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 유증기 환각상태까지 왔던 특공대원들 증언 생생한데

[용사참사 공판기사를 들추며] 특공대원들, 발화원인으로 화염병 지목하지 못해

지난 2009년 9월 24일 용산참사 1심 재판의 증인으로 나온 경찰특공대 2제대 팀장 A씨는 철거민 망루 2차 진입 때 사망한 고 김남훈 경사와 나눈 마지막 대화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A씨는 2차 진입 당시 세녹스 유증기(기름증기)로 인한 심장이상으로 호흡곤란을 느껴 망루 밖으로 나가던 중이었다. 반면 고 김남훈 경사는 세녹스 유증기가 가득찬 망루 진입을 위해 A씨를 스쳐 지나갔다. 고 김남훈 경사는 A씨에게 “팀장님도 오셨군요”라는 말을 그에게 남겼다.


얼마 전, 용산 철거민 살인진압을 다룬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을 보기 위해 한 극장을 찾았지만 표가 매진돼 보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2009년 9월 15일부터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7부(부장판사 한양석)에서 본격적으로 진행한 경찰 특공대 증인 심문과정을 담은 당시 기사를 다시 들춰봤다. 고 김남훈 경사와 생사의 갈림길에서 마지막 대화를 나눴던 A씨의 증언과 그의 고통에 찬 눈빛이 떠올랐다.

<참세상>은 당시 경찰특공대원들과 경찰 수뇌부들을 증인으로 채택한 1심 공판을 빠지지 않고 취재했다. 1심 공판 과정에서 드러난 사실관계 중 가장 중요한 대목은 검찰 조서와 달리 망루 진압에 투입됐던 특공대원들이 발화 원인으로 철거민들이 던진 화염병을 지목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당시 <참세상> 기사는 “A 팀장은 작년(2010년) 11월 중순까지 고 김남훈 경사와 같은 제대에서 교육을 시키고 함께 생활했다. 그래서 목소리만 들어도 아는 사이다. 법정에 선 A 팀장은 용산참사 이후 잘 먹지도 못하고 잠도 자지 못했다고 한다. 괴로운 모습이었다. 심적 고통 탓에 우울증 증세도 보였다. 그는 이런 괴로움 속에서도 망루 안에서 들었던 ‘다 죽어’라는 소리에 대한 진술을 바꿨다. 처음엔 ‘다 죽이겠다’는 뜻으로 들었다고 진술했지만 ‘다 피하라’는 의미였다고 했다. 그는 처음 조사과정에서 철거민들에게 불리하게 진술한 것을 두고 ‘철거민들에 대한 적개심 때문’이었다고 밝혔다”라고 썼다.


유증기에 가득 찬 망루, 불은 화염병만으로 발화됐을까

용산 철거민 살인진압 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공방 중 하나는 검찰의 주장대로 화염병으로 불이 붙었느냐는 데 있었다. 특공대의 망루 진입을 위협하기 위해 뿌려놓은 세녹스와 시너 등의 유증기가 망루 안에서 고밀도를 형성하면서 조그만 스파크만으로도 충분히 대형 참사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화염병과 관련한 증인심문에서 특공대원들은 A팀장처럼 검찰에 한 진술을 번복하거나 추론에 따른 진술이었음을 드러냈다.

특히 특공대원들의 증언은 당시 작전이 부실한 정보를 바탕으로 한 작전계획이었으며, 안전대책도 제대로 세우지 않았다는 것을 드러냈다. 이는 진압과정에서 철거민들의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상 죄보다는 오히려 공권력의 업무상과실치사상 가능성이 더 상당함을 시사하는 대목이었다. 변호인단은 이 부분을 치밀하게 파고들었지만 재판부는 수많은 특공대원의 증언과 정황을 무시했다.

경찰특공대 1제대장은 처음엔 화염병을 본 것처럼 진술했지만 역시 ‘화염병으로 추정 했다’며 진술을 바꿨다. 그도 “같은 직원의 영결식 등이 있어 그랬다”며 우회적으로 철거민들에게 불리하게 진술 한 것을 시인했다.

경찰특공대 1제대는 컨테이너를 타고 망루에 진입해 농성자들을 검거하는 임무를 맡았다.

1제대장은 “농성자가 시너를 부었다고 입력돼 있어 머릿속에 정리된 것을 가상해서 진술했다. 본 것이 아닌 생각”이라며 “정확히 본 부분을 진술했어야 하는데 직원 장례식도 있고 해서 안 본 부분도 봤다는 식으로 썼다”고 진술조서를 번복한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1제대장은 “지금 생각해 보니 열풍이 밀려들어와서 넘어졌고 주변이 불바다가 됐다. 피신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안에서 (불길이) 일었는지 밖에서 일었는지 모르고 추측하고 살을 붙여서 한 것”이라고 밝혔다.

특공대 1제대 소속 안 모 대원은 “망루 안에 진입하고 나서 화염병은 하나도 보지 못했다”며 “발화가 어디서 시작한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같은 1제대 권 모 대원은 “불길은 봤지만 화염병은 못 봤다. 화재가 어떻게 났는지 모른다. 시너 냄새가 나서 그냥 화염병으로 추측했다”고 밝혔다.

최 모 1제대의 한 팀장도 “한 개의 불빛을 보고 화염병이라 진술했으나 지금 생각하면 불빛이 맞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1제대를 지원해 불이 나던 2차 진입에 함께한 이 모 5제대 대원도 처음엔 화염병이 원인이라고 주장했지만 “제 발 옆에 떨어진 화염병의 불이 그렇게 크게 번지진 않았다. 왜 불이 크게 번진지는 모르겠다. 발 옆에 떨어진 불이 원인이라고 확언을 못 드린다”고 증언했다. 그는 ‘불이 왜났는지 봤느냐?’는 질문에 “짐작했다. 큰 불의 발화지점이 어디서 시작했는지는 모른다”고 말했다.

특공대원들, “유증기로 구토와 환각상태까지 왔다”
1차 진입 후 쉬는 8분 사이, 망루 내부 세녹스 유증기만 확인했다면


특공대원들이 증언에서 밝힌 진압 작전의 가장 안타까운 지점은 1차 진입 후 8-10분 정도의 쉬는 시간이 있었지만, 망루 내부의 세녹스와 유증기를 확인할 생각을 아무도 안 했다는 데 있었다.

시너 같은 것이 흘러내린 것을 봤다는 특공대원의 증언이 있을 정도로 위험이 예상됐는데도, 누구도 폐쇄된 망루 안에서 유증기가 형성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게다가 특공대는 망루 내부에 발전기가 있다는 사실도 전혀 몰랐다.

이는 박 모 특공대장이 투입 전날 밤 11시께 확인한 세녹스 20리터 통 60개가 있다는 정보보고를 ‘대원들이 잠잘 시간이라 특별히 알리지 않았다’는 증언에서 그러났다.

참사의 원인이 됐던 2차 망루 진입 당시, 많은 특공대원이 위험성과 구토, 심지어는 환각 증세까지 느낄 정도로 유증기가 꽉 차 있었지만 대원들은 무전으로 서로 위험을 확인하거나 경고도 하지 않았다.

1제대 소속 한 대원은 “1차 진입 때는 시너 냄새가 별로 안 났으나 2차 진입 땐 환각상태였다”면서 “정신이 취한 것처럼 혼미해져서 계단을 잡고 올라갔다”고 증언했다. 그는 “불 회오리가 저한테 덮치는데도 시너에 중독돼서 정신이 없었다”며 “밀폐된 공간에 시너가 그렇게 될지 몰랐다. 마약을 하면 그런 느낌이 나겠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다행히 이 대원은 정신없이 좁은 계단 아래로 굴렀다. 그는 “죽은 줄 알았는데 깨보니 살아 있었다”고 말했다. 이 대원은 시너 냄새가 심해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무전 등으로 상황보고는 하지 않았다.

1제대 소속 다른 대원의 증언도 일치했다. 이 대원은 “2차 진입 때 시너냄새가 출입문과 계단으로 올라가는 도중에 많이 났다”면서 “약간 몽롱해지는 느낌이 났고 인화성이라 느꼈다. 이상하다 1차와 다르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고 증언했다. 이 대원도 위험은 느꼈지만 “그 상황에서 퇴각하자고 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라며 보고를 하지 않았다.

1제대를 따라 2차 진입에 들어간 5제대 소속의 모 대원도 “화재 전 진입(2차 진입) 시에 시너 냄새가 역하게 났다”면서 “1차 진입 땐 간혹 냄새가 났으나 두 번째엔 시너와 휘발유 냄새가 어지러울 정도로 났다”고 밝혔다.

대원들은 ‘위험하다는 생각이나 무전으로 보고할 생각은 안했느냐’는 변호인의 질문에 한결같이 “특공대는 최대한 빠른 진압이 목적이라 그런 생각은 안했다”고 말했다. 안전하게 농성자들을 해산시키기보다는 신속한 진압이 더 우선이었다는 것이다. 한 대원은 “빨리 진압을 해야 하는데 물러서면 장기화하니까 보루라 생각해서 끝까지 간 것이다. 특공대는 위험한 상황을 극복하고 안 물러나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소방호수로 살수하는 대원도 진입 시기 몰라...소화액 없이 진입

특공대원들의 2차 진입이 얼마나 허술했는지는 소화기의 소화액이 다 떨어진 채 진입했다는 데서도 드러났다. 1차 진입이 끝나고 재진입을 준비하는 동안 8-10여 분의 시간이 있었지만 소방대책은 특별히 세우지 않았다. 1제대 한 대원은 “망루 모서리의 함석을 뜯다가 2차 진입을 하라고 해서 소화기도 다 떨어지고 소방호스 지원도 없이 방패만 들고 올라갔다”고 말했다.

망루 밖은 발목까지 물이 찰 정도를 물을 쐈지만 망루 내부는 철제 창문으로 닫혀 있던 터라 내부에 화재가 나면 밖에서 쏜 물이 화재를 막기엔 역부족인 상황이었다.

이 대원은 “1차 진입 때 소방호수를 가지고 망루 2층까지 올라갔으나 소방호수의 수압은 낮았고 끌어당겨지지도 않았다. 무용지물이었다”고 말했다.

특공대원들은 2차 진입 때 소화기가 없었던 것은 1차 진입 때 저항하는 철거민들이 자신들을 향해 던진 화염병에 붙은 불을 끄느라 소화기를 모두 소진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1제대 소속 다른대원은 검찰의 “망루 진입 당시 가장 어려웠던 게 뭐냐?”는 질문에 “망루 내부에서 던진 화염병때문에 제일 어려웠다”고 대답했지만, 2차 진입 작전 전에 소화기 점검도 제대로 안 한 것은 치명적이었다.

심지어 컨테이너에 살수기로 물을 쏘던 특공대원들은 2차 진입이 시작됐다는 무전도 듣지 못했다. 특공대원들 사이 무전교신에도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화재 당시 망루와 2미터 정도 떨어진 컨테이너 위에서 살수를 하고 있었던 2제대 제대장은 20일 7시 6분 57초에 ‘망루 안에서 불이 많이 나고 있다’는 지휘본부의 무전내용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는 ‘망루를 해체 한다’는 무전도 못 들었다고 증언했다.

2제대장은 “그건 우리 작전 망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의 지휘 망과 특공대 작전 망이 달랐다 해도 컨테이너에서 살수를 하던 제대장이 무전으로 당시 상황을 직접 듣지 못했다는 것은 2차 진입 작전 준비의 결함을 드러내는 단면이었다.

2제대장은 컨테이너 위에서 살수를 하면서도 1, 2차 진입 시기를 몰랐다. 그는 “무전은 교신하지 않았고 망루내부에서 나는 대원과 철거민의 접전 소리를 통해 작전이 이뤄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2제대장과 함께 컨테이너에서 살수를 한 대원도 “2차 진입 시 무전기에 물이 맞아 혼선이 오기도 했고, 무전 연락은 안 왔다”고 말했다.


대형 참사 부른 실패한 작전, 안이했던 경찰 수뇌부

특공대원들과 경찰의 진술은 모두 2009년 1월 20일 새벽 경찰특공대의 용산철거민 망루 농성 진압 작전은 실패한 작전이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드러냈다. 실패한 작전의 대가는 참혹했다. 테러리스트도 아닌 평범한 세입자들을 상대로 한 작전이 철거민 5명과 특공대원 1명의 아까운 죽음으로 이어졌다.

세부 진압작전은 특공대 1제대장이 세웠지만 1제대장이 세운 대로 작전은 실행되지 못했다. 1제대장은 애초 컨테이너 2대를 동원해 나머지 1대는 망루 지붕을 뜯고 대원을 투입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막상 현장에서 컨테이너는 1대만 지원돼 1대로 작전을 수행했다. 1제대장은 변호인이 ‘빨리 작전을 하라고 안했으면 2대가 낫지 않느냐’는 질문에 “2대가 특공대원에게 수월하고, 농성자 입장에서도 안전은 2대가 더 낫다”고 밝혔다.

진압장비가 없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5제대 이 모 대원은 “팀장이 먼저 장비를 구비하기로 했는데 장비가 없어 3제대에 합류했다”고 말했다.

2제대도 장비가 안와 현장에서 작전을 변경했다. 2제대 정 모 팀장은 “소방바스켓차가 없어 작전을 변경했다”면서 “바가지차가 안 와 5제대 지원으로 배속받고 계단을 올라가는 임무를 맡았다”고 말했다.

2차 진입 전 박 모 특공대장과 1제대장이 나눈 교신 내용도 작전의 문제점을 드러냈다. 1제대장이 “아직 멀었다. 저항이 심해 못 들어가고 잠잠해지길 기다린다”고 하자 특공대장은 “내가 올라갈까”라고 말했다. 특공대장이 1제대장을 압박하지 않았다면 특공대는 좀 더 시간을 두고 망루 내부 상황을 파악했을 수도 있다.

특공대 작전의 허점은 지휘부와 망루를 지휘하는 제대장들 간에 무전교신을 전혀 할 필요가 없다던 지휘부 스스로의 주장에서도 드러났다. 당시 진압을 지휘했던 박 모 특공대장은 1차 진입 당시 망루 내부에 불이 난 사실도 몰랐다고 증언했다. 전혀 보고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 모 특공대장은 심지어 1차 진입 시점이나 망루가 전소된 2차 진입 시점도 몰랐다. 특공대의 특성상 작전에 들어가면 간섭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전체 진압을 지휘한 서울경찰청 김수정 차장도 망루 진입 시점을 전혀 몰랐다고 밝혔다. 그러나 몰랐다고 그냥 넘어갈 문제는 아니었다. 작전은 멀쩡한 세입자 4명과 특공대원 1명을 죽인 결과를 냈기 때문이다. 망루 밖으로 보이는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지휘부와 망루에 진입한 특공대가 내부 상황을 꼼꼼히 점검하고 신속한 진압만 강조하지 않았다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테러범도 아닌데 신속 진압 강박에 갇힌 특공대원들

특공대 투입을 통한 세입자 진압이 최대한 신속해야 했는지도 논란이었다. 흉악범이나, 폭탄 테러범 등 당장 인명 살상이 동반되는 일촉즉발의 상황이라 신속함을 요하는 작전이라면 위험이 감지되어도 특공대의 특성상 물러서기 어렵다. 그러나 까라면 깐다는 특공대의 강인함이 용산에선 대형참사를 부르는 원인이 됐다.

이런 특공대 특성은 이미 1차 진입 때 큰 불길이 일고 난 뒤에도, 위험성을 서로 경고하지 않는 상황이 당연했다. 건물 옥상에 직접 투입돼 작전을 지휘한 1제대장도 망루 내부 상황을 점검하지 않았다. 1제대장은 “안전하고 신속한 검거가 주목적이라 세밀하게 주변을 살피라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특공대 투입을 결정한 경찰 수뇌부의 문제점은 더 컸다. 증인으로 나온 경찰 지휘부의 증언대로라면 지휘부는 전국철거민연합에 대한 잘못된 정보와 선입견을 통해 특공대 조기투입을 결정했다. 이전 다른 지역의 철거 투쟁 현장을 통해 무조건 폭력조직으로만 생각했고 장기화할 것이라고 봤다는 것이다. 또 망루가 세워진 곳이 한강로 도로 주변이라 지나는 차량과 행인에게 위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철연의 망루농성은 무작정 싸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재개발조합과 구청이 협상 테이블에 나오도록 하기 위한 하나의 협상전술이었다. 이제까지 전철연의 망루에서 큰 싸움이 있었던 것은 협상보다는 용역업체가 물리력을 통해 망루 해체를 먼저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증인으로 나온 철거민 정영신 씨는 “조합은 우리와 협상을 하려 하기보다는 용역을 동원해 쫓아내려고 만 했다. 용역들의 폭력에 시달려도 경찰은 우리를 보호해주지 않아 전철연에 가입했다”고 밝혔다.

지난 증인으로 나섰던 이명선 당시 칼라TV 리포터는 “경찰과 용역이 자극하지 않으면 농성자들은 화염병을 던지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지나가는 시민을 향한 무차별 투척이 아닌 자기방어적인 수단으로 화염병을 던졌다는 것이다.

협상을 주선하려 했던 서울지방경찰청의 정보계 형사도 “협상 한 번 못해보고 그런 결과가 나와 참담하다”고 말했다. 세입자와 재개발조합 등과의 협상을 주선했던 이 형사는 참사에 대한 자책감으로 참사 발생 후 스스로 지원해 서울경찰청을 떠나 일선경찰서로 갔다고 밝히기도 했다.

경찰수뇌부들은 공판 내내 뻔뻔함으로 일관했다. 최고책임자였던 김석기 당시 서울경찰청장은 끝내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 김수정 서울청 차장, 박삼복 특공대장 등은 증인석에서 주로 기억이 안 난다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또 특이사항을 무전으로 보고받지 못해 아무것도 몰랐다며 사실상 참사의 책임을 현장에 투입된 특공대원과 제대장에게 사실상 떠넘겼다. 그런데도 이들은 ‘만일 지금처럼 세녹스와 발전기 등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지금도 특공대 조기 투입이 정당했다고 생각하느냐’는 변호인의 질문에는 “특공대 투입은 정당했다”고만 입을 모아 강조했다.

용산 살인진압 변호를 맡았던 김형태 변호사는 이 사건을 자본의 탐욕과 그에 동조한 국가와 경찰, 그리고 용역의 연관 관계로 규정했다. 김형태 변호사는 최후변론에서 검찰이 발화원인이라고 주장한 화염병의 증거능력은 없어졌다고 강조했다. 그는 증인으로 나온 특공대원의 이름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그들이 한 증언을 상기시키고 상기시켰다. 자신들의 동료를 작전 중에 잃은 특공대원들이 철거민들에게 유리한 증언을 할 리가 없었다. 그런 특공대원들이 수사기관에서 작성한 조서와 다른 증언을 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권 모 대원은 공소사실에 있지만 화염병을 보지 못했습니다. 김 모 대원도, 김 모 팀장도, 신 모 제대장도... 특공대원 그 누구도 화재가 났던 2차 진입 때 화염병을 던진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대원 두 명은 1차 진입 때조차 철거민들이 망루 안에는 화염병을 던지지 않았다고도 증언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화염병 관련 증언들은 모두 무시됐다. 1심 선고공판에서 한양석 부장판사는 특공대원들의 증언을 모두 ‘~로 보인다’는 애매한 판결문을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하며 읽어 내려갔다.

“동영상에 나타난 7시 5분 55초의 불꽃은 화염병 불로 보인다. 유증기에 의한 화재는 아닌 듯하다.”
“현장 검증 시 계단 1층의 깨진 유리와 3층에서 4층으로 이어진 계단에 용융된 유리파편은 불을 붙여 던진 화염병의 흔적으로 보인다.”
“안 모 대원은 불붙은 화염병을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지만 그는 수월하게 진입한 것으로 보아 후미에 있어 못 본 것으로 보인다.”
“농성자들이 불붙은 화염병을 던졌다는 대원들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 내부 진입 경찰관에 병을 던진 것으로 보인다.”
“1차 진입당시 농성자들은 불붙은 병을 던진 것으로 보인다. 2차 진입 시에도 던졌을 가능성이 높다.”
“정 모 대원은 불똥을 보았다. 최 모 대원은 2-3층 중간에서 1개의 불빛을 봤다. 이 모 대원은 여러 개의 병이 깨지는 소리를 동시다발로 들었다.”


이날 재판부는 망루 내부 화염병 투척으로 인한 화재로 특공대원이 사망했다며 용산 망루 농성자들에게 징역 6년과 5년 등 중형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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