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날의 일이야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지만 이명박 정부 역시 그 임기를 마치고 나면 몇 가지 의제로 기억에 남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이후 지금까지를 돌아보면 경제 위기, 한반도 대운하 및 4대강 사업, 세종시, 천안함, 촛불 등의 의제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리고 전교조도 자리잡고 있다.
전교조, 유래없는 탄압에 시달려
일제고사로부터 시작된 교사들에 대한 공격은 최근 한나라당 의원들에 의한 명단공개에 이르기까지 파상적으로 진행되었다. 한 단체에 대해 이렇게까지 집요하고 다양하게 정권차원에서 공격한 사례도 드물 것이다. 그 공격 수위와 방법도 다양하다. 파렴치한 집단이라는 이미지 씌우기와 같은 이데올로기 차원에서부터, 회비 내지 못하게 하기, 단체 규약 간섭하기, 상근활동 못하게 하기, 그리고 조합원의 파면 해임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하다. 단체 자체의 해체를 제외하고는 이제 거의 다 나온 셈이다. 물론 아직 실행하지 않은 다른 방법이 있을 수는 있지만.
전교조는 정부의 이런 과분한(?) 관심과 대접을 원치 않을 것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전교조가 원하던 그렇지 않던 간에 세간의 입에 오르내렸고 이미 전교조는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듯하다. 그리고 다시 전교조는 2010년 5월 24일 200여명의 파면 해임이라는 마치 피할 틈도 없이 날아오는 쇠몽둥이와 같은 직격탄에 얻어맞았다.
필자는 이 사건의 절차적 정당성이나 지방자치 선거라는 국면을 앞둔 정치적 의도 같은 것을 시시콜콜 따지고 싶지 않다. 근대사회에서 가치중립적이라고 여겨지고 있는, 그리고 절차적 객관성을 통해 다수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한다는 법이 이 시대에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를 묻고자 한다. 법 존재의 의미가 법의 해석과 집행 주체의 성격에 의해 얼마나 철저하게 왜곡될 수 있는지를 이 사건은 보여주고 있다. 나아가 개인에 의한 전제나 신분에 의한 집단적 지배체제로부터 벗어나 법에 의한 지배 또는 법치국가라는 근대국가의 합리성이 얼마나 무력하고 허구적인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번 사건의 시작은 2009년 5월부터 시작된 시국선언으로부터 출발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촉발된 민주주의 후퇴, 표현의 자유 억압에 대한 각계각층의 우려가 시국선언으로 터져 나왔고 교사 5만여 명도 두 번에 걸쳐 자율형사립고 등 특권교육을 비판하고, 민주주의의 후퇴를 걱정하는 시국선언을 진행했다.
이런 교사의 시국선언에 대해 검찰은 정치활동을 금지한 국가공무원법을 위반했다며 기소했다. 사건의 수사를 진행하면서 경찰은 전교조 본부와 서울지부 사무실을 압수수색하여 시국선언이 있기 8년 전의 자료와 개인수첩까지 압수해 가는가 하면, 전교조 간부들의 3년간 개인전자우편까지 압수수색하였다. 또 일부 지역에서는 전교조 간부의 핸드폰 사용내역과 개인통장까지 뒤졌다.
그런데 시국선언 참여 교사들에 대한 무죄판결이 나오자, 검경은 전교조와 공무원노조의 민주노동당 당원 가입 여부에 대한 증거를 찾는다는 이유로 수사 과정에서 광범위하게 확보한 개인정보를 사용하여 민주노동당이 운영하는 인터넷투표사이트에 몰래 접속하고 그를 통해 교사 및 공무원들의 투표행위 여부를 확인하였다.
그 결과 지방자치 선거를 목전에 두고 파면해임이라는 사태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2010년 5월 25일 주경복 전 교육감 선거 개입을 이유로 13명을 파면 해임하겠다는 서울시 교육청의 입장을 연합뉴스가 보도한 사건의 맥락은 읽는 분들의 상상의 영역에 남겨 둔다.
공무원은 초보적인 정치행위조차 불법
일반적으로 민주주의의 형식적 요건은 보통선거권의 확대와 함께 국민이 주권자로서 자리매김된 것에 있으며, 법에 의한 지배라는 법치국가로서의 틀을 갖춤으로써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이와 함께 정치는 소수 지배자나 특권계급의 전유물이 아닌 국민 전체의 공유물이 되었다. 또한 권위주의적인 지배체제로 구성되었던 국가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고 실현하는 것으로 그 역할과 기능을 재정립하였다.
이렇게 재정립된 현대 국가에서 공직제도 또한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이를 반영하듯 대한민국의 헌법은 제7조 제1항에서 공무원이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이고, 국민에 대하여 책임이 있음을 분명히 하고, 동조 제2항에서는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규범화하고 있다.
오늘날의 공무원은 과거와 같은 군주 내지 국가의 단순한 복종적 신민(臣民)이 아니라, 공직기능수행의 주체인 공무원인 동시에 기본권주체인 일반시민으로서의 이중적 지위가 승인되고 있다. 하기에 공무원에게 비록 정치적 중립성이 요청된다고 하더라도, 공무원역시 일반시민으로서 정치적 자유권을 가진다. 정치적 자유권은 국가권력의 간섭이나 통제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정치적 의사를 형성하거나 발표할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하며, 이는 국민의 기본권에 해당한다. 정치적 자유권은 크게 3가지로 구성되는데, 표현의 자유(언론 출판의 자유), 정당 가입 및 활동의 자유, 선거운동의 자유 등으로 구성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공무원은 초보적인 정치행위조차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헌법이 보장하고 요청하는 공무원에 대한 정치적 중립성이 정당법과 공직선거법 등의 일반 법률적 차원에서 규정되고 있다. 즉 정당가입 등 공무원의 정치적 자유의 포괄적인 제한 내지 금지로 규범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다른 국가에 비해 공무원과 교원의 정치활동을 가장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
교사는 교육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자유가 없다. 이번 사건에서 보듯이 일반시민이 누려야할 표현의 자유, 정치활동의 자유가 없기에 세액 공제로 권장하는 정당의 후원금을 기부하는 행위가 목숨을 걸어야 할 결단이 되고 있다. 여기서 구태여 다른 나라의 공무원들에게 정치적 자유가 있다거나, 독일 의회에서 교사출신인 의원이 13.2%로 법조인 23.3%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직업군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나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정치적 표현의 자유 없는 교사가 어떻게 학생들에게 비판적 사고를 가르치나
교사는 교육활동의 한 주체로서, 민주사회의 시민을 양성하는 사회적 책무를 다하기 위해서라도 정치적 기본권을 가져야 한다. 학교는 단지 입시를 준비하는 기관이 아니다. 교육 활동을 통하여 학생들이 민주시민으로서의 기본적인 정치적 소양을 키워 나가는 공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호간 만남은 적극적인 정치적 표현을 통한 의사소통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교사 스스로가 표현의 자유를 포함한 정치적 자유가 없는데 어찌 학생들의 자유롭고 비판적인 사고방식을 기르는 것이 가능할 수 있겠는가?
교사의 정치적 권리를 부정하는 주된 이유로 피교육자인 학생의 판단 미성숙을 들고 있다. 청소년에 대한 기성세대의 보편적인 인식이 ‘미성년’, 혹은 ‘보호대상자’ 수준에 머물러 있어, 보호와 육성의 대상으로만 여기기 때문이다. 게다가 학벌사회의 경쟁체제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입시경쟁에 순응적인 태도를 가져야 하기에 학교나 가정에서 학생의 자기가치관 형성이나 창조적이고 비판적 능력은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부정한다. 결국 기성사회의 이런 태도로 인해 청소년들의 정치적 자각이나 실질적인 권리는 양성되기보다는 제도적으로 통제되어 왔다.
학생들은 문제적인 교육현실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교육의 주체로서, 삶의 주체로서 정치적 권리를 가져야 한다. 정치적 권리의 실현을 통해 교육현실에 대하여 스스로의 의견을 말하고, 교육정책에 학생들의 이해와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교육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나아가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는 제도정치 내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의사를 법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도록 하기 위해 선거와 피선거권을 가지는 것이어야 한다.
교사의 정치적 기본권, 이제는 가져야 한다
전교조가 일련의 엄혹한 사태에서 현행법의 절차적 정당성이나 법해석상의 차이를 두고 억울함을 외치거나, 시시비비에만 매몰되지 않기를 바란다. 법에 의한 지배, 또는 법치국가에서 법이 사실상 해석과 집행의 결정권자들에 의해 얼마나 자의적으로 왜곡될 수 있는지를, 그리하여 법이 당파적일 수밖에 없음을 이미 충분히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 교사들은 법에 갇혀 정치적인 기본권조차 유린당하고 있음을 단호하게 거부해야 한다. 당당하게 현행법에 의해 억압당하고 있는 정치적 권리와 자유를 요구해야 한다. 교사가 가져서는 안된다고 부정당한 기본적인 권리인 표현의 자유, 정치활동의 자유, 사상의 자유 등을 학생과 함께 가져야 함을 소리높이 외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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