 것을 직장 파업 투쟁으로 월드컵 점 홈에버에서 종이박스 한 장을 깔고 내 방인양 매일 밤을 새우면서 농성을 하너라고 집에도 못 갔다. 너는 이 시애미의 심정 충분히 이해하리라 믿는다. (줄임)’

맞춤법이 틀리고 글씨는 삐둘어도 그 마음만은 어느 누구보다도 올바른 이랜드 노동자의 편지다. 잠못드는 새벽, 이 편지를 써던 조합원이 지금은 일곱식구가 모여 밥상을 마주하고, 이제는 며느리에게 미안해하지 않을까, 하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을 한다.
논설
사진
영상
카툰
판화
기획연재 전체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