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집 화장실 문에는 <사람이 우선이다>라는 판화 작품이 붙어 있다. 지난해 12월 송경동 시인의 첫 산문집 “꿈꾸는 자 잡혀 간다” 출판기념 후원의 밤에서 판화가 이윤엽이 기꺼이 기증한 작품을 산 것이다.
그 이후 나는 하루에 한 번 이상은 반드시 가야할 화장실 문 앞에 붙여놓고 본다. ‘사람이 우선이다.’ 하지만 이 말은 너무 슬픈 말이다. 당연히 사람이 우선이어야 할 이 말이 당연시 되지 않는 세상에서 살고 있기에 이윤엽은 심장에 새기듯이 목판을 파내어 우리들에게 전했고, 나는 그것을 보며 하루에 한 번은 마음에 새기며 나와 더불어 사는 사람들을 본다.
내가 송경동 시인을 알게 된 것은 90년대 말쯤이었을 것이다. 구로노동자문학회에서 사진을 잠깐 강의 하면서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십 년이 넘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서너 번 정도 스치듯이 만났다. 우린 그렇게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만나면 반가웠지만 따로 만나거나 하는 사이는 아니었다. 그렇게 십 년이 훌쩍 넘게 알고 지낸 사이지만 그를 잘 알지 못했다. 근황도 잘 몰랐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기사를 보았다. 희망 버스를 기획했다는 이유로 잡혀갔다는 것이다. 순간 놀랐다. 이 사람이 이런 사람이었나, 내가 알기로 이 사람은 술 좋아하고 술 한 잔 들어가면 자주 눈물을 보이는 천진한 동네 형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시인이 아니고 운동가였나...
지난해 송경동 시인이 없는 출판 기념회에 가서 송경동 시인의 책을 샀다. 도대체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꿈꾸는 자 잡혀 간다”라는 산문집이었다. 화장실에서 일볼 때 편하게 한 꼭지씩 읽어보려고 화장실 휴지걸이 모서리 옆에 올려두었다.
정말 다음날 나는 일을 보려고 화장실 변기 위에 앉아 편하게 한 꼭지 읽어보려고 책을 펼쳤다. 하지만 나는 책을 다 읽을 때까지 변기 위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한참을 울었다. 그의 책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삶 때문에 아파서 울었고, 십 년 넘는 세월 동안 송경동 시인을 너무 모르고 산 무심함에 울었고, 세상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영화를 만들겠다고 세상을 외면한 채 희망만을 꿈꿔온 내가 한없이 부끄러워서 또 울었다. 책 한 권으로 한 사람을 다 알 수는 없지만 나는 송경동이 꿈꾸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알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은 꿈꾸는 자 잡혀가지 않는 세상인 것이다.
더불어 나는 송경동 시인을 영화 기획자로 끌어들이고 싶었다. 영화가 꿈과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현실에서 자발적으로 동참한 사람들과 함께 희망을 싣고 부산으로 내려가지 않았는가, 흥행은 대박이었다. 희망버스 5편까지 나오면서, 부산영화제를 찾은 시민과 연결되어 시민축제까지 만들지 않았는가. 더불어 부산 영도에 희망의 바람을 만들어, 김진숙 지도위원이 309일 간의 투쟁을 마치고 무사 귀환하지 않았는가?
사람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심장이 달리면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있는데 바로 희망이다. 그래서 인간은 누구나 다 희망 보균자들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희망이 제거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판화가 이윤엽이 사람이 우선이라고 말한 것은 일등을 강조하는 사람이 아니라, 태어나는 순간부터 심장의 박동이 멈추는 그 순간까지 사람을 강조하는 삶을 살고, 사람이 희망이다라는 말일 것이다.
이미 태어날 때부터 심장 속에 희망 보균자로 태어난 우리들, 다시 꺼내만 주면 등 푸른 생선처럼 파닥거리며 튀어 올라 행복한 삶을 살게 해줄 희망, 그 희망버스에 희망 전도사를 싣고 부산의 영도다리를 건넌 것이 죄인가? 감옥은 죄를 지은 사람들이 들어가는 곳, 희망이란 것이 죄를 만드는 무기인가?
지금껏 십 년 넘게 영화 밥을 먹고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영화를 기획하고 만들어왔다. 그것이 영화인의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꿈과 희망을 기획하였으니 송경동 시인과 함께 감옥에 넣어줬으면 좋겠다. 나도 진짜 현실에서 꿈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
도대체 희망이 뭐기에 이명박 정부는 그를 잡아갔을까? 나는 지금 부산 구치소 0.94평의 독방에 갇혀 있는 송경동 시인에게 물어보고 싶어졌다. “우리나라 헌법 제 10조에 보면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나와 있는데, 그걸 행복 추구권이라고 한다는데, 선배는 행복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아마 그는 말투는 어눌하지만 단박에 말 할 것이다. “행복? 어... 행복이 뭐 있니? 희망이 있으면 그게 행복 아닌가?” 헌법이 보장하는 행복 추구권이란 희망만 있으면 뭐든 가능하단 것이다.
그래서 그는 행복해지기 위해 희망을 실은 버스를 타고 내려갔는데,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대박 흥행 작품을 싣고 부산 영도다리를 건넜는데 잡혀갔다. 행복해지는 삶을 살기 위해 다함께 내려갔는데 잡혀갔다. 아이러니다. 헌법이 보장하는 행복 추구권을 실현하려다가 오히려 헌법을 위반한 사람이 되어 잡혀간 것이다.
도대체 희망이란 무엇일까? 그럼 희망은 저 밤하늘에 빛나는 북극성 같은 것일까? 멀리서 빛나기만 하지 가질 수 없는 거. 별빛만으로 희망을 노래한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희망을 꿈꾸려면 자본이 있어야 한다. 희망도 돈 주고 사면되는 세상. 매일 밤 저 하늘 위의 북극성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지만 나는 그 별을 볼 수가 없다. 북극성은 이제 희망의 별이 아니라 잡을 수 없는 별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영화하는 사람이다. 영화는 평등한 예술 장르라고 생각한다. 자본과 권력에 상관없이 극장 안에선 누구나 다 평등하게 영화를 볼 권리를 가진다는 말이다. 더불어 극장 안에서는 누구나 다 꿈과 희망을 가져갈 자격이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개인적으로 평등한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 한 편의 영화가 떴다고 그 한 편의 영화에서 얻은 부와 명예를 등에 업고 다음해에 똑같은 방식으로 접근하면 영화는 망한다. 꿈과 희망은 부와 명예를 등에 업고 축적된 부를 대물림하듯이 접근하면 망한다. 꿈과 희망은 자본이 아니라 진실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매일 매일 아침에 뜨는 태양과 같은 것이다. 내가 가도, 송경동 시인이 가도 태양은 또 뜰 것이다. 어제 떠오른 것처럼 내일도 뜰 것이다. 매일 매일 뜨는 태양처럼 아침이면 영(0)에서부터 다시 출발하여, 하루 신성한 노동을 마치고 이불 안으로 발을 누이고 하루를 마감하면 행복한. 그리고 또 다시 아침이 되면 희망을 안고 공정한 분배 속에서 편히 잠들 수 있는 그런 평등한 세상에서 살고 싶다. 그걸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꿈과 희망인 것이다.
신들에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신들이 대화를 열기 시작했다. 그들은 서로 한 마디씩 주고받는다. 한참을 그렇게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다. 이것은 어떻게 하고 저것은 어떻게 할까. 그러다 어느 한 순간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한다. 다른 모든 것들은 서로 나누고 양보하고 포기하고 내버려둘 수 있었지만, 하나는 절대 양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것을 사람들 심장 속에 넣어 두었다. 그것이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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