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소리가 멈추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식물성 투쟁의지](15) 쌍용자동차 공장점거파업은 공동체의 산란을 위한 시간이었다

기계소리가 멈추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관리자 놈들 하나 없어도 공장은 잘만 돌아간다 통쾌하다 오직 명령과 통제만이 지배하던 공장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자라기 시작하고 공장담벼락 아래 풀잎은 직선과 결별하며 아이들의 웃음 쪽으로 한결 부드러워졌다 연둣빛 투쟁티를 맞춰 입은 아이 엄마들은 머리띠를 묶은 아이 아빠들과 함께 손뼉을 치며 투쟁가를 부르고 있다. 모두가 투쟁 속으로 이주하면서도 조금은 더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 어쩌면 저렇게 웃음이 서로를 쏙 빼닮을 수 있을까? 난 최근에 이런 웃음을 본 적이 없다 서로를 쏙 빼닮은 저 웃음들이야말로 평등하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는 미래의 시간이다

희망의 내면을 비추기 위해 굴뚝 위의 고공농성자들은 만월을 이루고 있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서로를 품어 만월을 이루고 있다 수백 명의 산자들이 죽은 자를 품어 만월을 이루고 있다 어떤 폭력으로도 도달할 수 없는 만월이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시간의 문처럼 빛나고 있다. 노동자의 존엄함이 만월을 이루고 있다

생산이 멈춘 공장 안에는 인간적인 삶을 이루는 모든 것들이 있다 우선적으로 위계가 사라졌다 수평을 이루고자 하는 노력들은 연어 떼의 귀향처럼 공동체의 산란을 위한 시간으로 흘렀다 서로 경쟁하고 뒷담화에 익숙했던 노동자들이 서로에게 무척이나 진지해졌다 오늘 그의 이야기는 지루하거나 불쾌하지 않고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

(오늘은 상처받지 않고 서로를 격려하기 위한 날, 내일은 차이가 차이로 빛나며 대지처럼 서로를 품는 날)

우리의 모든 이야기들은 존중받았고 공장 전체가 거대한 토론장으로 변해갔다 공장안에서 발생한 모든 문제는 공개적으로 토론됐고 우리는 그 결정에 열정을 가지고 참가했다 서로를 이해하고 전망을 공유하는 가장 구체적인 방법이었다

우리가 희망이라고 이름붙일 수 있는 것들은 수평을 이루는 것들이다 가령 삶을 다해 외치는 구호들 ―“단 한 명도 자르지 마라. 해고는 살인이다”― 이고 파업대오 전체가 자기 생을 걸어 숲처럼 무장하는 결단이며 머리띠처럼 둥글게 둥글게 인간적인 몸짓들을 묶는 협력의 시간들이다

보라! 공장은 노동자의 것이다 우리는 자본의 소유권과 경영권에 과감하게 도전했고 이제 공장의 운명은 무장한 노동자군대의 통제 하에 있다 우리는 모든 문제를 비판과 충분한 토론 속에서 해결할 것이다 직접 결정하고 직접 행동할 것이다 이 세상이 아닌 웃음들로 무장한 쌍용자동차 공장점거파업은 공동체의 산란을 위한 시간이었다 (2009년8월24일)


[필자주] 2009년도에 쓴 시를 다시 고쳐 쓰면서 쌍용자동차 22번째의 죽음을 생각합니다. 그가 투신하면서 본 마지막 세상은 어떠했을까요? 그가 참여해 건설한 노동자의 미래를 과연 보기나 했을까요? 이제 "쌍차 꼴 난다"는 이 지독한 패배주의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많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쌍용자동차 공장점거파업은 노동자들 스스로가 참여하고 건설했던 공동체의 산란을 위한 시간이었습니다. 이 시간을 신뢰하고 의지하고 위로받아야 합니다. 쌍용차 22번째의 죽음을 애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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