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문제로 시끌시끌하다. 한 쪽에서는 불법 낙태를 하는 병원을 고발한 의사들이 있고 낙태를 하는 비용이 300만원을 넘는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이 와중에 성폭행으로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된 여성이 낙태를 원할 경우 고소장을 가지고 오라는 등의 2차 가해도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한국사회에서 이렇게 낙태문제가 전면에 대두된 적이 있었나 싶다.
사실 낙태는 참혹한 일이다. 학교에서 실습을 하면서 본 낙태는 충격 그 자체였다. 물론 실습을 하는 병원이 대학병원인지라 이 곳에서 시행되는 낙태는 법적으로 용인되는 몇 가지 경우에 불과하고 따라서 실습을 하는 학생 입장에서도 볼 일이 별로 없다. 그렇지만 개원가를 방문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지금까지 인공임신중절 수술은 보편적으로 대부분의 산부인과에서 받을 수 있는 수술이었다. 아직은 형태를 파악하기 어려운 세포 수준에서부터 인간의 형태를 뚜렷하게 알아볼 수 있는 수준에 이르기까지 임신의 다양한 단계에서 낙태는 있어왔다. 학생 시절 내가 본 낙태는 ‘해서는 안 될 무엇’이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고 개업을 하면 낙태를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산부인과를 선택하지 않는 친구들도 있었다. 아마도 이런 인식이 산부인과 의사들이 ‘낙태를 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게 하고 병원을 고발하는 등의 적극적 행동을 하게 하는 원인 중에 하나일 것이다.
물론 이런 관점에는 ‘인간’ 또는 ‘생명체’의 존엄성에 대한 논란이 있다. 수정부터 세포의 발생 단계를 거쳐 개체가 자라고 성숙되는 그 순간의 어느 시점을 딱 잘라서 ‘인간’이 되는 기준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렵지만 결국은 생명을 죽이는 일이라는 죄의식과 낙인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낙인 때문에 낙태를 선택한 여성은 육체적 위험 뿐만 아니라 말 할 수 없는 죄책감과 고통을 떠 안게 된다. 존중 받아야 하는 생명이 없어지는 과정, 몸에도 안 좋고 정신 건강에도 안 좋은 낙태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여성, 그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는 이 과정이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만나본 여성들의 경험을 빌어 이야기해보자면 낙태를 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기혼자의 경우에는 계획하지 않았던 아이가 생긴 경우에 고민을 한다. 특히 위로 둘이 다 아들이거나 딸인 경우에 그 고민은 배가 된다. 기혼자의 경우에도 학업 때문에, 직장 때문에, 일을 그만 둘 수가 없어서, 아이를 낳고 싶지 않아서 낙태를 고민한다. 비혼자의 경우에는 미혼이라는 사실 자체가 낙태의 중요한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 임신이 결국 결혼으로 이어지는 과정에 대한 고민도 이어진다. 다양한 이유들이 있지만 나는 이것이 불안한 미래와 불편한 현재 사이에 무엇을 선택하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낳게 되었을 때 겪게 될 미래의 많은 과정들이 불안한 것이다. 아이를 보살피고 키우고 그 아이와 함께 삶을 영위해 나가는 것이 행복하기보다 불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모로서 그 아이에게 ‘행복한 삶’을 주어야만 할 것 같은데 그러지 못할 것이 너무 뻔 해 보이기 때문에 미래가 불안한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훼손되어갈 ‘나’의 정체성이 불안한 것이다. 생산성과 경쟁력으로 평가받는 세상에서 어느 순간 사라지게 될 ‘나’의 인생이 불안한 것이다. 이런 불안 속에서 아이와 함께하는 기쁨과 즐거움은 그리 큰 보상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 같다. 선택을 해야 될 순간에는 불안이 훨씬 크게 작용한다. 한편 낙태를 결심하는 순간 현실은 엄청나게 불편해진다. 왠지 모를 죄의식을 느끼게 되고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만 것 같은 상처가 여성의 마음에 각인되어진다. 이런 불안과 상처를 온전히 감내해 나가야 하는 것은 다른 누가 아닌 바로 여성이다.
이제는 제발 인구가 많으니 아이를 그만 낳아야 한다거나 출산율이 너무 낮으니 아이를 낳아야 한다거나 임신한 태아를 죽이는 것은 살인이니까 하지 말아야 한다거나 고령화 사회의 부작용을 생각해서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는 그만 했으면 좋겠다. 인구 정책이 노동시장과 경제 정책에 가장 중요한 요인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 과정에서 온전히 고통받고 선택을 강요 받는 것은 여성이다. 그녀들에게 자신의 현재의 삶과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의 삶을 저울질하게 하지 말란 말이다.
물론 낙태를 하게 만드는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가 더 크다고 할 수도 있고 임신을 예방하기 위한 다양한 교육과 경험의 제공과 피임에 대한 인식의 확산도 중요하고 사후 피임과 같은 조기 대책도 중요하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이 낙태를 결심했다면 그 과정이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상처가 덜 되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죄책감을 느끼는 의사들이 안전하게 낙태 시술을 안 해줬기 때문에 더 큰 위험에 빠지거나 불법이라는 낙인 속에 또 다른 불안에 빠지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낙태라는 과정에서 무엇을 선택하든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것은 여성일 수밖에 없다. 불안을 감당하든 불편을 감당하든 그 주체는 여성이라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 과정은 여성의 몸에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 과정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성이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지는 게 뻔한 싸움, 그녀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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