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국미사를 마치고 사제단을 필두로 남대문 방향으로 행진에 나선 시민들의 행렬은 소공동, 을지로를 지나 밤 10시경 다시 시청 광장으로 돌아왔다. 시청 광장이 가득찬데다 경찰의 차벽으로 시국미사에 함께 하지 못하고 있던 시민들까지 행진에 합류하면서 한때 7만여 명(주최측 추산)에 이르는 행렬이 만들어졌다.
경찰은 이날 사제단과 시민들의 행진을 교통경찰들을 동원해 인도해 마찰은 생기지 않았으며, 국가인권위원회 직원들도 현장에 나와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으나 아무런 돌발 상황 없이 행진이 마무리됐다.
행렬이 다시 시청 광장에 도착하자 정의구현사제단 총무인 김인국 신부가 방송을 통해 "이제 밤 10시가 되었으니 마쳐야 할 시간"이라며 "내일도 평화로운 시위를 이어가려면 지금은 가족들 품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들이 좀체 자리를 뜨지 못하자 "아쉬운 마음은 알겠지만 사제들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내일을 기약하며 돌아가도록 하자"고 재차 당부했다.
한편 경찰은 시민들의 행렬이 서울 시청 광장으로 다시 들어서자 시청 광장에서 도로 방면을 전경버스 차벽으로 모두 막고, 의경들을 동원해 폴리스라인을 쳤다. 대다수 시민들은 열려 있는 인도를 이용해 상당수 귀가하고 있으며, 아직 많은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시청 광장 곳곳에 모여 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내일 저녁에도 시청 광장에서 시국미사를 연다는 방침이다.
사제단과 시민들, 남대문으로 행진 시작
[3신 30일 21:00] "오늘 부디 평화 원칙을 지켜달라" 당부
오후 8시 50분경 성찬식을 끝으로 시국미사를 마친 사제단과 시민들은 거리 행진에 나서고 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총무인 김인국 신부는 시청 광장에 모인 시민들을 향해 "오늘 가두행진은 수녀님, 수도자들과 우리 교우들과 함께 하는 시위인만큼 평화의 원칙을 부디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인국 신부는 "지금까지 잘 해오신 줄 압니다만, 오늘밤 비폭력의 원칙이 깨지면 다시는 서울 광장을 되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며 "비폭력과 평화의 힘으로 서울광장을 되찾고 국민의 건강권과 검역주권을 우리 손에 넣도록 하자"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 "대통령님 사랑합니다, 제발 국민의 소리를 들으세요"라고 외친 김인국 신부는 "우리는 반찬 투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생명권과 건강권을 주장하고 있는 것인데, 왜 국민의 뜻에 순종하는 것은 어렵고 부시의 비위를 맞추는 것은 그렇게 쉬운가"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오후 8시 50분 현재 십자가를 든 사제단 신부를 필두로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다, 촛불이 이긴다"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든 신부들을 앞세워 가두행진이 시작됐다. 사제단은 한 손에 초를 들고 시민들과 함께 '헌법 제1조'를 부르고 있다.
오늘 행렬은 광화문과 청와대 방향이 아닌 남대문을 향한다. 정의구현사제단은 "더이상 대통령을 찾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가 진짜 소통해야 할 대상은 국민이고, 대통령은 국민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며 남대문에서 소공동, 을지로를 지나 다시 시청 광장으로 돌아오는 행진 경로를 예정하고 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오늘부터 서울 시청 앞 광장에 천막을 치고 단식농성에 들어갈 계획이며, 매일 저녁 6시 30분에 광장에서 미사를 열겠다고 밝혔다.
경찰은 사제단과 시민들의 가두행진을 막아서진 않고 있으며, 시민들은 "이명박은 회개하라", "어청수는 회개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사제단을 따르고 있다.
"국민을 속이는 자, 회개하게 해 주소서"
[2신 30일 20:00] 정의구현사제단 시국미사 순조롭게 진행
▲ 손피켓을 들고 입장하는 사제단 |
"백성이 나라의 주인되게 하시는 하느님, 국민이 모든 권력의 원천이 되게 하시는 하느님, 한 지도자의 교만과 도끼날에 우리가 무참히 꺾이는 슬픈 참상을 지켜보며 괴로운 중에 이 미사를 봉헌하고 있나이다. 국익을 도모해야 할 위정자들은 사대주의의 어리석음에 빠져 굽신거리고, 국민을 보호해야 할 공권력이 몽둥이를 휘두르고 있습니다"
"거짓말로 국민을 속인 이의 마음을 회개로 이끄시고 폭력에 상처입은 이들을 어루만져 따뜻이 낫게 하시며 이 자리의 우리 모두가 불의에 맞서 용감히 싸울 수 있도록 굳센 용기와 지혜, 물러나지 않을 의지를 주소서"
오후 7시 30분경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주최의 시국미사가 시민 3만여 명이 모인 가운데 시작됐다. 전종훈 시몬 대표신부의 집전으로 진행된 이 미사에서 전종훈 신부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며 "오늘 이 자리는 국민이 주인임을 확인하는 자리"라고 미사의 시작을 선포했다.
카톨릭 신자들뿐만 아니라 시청 광장에 운집한 시민들은 경건한 분위기에서 기도와 성가에 함께 했으며, 강론 중간 환호와 박수를 치기도 했다.
전종훈 신부는 강론에서 "미국산 쇠고기가 절대 안전하다고 홍보하는 조중동의 후안무치는 경악할 일"이라며 "본분을 버리고 이해득실에 따라 말을 뒤집는 언론의 실상이 알려진 것은 만시지탄이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또 "대통령이 많은 국가정책에 있어서 국민을 속이는 현실은 더 큰 불행"이라며 "대통령은 국민이 순진하다고 착각하나 보다"고 꼬집기도 했다.
이어 전종훈 신부는 "쇠고기 협상도 울분할 일이지만 깊이 새겨야 할 천심을 폭력으로 억누르는 정부의 교만한 태도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미국에 충성하는 맹목적 사대주의도 딱한 일이거니와 돈을 위해 정신의 가치를 값싸게 여기는 정부의 경박한 물신숭배"를 성토했다. "국제적 망신을 일으킨 졸속 협상이나마 복종하는 것이 한미FTA 체결 조건에 유리하고 자유무역이 경제를 끌어올릴 것이라는 억측이 옳다고 가정해도, 결과는 이미 굳을대로 굳은 양극화를 더 극단으로 몰고 갈 것이라는 게 교회의 판단"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전종훈 신부가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다는 성경말씀을 묵상하며, 오늘까지 촛불을 지켰던 민심을 지지하고 격려한다"며 "우리 사제들은 청정한 수도자들과 전국 교우와 함께 무장경찰의 폭력에 숭고한 촛불의 뜻이 꺾이지 않도록 지켜 드릴 것"이라고 말하자 시민들의 환호와 박수가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전종훈 신부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쇠고기 협상의 실패를 인정하고 국민 앞에 겸손하게 사죄를 청하는 뜻으로 장관고시를 폐하고 쇠고기 전면 재협상을 선언할 것 △소통을 강조하는 대통령은 먼저 국민의 소리를 듣고 진심을 헤아린 다음 국민과의 대화에 나설 것 등을 호소했다.
언론에 대해서는 "쇠고기 문제를 친미 대 반미, 진보 대 보수의 이념갈등으로 몰아가면서 핵심을 왜곡하지 말 것"을, 정부에게는 "과잉 폭력 진압을 지시한 어청수 경찰청장을 해임하고, 시위중 연행된 사람들과 대책회의 구속자들을 전원 석방할 것"등을 요구하기도 했다.
국민들에게도 "촛불은 평화의 상징이며 기도의 무기이며 비폭력의 꽃"이라며 "우리가 비폭력의 정신에 철저해야만 폭력의 악순환을 끊어버릴 수 있다, 저마다 마음을 비우고 맑게 하여 지친 세상을 위로하고 서로에게 빛이 되자"고 말했다.
시청 광장 시국미사에 2만여 명 운집
[1신 30일 19:00] "국민들이 지키려는 것이 하느님 나라"
▲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미사에 시민 2만여 명이 모였다. |
오후 7시 현재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주최의 시국미사가 예정돼 있는 서울 시청 앞 광장에는 카톨릭 신자들을 비롯해 2만여 명의 시민들이 운집했다.
서울시가 시청 앞 광장 '잔디교체 작업'에 착수하면서 서울시 관계자들이 훼손된 잔디를 대부분 뜯어내 군데군데 흙 무더기가 쌓여 있지만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이곳에 온 시민들은 흙바닥 위에도 빼곡히 자리를 잡았다. 경찰은 오늘 시국미사가 종교행사인 만큼 불허 방침을 내리진 않았으나, 시청 광장 주변을 전경버스 20여 대로 둘러쌌다.
시국미사에 예상보다 많은 시민들이 모여 주최측인 정의구현사제단이 무대차량 등 음향장비를 준비하고 있어 당초 오후 6시에 시작하기로 한 시국미사는 다소 지연되고 있다.
카톨릭 교인들은 미사보를 쓰고 손에는 묵주와 성가 책을 들었으며, 교인이 아닌 시민들도 함께 섞여 '아침이슬', '광야에서'와 성가를 함께 부르고 있다. "행동하지 않는 믿음은 부활이 아니다",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마태 10.26)" 등의 내용이 적힌 피켓도 눈에 띈다.
정의구현사제단 총무인 김인국 신부는 "오늘 정말 평화로운 행진이 될 수 있도록 경찰과 시민 모두 신중하게 돌아보고 고민할 시간을 마련하려 한다"며 "촛불을 끌 수 없는 시민의 마음을 이해해야 하며, 자신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아 분노하고 있는 이들의 요구가 부당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경찰은 80년대식 진압으로 회귀하는 과잉 충성을 하지 말고 시민들이 평화행진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문정현 신부도 "우리는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며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신부들이 싸워왔고 신부로써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인터뷰] 생활성서회 신미라 수녀
신미라 수녀는 오늘 미사에 대해 "수도자는 원래 하느님의 나라를 앞당겨 보여주는 사람"이라며 "국민들이 생명과 환경에 관심을 갖고 하느님이 만들었던 본래 세상을 지키려고 하는 것이라면, 우리 수도자들도 그것이 하느님의 나라이고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 제 몫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나왔다"고 말했다.
최근 과격해진 경찰 진압에 대해서는 "나오기 전에 언론이나 TV를 통해 촛불집회의 여러 장면들을 보면서, 우리가 나가도 폭력이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우리의 원래 목적이 있기 때문에 (경찰 폭력에 대한) 큰 두려움은 없다"고 대답했다.
또 "우리가 어떤 것을 희망하면 그것이 언젠가는 이뤄진다는 것을 역사 안에서 확인해 왔다"면서 "강경 진압이 있다고 해서 올바른 일이 이뤄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금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말하는 훌륭한 국민들, 옳은 일에 투신하는 시민들이 있었다는 걸 후대에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신미라 수녀는 이 국면에 대한 앞으로의 예상을 묻는 질문에는 "(정치인들이) 소통에 대한 얘길 많이 하는데, 무엇을 결정하라고 정치인을 뽑아주었으면 마땅히 국민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며 "그들도 목표가 있겠지만 국민과 조화롭게 소통하지 않으면 목표가 완성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오후 6시 40분경에는 시청 광장 주변에 대기하고 있던 경찰들과 시민들 간에 실랑이가 벌어져 한때 2명이 연행되기도 했다. 시민들이 연행자가 발생한 시청역 4번 출구 부근으로 몰려가 "연행자를 석방하라"며 한동안 소란을 빚었다.
경찰 지휘관은 시민들의 요구에 "전경대원이 담배를 피우고 꽁초를 버렸다는 이유로 시민이 폭행했다, 폭행죄로 연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를 목격한 시민들은 "꽁초를 버리지 말라"며 전경의 어깨를 건드린 것 뿐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시민들이 꽁초를 버려도 경범죄가 적용되는데 전경은 무슨 권리로 아무데나 버리느냐, 폭행은 말도 안된다, 당장 석방하라"고 계속 주장했다.
경찰은 시민들의 계속된 항의에 전경버스에 10여 분간 구금했던 시민 2명을 풀어줬다.
▲ 시민들이 시청역 4번 출구 부근에서 경찰의 시민 연행에 항의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