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스포츠 강사, 스포츠도 등급이 있다?
강원도의 한 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스포츠센터에서 2009년 8월부터 스쿼시강사로 일하는 변 아무개 씨는 아침 9시에 출근하여 스쿼시강습을 진행하고 저녁 9시에 업무를 마감한다. 점심과 저녁식사시간을 제외하면 강좌가 없는 시간에는 회원관리나 기타 시설관리, 약간의 행정업무를 해왔다. 같은 센터에서 일하는 수영강사들도 마친가지로 강습시간에 강좌를 운영하고 회원관리나 시설관리, 행정업무를 해왔다. 다른 점이 있다면 수영강사들은 아침 6시부터 오후 3시, 1시부터 저녁 9시로 2인이 교대제 근무를 하고 있다는 것인데, 변 씨가 수영강사들보다 3~4시간 더 사무실에 묶여 있는 셈이다.
변 씨는 2011년 1월 센터가 직원보수규정을 변경하면서 공고를 보았고, 이를 통해 그동안 자신에게는 지급되지 않는 정액급식비, 교통비, 가계지원비, 직급보조비, 연가보상비, 명절휴가비를 수영강사들이 지급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규직이 아니라는 이유로 변씨는 2년여 동안 4개월, 9개월, 1개월, 2개월, 9개월짜리 단기계약을 반복하는 불안정한 계약관계에 있었던 것도 억울한데, 정규직 수영강사들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 일하지만 그보다 못한 처우를 받는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변 씨는 계약만료를 앞두고 어렵게 노동위원회에 문을 두드렸다. 그렇지만 돌아온 답변은 놀랍게도 단순명쾌한 한마디, “무기계약직 수영강사와는 강습내용 및 방법에 차이가 있으며, 특히 대체가능성이 없으므로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라고 할 수 없다”였다.
같은 일을 해도 같은 업무가 아니다?
비정규직 차별시정제도가 도입된 지 어언 5년이 되어 간다. 차별시정제도가 막 시행되면서 반짝 불붙었던 차별시정신청 사건들은 1년도 되지 않아 종적을 감췄다. 그나마 노동위원회에서 차별인정을 받은 한 두건은 법원의 법원을 거쳐 최근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어찌 된 노릇인지 차별금지규정이 적용되는 사업장범위가 5인 이상 사업장까지 확장되었음에도 오히려 차별시정신청 사건은 급격히 감소되었다. 이제 더 이상 차별이 없어진 것이냐고? 차별시정제도가 현실의 차별개념을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정부와 여야 정당들은 앞 다투어 비정규직 차별을 해소해야 한다고 차별가이드라인이며 차별제도 개선공약을 내놓고 있는 현실을 통해 자명하게 드러난다.
스쿼시 강습을 하건 수영 강습을 하건 스포츠 센터에서 강습을 지도하고, 회원관리를 하며 강습에 필요한 행정업무를 하고 있다면 차별대우를 받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는 게 일하는 사람들의 상식이다. 스쿼시건 수영이건 요가이건 간에 스포츠 강습은 해당 스포츠를 즐기기 위한 기초 이론과 규칙을 가르치고 자세를 교정하는 것을 주요 강습의 내용과 방법으로 한다. 그럼에도 스쿼시 강사가 수영을 가르칠 수 없다는 사실만으로 차별이 아니라는 것은 개그콘서트보다 더 웃긴 넌센스다. 노동위원회는 차별의 개념을 매우 협소하고 편협하게 해석하면서 차별을 합법으로 세탁한다. 과연 우리의 상식이 법에 스며들기 위해서는 또 얼마나 차별이 반복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목숨을 건 롤러코스트, 한번 즐겨보라고?
그간 행정법원에 이의제기된 비정규직 차별사건의 대부분은 사용자에 의해 제기된 경우이다. 스쿼시와 수영은 다르다는, 얼토당토 않는 노동위원회의 결정들은 상급법원으로 올라오지 않고, 세간의 관심이나 의혹을 끌지 못한 채로 그대로 실종되어 버린다. 왜? 차별시정신청을 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근로계약기간만료를 이유로 혹은 업체폐업 등의 이유로 해고되니까. 차별시정신청이 제기되면 사용자는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구제신청을 취하하도록 종용하니까.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차별을 주장하는 일이 차별의 더 높은 벽을 뼈저리게 경험하게 하는 야생 버라~이어티 복불복 체험코스다.
노동위원회의 차별시정제도가 차별을 개선하는 게 아니라 또 다른 차별의 2차 피해공간이 되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은 비정규직 차별이 신자유주의의 노동유연화 전략에 의한 필연적으로 파생된 사회구조적 모순이라는 점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오로지 차별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구체적인 피해를 받았다고 하는 개별 노동자가 구제신청을 해야만 하는 구제시스템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사용자 입장에서 차별은 비정규직 전체에 대한 일관된 차별행위라서 한 사람의 차별시정신청으로 사업장 전체의 차별이 드러나기 때문에 차별이라는 결정이 나오더라도 대법원까지 이의제기를 해서라도 이를 막으려고 차별판단이 나오기 전에 차별시정신청을 한 개인을 설득하여 사건을 덮어버리려 한다.
그나마 대법원까지 올라가면서 차별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던 사건들은 모두 노동조합을 통해 문제제기되었던 것이고 사용자의 취하종용으로부터 버틸 힘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개인의 용기만으로 계약해지라는 위협을 감당하기에는 지금의 차별구제시스템은 죽음의 레이스라는 것을, 노동자들은 온 몸으로 느끼고 있다.
너도나도 비정규직 차별해소, 차별이 뭐라고 생각해?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 여야를 불문하고 모두 비정규직 차별해소를 외치고 있다. 그런데도 현장의 반응은 뜨뜨미지근하다. 아니 오히려 차갑고 냉소적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막상 정당들이 내놓은 노동공약을 열어보면 비정규직 차별에 대해서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원칙’을 명문화한다는 수준이다.
그러면 과연 비정규직 차별은 해소될까? 스쿼시 강사의 차별사건을 놓고 보면 ‘동일가치노동’이라는 개념이 차별을 판단할 때, 업무의 대체성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비교가능성은 열리게 될 수는 있다. 그렇다고 이러한 유형의 사건이 차별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차별 개념에 대한 근본적인 사고 전환 없이는 언제든지 차별은 왜곡되고 은폐될 수 있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원칙을 피해가기 위해 사용자는 기간제 노동자가 하던 행정업무나 부대업무들을 정규직의 직무로 직무기술서를 변경하거나 직무분석의 항목을 조정하여 노동의 가치가 동등하지 않다는 점수표를 근거로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 아예 임금지급기준을 비정규직, 정규직이 아니라 개인의 능력에 따른 성과급 연봉제로 변경하여 업무수행능력을 산술화할 수 없도록 변경할지도 모를 일이다.
만의 하나, 동일가치노동이라고 인정되는 경우에도 차등을 둘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하는 “합리적 이유”에 대한 판단기준이 확장된다면 이때는 어떻게 차별을 설명해낼 수 있을까?
가령 스쿼시 강사인 변씨 사건의 경우 동일가치노동 판단에 있어서는 스쿼시 강사가 수영 강습을 대체할 수 있는지는 중요한 기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수영강사의 임금과 비교하여 차등이 존재한다는 점을 인정받았다 치자. 스쿼시 강습으로 센터가 버는 수익과 수영 강습으로 얻는 수익이 차이가 나기 때문에 임금을 달리 줄 수밖에 없다거나 강원도에서는 수영 강사를 구하기 어렵고 수영 강사를 구하지 못해 강습을 폐강할 때 발생되는 손실과 달리 스쿼시는 폐강이 되어도 회원들이 테니스나 배드민턴 등 대체할만한 유사한 스포츠 강좌가 있다든가 하는 사용자의 주장을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받아들인다고 하면 차별 주장은 거부될 수 있다.
우리의 상식이 통하는 것은 그저 법문의 얄팍한 말장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부조리가 과연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지에 대한 성찰이 먼저이고, 그에 적절한 법적 시스템의 섬세한 정비가 뒤따라야만 가능하다.
차별은 비정규직이 낳은 알이 아니라 비정규직을 낳는 닭
비정규직 차별은 한 사람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얼마의 임금을 더 받는 문제가 아니다. 비정규직이라는 고용 단절과 그 순환이 문제이다. 한 명의 비정규직이 각고의 끝에 차별을 인정받고, 얼마간의 임금보상을 받더라도 그가 다니는 회사에서 기간만료로 계약해지되면 또 다른 회사의 비정규직이 되고, 또 새로운 차별과 맞닥들이게 된다. 차별 시정을 받았던 그 사람이 떠나고 나면 회사는 다시 새롭게 진화한 차별을 시작할 것이고 새로 들어온 비정규직 노동자가 다시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 차별 해소를 위한 한 사람의 장고의 노력, 미미하지만 일말의 변화조차도 순식간에 증발된다.
차별은 개별적인 불이익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적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순환의 고리이다. 따라서 차별은 구조적, 통일적으로 제거하지 않으면 차별 시정의 효과는 사라져 버린다. 차별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단지 비정규직 개인에게 권리라는 그럴싸한 이름으로 사회적인 차별을 해결해야할 책임을 떠넘겨서는 안된다. 비정규직 차별은 비정규직 전체의 문제이자 노동자 집단의 문제인만큼 노동조합이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시도를 막아서는 안된다. 또한 사업장 내 차별적 규정이나 관행 등 차별적 요소가 발견되면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구체적으로 차별이 나타나기 전에 사업장 전체를 변화시킬 수 있는 법적 강제력이 뒤따라야 한다.
또한 비정규직 차별은 기업경영상 불가피한 비정규직의 사용으로 어쩔 수 없이 발생되는 산업폐기물 같은 것이 아니다. 차별은 비정규직 활용의 결과가 아니라 비정규직이 곧 차별을 활용하기 위한 장치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정규직 활용이라는 기계를 돌리면서 그때그때 떨어지는 폐기물을 처리하듯 개별적인 차별이 주장될 때 땅에 묻거나 물로 희석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차별은 비정규직을 통해 얻는 이윤기계의 톱니바퀴가 돌아가는데 필수적인 윤활유같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차별이라는 거름을 먹고 크는 ‘자본의 비정규직 활용전략’ 자체를 축소시키고 확장을 막기 위한 근본적인 비정규직 대책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비정규직 차별해소는 자본의 이윤기계 속에서 계속 자리를 옮겨가며 순환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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