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용산에서4

[이수호의 잠행詩간](30)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뉴타운 도시재개발 용산4구역 120학살의 현장, 남일당 합동분향소 앞, 길가에 핀 꽃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작은 화분에 심겨 곱게 자란 꽃들, 어느 날 밤 미사 때 정성스레 바쳐진 꽃들, 전경차 매연에 길거리 흙먼지에, 물 한 번 제때 제대로 얻어먹지 못하고, 7월 불볕에 시들거리는 꽃잎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 꽃 하염없이 바라보는 초점 잃은 유족의 눈길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수사 기록 3천 쪽 내 놓으라 거리행진 하다가, 자식놈 같은 전경의 군홧발에 짓밟혀 깁스붕대까지 한, 그 유족의 오른 팔이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농성 천막에서 책 읽고 있는 신부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이 시대의 성직자가 어디에 있어야 하냐며, 누군 뭐 좋아서 여기 있냐며, 그냥 못 떠나서 있는 거지 하시며, 씩 웃는 하나님 같은 흰 수염이 우리를 더욱 슬! 프게 한다. 저녁 일곱 시면 어김없이 열리는, 죽은 이를 천국으로 인도한다는 구성진 가락의 연도로 시작하는 미사가 우리를 슬프게 한다. 미사가 끝나면서 노신부님께서 흰 수염 휘날리며 팔고 다니는 ‘여기 사람이 있어요.’ 라는 책자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국민을 때리지 마십시오.’, ‘제발 거짓말 좀 하지 마십시오.’, ‘시대와 동고동락하지 않는 종교는 위선입니다.’, 써 붙인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글귀들이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집회나 기자회견, 문화제에서 빠지지 않는 ‘유족대표의 인사말씀’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어느 결에 늘어버린 매끈한 말솜씨, 이제 몸에 붙어 제법 어울리는 상복이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농성장 구석에 굴러다니는 강력파스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유족들이나 노신부의 온 몸 구석구석의 통증이, 몇 장의 파스로 다스려질까 라는 생각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남일당 합동분향소 앞을 지나는 경찰을 보면, 신도 신지 않고 몸을 날려 멱살을 잡거나 밀어서 쫓아버리는, 유족들의 날랜 동작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뭐라고 씨부렁거리며 도망가! 는 경찰들의 비굴한 모습이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철거될 벽에 그려놓은 비에 젖고 바람에 흔들리는 휴지쪽 같은, 행동하는 화가들의 그림이나 착한 시인들의 벽시가 우리를 슬프게 한다. 해결되지 않은 현장을 차마 떠나지 못하고, 안타까워하며 발 동동 구르는 시인, 화가, 촛불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언제나 젖어 있는 연민의 눈망울, 그 눈망울 뒤로 울컥울컥 치솟는 심장의 붉은 피 같은 분노와, 끝없는 절망감이 뒤섞인 묘한 눈빛이 우리를 한없이 슬프게 한다. 늘어서 굉음을 내고 있는 전경버스, 그 사이사이나 골목의 구석구석에 숨어서 바퀴벌레처럼 눈깔을 휘번득거리고 있는, 전경들의 피로한 모습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사랑하는 국민의 아들 전경들아! 왜 부모형제에게 물대포 쏘고, 소화기 뿌리고, 철거민을 죽음으로 몰아넣으라는 더러운 명령을 따르는가? 너의 젊고 푸른 양심과 애국시민들의 명령을 따르라’ 전경들 몸 숨기고 있는, 길거리 배전판에 갈겨 쓴 즉석대자보가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빈민사목위원회에서 만든 부채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이렇게 더운 날 땀 뻘뻘 흘리며 마련해 온 어느 성당의 50명분의 삼계탕이 우리? ?슬프게 한다. 신나게 닭다리 뜯으며 바라본, 합동분향소 앞에 추레하게 걸려 있는 빛바랜 다섯 분의 대형 그림영정, 그 얼굴의 편안하고 잔잔한 미소와 지난 어버이날에 누가 꽂아준 시들고 말라버린 카네이션이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용산에서의 학살, 172일을 넘기고 있다. 7월 복더위에 장마까지 겹쳤다. 그러나 유족들과 신부님들 눈빛이 더욱 선해졌다. 눈이 맑아야 끝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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