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에게 권리를, 사용자에게 책임을”

[간접고용 끝내자](4) 노조법 2조 개정 운동을 전개하자

파견 용역 하청 이름은 달라도 투쟁은 닮은꼴

# 투쟁 1: 한일병원 식당노동자 투쟁

한일병원은 1999년부터 환자 식당 운영을 외주화시켰다. 식당 운영업체는 한화, 신세계, LG 등 대기업 계열사로 바뀌었지만, 식당 노동자들은 병원 정규직에서 용역업체 계약직으로 신분만 바뀌었을 뿐 십 여 년간 계속 일해 왔다. 한 달에 4번 쉬며 하루 9~10시간 일해 받는 기본급은 90만 원 가량이고, 60~70시간 연장근로를 해야 160만원을 받을 수 있었다. 열악한 노동조건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이 2011년 7월 서울일반노조에 가입하자, 병원과 신규 외주업체인 CJ프레시웨이는 2012년 1월 1일자로 조합원 15명을 고용승계하지 않는 방식으로 해고했다.


한일병원은 공기업인 한국전력공사 계열의 한국전력의료재단이 운영하고 있다. 정부가 2011년 11월 발표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고용개선 대책>에 따르면, 용역업체 교체시 원칙적으로 고용승계 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한일병원 식당 노동자들이 해고될 때 이 <대책>은 아무런 쓸모도 없었고, 결국 100일이 넘는 병원내 농성 투쟁을 통해 한일병원과 고용승계에 합의하고 나서야 노동자들은 일터로 돌아갈 수 있었다.

# 투쟁 2: 건설노동자 체불임금 근절 투쟁

불법 다단계 하도급이 만연한 건설현장에서 건설노동자들은 일하고 나서 몇 달이 지나야 임금을 받거나 그나마도 중간업자에게 떼어 먹히는 임금 체불이 고질적 문제이다. 특히 건설기계노동자들은 노동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특수고용이라 적게는 수천만 원, 많게는 수억 원까지 임금을 떼이고도 노동법에 호소하지 못하는 처지이다.

건설기계노동자를 포함한 건설노동자들이 체불임금을 해결하는 길은 노조를 통해 발주처나 원청을 상대로 투쟁하는 것이다. 십 여 년에 걸친 노조의 투쟁의 힘으로 2007년 근로기준법에 원청이나 합법적 1차 하청업체를 상대로 임금지급을 요구할 수 있는 근거규정이 마련되었다. 또한 2010년 말 울산 북구청의 체불근절 조례를 시작으로 경남, 광주전남, 전북, 경기도 등에서, 관급공사에서 특수고용인 건설기계노동자를 포함한 건설노동자의 임금체불 근절을 위한 조례가 확산되고 있다.

# 투쟁 3: 조선소 사내하청노동자 투쟁

2011년 STX조선에서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 5명 중 4명이 하청 노동자였고, 대우조선의 경우 8명 중 4명이 하청 노동자였다. 현대중공업의 경우 4명 중 3명이 하청 노동자였고, 현대삼호중공업은 2011년 12월부터 2012년 3월까지에만 산재 사망이 4명에 달하는데 이 중 3명이 하청 노동자였다. 작년 12월에는 세진중공업에서 폭발사고로 4명의 하청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공기를 맞추기 위해 최소한의 안전조치도 하지 않은 채 원청이 하청노동자들을 작업에 몰아 넣은 것이 사고의 원인이었다.

2004년 노동부의 조사 그리고 2011년의 노동부 조사에서도 조선업의 사내하청 활용은 불법파견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조선업 사내하청 노동자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것은 원청이다. 사내하청업체는 원청에서 정해준 T/O로 인원을 관리하고 원청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 인원채용을 하며 원청이 실시하는 교육을 이수해야만 출입증이 발급된다. 대법원조차도 원청이 하청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여 2010년 3월 현대중공업이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노조법상 사용자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의 현장출입과 조합활동은 원청인 현대중공업에 의해 폭력적으로 가로막히고 있다.

# 투쟁 4: 현대차 비정규직지회의 투쟁

2010년 7월 대법원이 현대차의 사내하청 활용이 불법파견이라는 점을 확인하고도 3년이 흐르도록 현대차의 불법파견 사용은 계속되고 있으며,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투쟁했다는 이유로 백 여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해고를 당했다. 또한 비정규지회가 참석하는 불법파견 특별교섭에 대해 현대차는 계속 ‘교섭이 아니라 협의’라고 우기면서 사내하청 주체들과 교섭석상에서 마주하는 모양새만은 취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한편 현대차 비정규지회의 끈질긴 투쟁 끝에 지난 4월 18일, 현대차는 비정규지회 간부의 현장출입 보장을 문서로 합의했다. 그럼에도 지난 5월 17일 현대차의 용역경비대가 현장에 들어가려던 비정규지회 간부들과 정규직지부 간부들을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노동청조차 비정규지회 간부들의 현장출입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공문을 현대차에 발송한 바 있지만, 법도 단체협약도 노사합의도 무시하는 현대차에 대한 처벌을 이루어진 바 없다.

[출처: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위에서 든 몇 가지 사례만으로도 왜 파견 용역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최소한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서라도 원청을 상대로 투쟁해야 하는지 충분히 설명될 것이다. 현행 노동법은 원청이 근로계약상 고용주가 아니라는 이유로 간접고용 노동자에 대한 책임을 면탈하는 것을 용인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끈질긴 투쟁으로 원청의 사용자로서의 부분적 책임을 인정하는 판례가 나오고 정부의 대책이나 가이드라인이 발표되더라도, 원청이 이를 무시하면 그만일 뿐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고용보장을 위해, 생활임금 쟁취를 위해, 최소한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그리고 이를 실제 가능하게 해 주는 노동조합 활동을 하기 위해 실제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원청을 상대로 투쟁하지 않을 수 없다.

비정규직 대책의 남발, 그러나 정작 말하지 않는 것들

올해 총선을 앞두고 각 정당이 쏟아내는 비정규직, 일자리 대책 속에 간접고용 문제는 미약한 일부에 불과하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모두 간접고용을 합법화하는 파견법의 유지를 전제로 실효성 없는 개선안을 내놓을 뿐이다. 민주통합당의 경우 자신들이 여당이었던 2006년 개악시킨 불법파견시 직접고용 의무조항을 도로 직접고용 의제조항으로 회귀시킨다는 것과 차별시정제도를 확대 적용하겠다는 것이 골자이다. 그러나 앞의 투쟁사례를 통해 드러난 것처럼 이러한 개선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조직되지 않는 한 실제 적용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새누리당의 경우는 한 술 더 떠 파견허용업무와 기간을 확대하는 파견법 개악과 함께 사내하도급법 제정을 19대 국회 최우선 입법과제로 제출하였다. 지금까지 불법파견으로 규제돼온 사내하도급을 합법화시키면서 원청이 져야할 법적 책임을 노력 의무 정로도 낮추겠다는 것이다. 원청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사내하청 노동자가 새로운 업체에 고용될 수 있도록” 또는 “직영 노동자들에 비해 불합리한 차별을 받지 않도록” ‘노력할 의무’가 있을 뿐이다. 대법원에서 원청의 직접고용 판결을 받아도 이를 이행하지 않는 실정인데, 강제규정도 없는 립서비스를 해 주는 대신 사내하청을 통째로 합법화하겠다는 것이다.

여야 정당을 막론하고 의도적으로 말하지 않는 것은 실제 사용자인 원청이 그에 합당한 노동법적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원청을 상대로 단결하고 교섭하고 파업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지난 3월 나온 국제노동기구(ILO)의 권고는 이 점을 분명히 재확인하고 있다. 즉 ILO는 사내하청을 비롯한 간접고용이 한국에서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회피할 목적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원청을 상대로 한 노조활동, 단체교섭 및 단체행동이 지극히 정당하고 이에 대한 정부와 자본의 탄압이 중단되고 법 개정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력히 권고한 바 있다.

비정규직 문제의 실질적 해결을 위한 단초, 노조법 2조 개정 운동을 전개하자

지난 십 수 년간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끈질긴 투쟁을 통해 실질 사용자인 원청으로 하여금 문제해결에 나서도록 한 사례들이 만들어졌다. 올해만 보아도 인천공항 세관 용역노동자들, 한일병원 식당노동자들, BR(베스킨라빈스) 사내하청 노동자들, 그리고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원청이 직접 합의서에 서명하도록 만들었다.

이제는 이런 각각의 투쟁의 힘을 모아 원청이 노동법상 사용자로서 책임을 지도록 명문의 입법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을 만들어야 한다. 최우선 과제로 노조법 제2조의 ‘사용자’ 정의조항을 확대하여 실질 사용자인 원청이 포함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 “해당 노동조합의 상대방으로서의 지위를 인정할 수 있거나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하여 실질적인 지배력 또는 영향력이 있는 자” 즉 원청을 상대로 한 조합활동, 단체교섭, 쟁의행위의 권리가 법적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올해는 화물 건설 노동자들을 필두로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보장받기 위한 강력한 투쟁도 준비되고 있다. 마침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요구는 노조법 제2조의 ‘근로자’ 정의조항을 확대하여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노동3권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으로 집중되고 있다.

결국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핵심고리는 간명하다. 자본이 비정규직을 활용하는 진정한 이유-노동자들의 단결을 약화시키고 노동기본권을 박탈할 수 있는 유용한 고용형태라는 점-를 정확히 전복시켜야 한다. “노동하는 자에게 권리를, 사용하는 자에게 책임을!” 이와 같은 상식과 원칙이 법제도적으로 확립될 수 있도록, 이러한 투쟁을 통해 문제해결의 주체인 노동자의 단결과 힘을 강화할 수 있도록, 노조법 2조 개정 운동을 집중적으로 전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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