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오늘, 방송은 없다

[기고] 어쩌다 상업방송 SBS가 한국 최고 정론방송사가 되었을까

2012년 5월 23일 기준으로 대한민국에 방송언론은 없다. 문화방송은 지난 1월 30일부터, 한국방송은 3월 5일부터 파업하고 있다. 와이티엔 노조는 3월 2일, 연합뉴스 노조도 3월 15일부터 파업에 돌입했다. 방송노조의 파업에는 까닭이 있다. 언론의 본령인 정론에 충실하지 못하는 현재 상황에 대한 극한의 반전모색이다. 김재철 문화방송 사장의 인사전횡과 각종 비리의혹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 언론특보 출신인 김인규 한국방송 사장도 공영방송과 거리가 먼 편파보도로 일관하고 있다.

대표적인 상업방송 에스비에스가 한국 최고의 정론방송사라는 우스개마저 등장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와 여당은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그것을 방조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얼마 전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방송사 파업은 불법파업이자 정치파업”이라 못 박았다. 권부 핵심세력과 그 하수인들은 국민의 알권리와 공정보도에 충실해야 하는 방송사가 본연의 책무를 다하지 못하도록 암약하고 있다. 이것을 참고 견디지 못해 거리로 나선 것이 방송노조 파업 아닌가. 그것에 불법 정치파업이라는 딱지를 붙인 것이다.


장기화하고 있는 방송노조 파업을 정부여당이 묵인하는 데에는 사정이 있을 것이다. 고작 1퍼센트의 시청률도 나오지 않는 종편방송에 대한 배려가 그 첫 번째 이유가 아닐까. 엄청난 특혜를 줘서 개국한 ‘조선 중앙 동아 매일경제’ 종편방송이 당하고 있는 치욕적인 수준의 참담한 패배와 천문학적인 경제적 불이익을 상쇄해 줄 합법적인 통로가 필요한 시점 아닌가. 결자해지 차원에서 공중파 파업을 묵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까닭은 방송사 파업으로 인한 사회비판과 정론의 공론장이 사라져버린 반사이득을 정부여당이 톡톡히 챙기고 있기 때문이다. 종이신문의 위력이 막강하다 해도 영향력 측면에서 본다면 한국방송과 문화방송의 힘에 비할 바 못된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 4.11총선이다. 야당에게 불리한 대목은 최대한 부풀리고, 여당에게 불리한 것은 아주 작게 포장하는 방송전략이 새누리당 승리에 일조하지 않았던가. (김용민 막말파동과 김형태 성추행 그리고 문대성 표절에 대한 균형 잡힌 보도가 방송에 나왔던가) 건곤일척의 연말대선을 앞두고 방송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려는 권부와 집권여당의 의지는 그야말로 은산철벽이다.

세 번째 이유는 방송노조 파업이 지속된다 해도 기득권 세력에게 불리하지 않다는 판단에서 출발한다. 상대적으로 오랜 세월 기득권에 안주해왔던 방송노조의 생리상 강력투쟁이나 장기농성이 쉽지 않을 것이며, 국민여론 역시 방송노조에게 호의적이지 않다는 판단에 근거하는 듯하다. 1974년 박정희 유신 철권통치 시절 동아일보 투쟁에서 국민들이 보여주었던 뜨겁고 결기 어린 참여와 동조는 오늘날 현저히 약화된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 해도 방송노조의 파업이 순순히 끝날 것이라고 예단해서는 안 될 것이다.

21세기는 정보기반 사회다. 정보는 지식과 더불어 풍요로운 인류사회를 추동하는 두 날개다. 언론은 정보와 지식을 소통하고 매개하며, 비판적인 사회 정치의식을 함양시키는 가장 효율적인 체계이자 도구다. 그런 도구와 체계의 정수인 언론을 특정정파와 집단 내지 소수의 이익을 위해 복종과 순치로 몰고 간다면 그 나라와 민족의 장래는 결코 돌이킬 수 없다. 현재는 과거의 총계이고, 미래는 현재의 누적이기 때문이다. 파업에 참가하고 있는 노조원들이 방송현장으로 돌아가 나라와 민족과 역사와 세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정부여당은 즉시 책임 있는 자세를 취하라. 특히 한국방송과 문화방송 사장들은 즉각 퇴진하여 후배들의 전도를 더럽히지 말아야 한다. ‘유방백세 유취만년’이라는 성어는 여전히 서슬 퍼렇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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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 방송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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