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panic)을 이야기하자

[칼럼] 공황, 노동자민중의 위기이자 기회

파국은 면한 것이 아니라 지연됐을 뿐

유럽발 공황이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IMF에 대한 구제금융 협약을 체결한 유럽국가가 아일랜드(2010.11)를 시작으로 포르투갈(2011.5) 그리고 최근 그리스(2010.5/2012.5)와 스페인(2012.6)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경제위기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지경이다.

2008년 9월 미국발 금융위기 발발 -> 부동산 거품 폭발과 국가부채 급증으로 유럽 부채위기 본격화 -> 그리스를 시작으로 한 구제금융 -> 정부지출삭감 등 긴축으로 경기침체 가속화 -> 스페인․이탈리아 등도 국채가치 하락 -> 유로존 위기 심화 -> 긴축반대 논란 점화 -> 긴축기조 프랑스 사회당 집권 -> 그리스 재총선에서 친 구제금융세력 승리로 이어지는 일련의 거듭되는 경제위기는 케인스주의를 대체하여 1980년대 이후, 전면화된 신자유주의가 2008년 세계경제위기를 통해 그 수명을 다하고 파산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2008년 세계 경제위기와 신자유주의 헤게모니의 파산 이후 세계 경제위기를 해소하고 새로운 자본축적과 자본운동의 진로를 제시할 자본의 전망(?)은 나타나지 않고 공황의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스 아테네 시 경제부 청사 앞. 경제위기로 인해 거리로 내몰린 공공기관 실직자와 노동자들이 정부를 성토하고 있다. [출처: socialistworker.com]

이는 일시적인 순환적 위기가 아니라 장기적인 구조적 위기의 성격 즉 경제공황의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견해다. 공황은 자본주의의 모순, 야만성과 기생성을 가장 적나라하고 파괴적으로 보여주는 자본주의의 한 국면이자 운동방식이다. 공황에는 백약이 무효하다. 이는 자본주의 발전법칙의 필연적 결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역의존도와 금융개방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세계경제가 공황으로 심화할 경우 직접적인 타격을 입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권은 재벌주도 성장 및 노동력 관리 기조는 유지되고 있다.

여전히 자본은 파국을 지연시켰을 따름임에도 한국사회의 사회운동은 공황이라는 정세인식과 동떨어져 있거나 공황시기를 예비하고 대중운동의 전망을 밝혀야 할 것이나 공황에 대한 사회운동의 전망은 고사하고 보수정당의 대선프레임에 점점 빠져들고 있다. 사회운동은 자본의 공황을 제대로 ‘대면’해야 한다. 이는 공황이 가져오는 사회경제문화적 의미와 정치적 전망을 어떻게 밝혀야 할지를 사회운동이 노동자민중에게 감당해야 할 소명이다.

IMF 경제위기, 우리는 무엇을 배웠나?

한국의 사회운동은 1997년 IMF 구제금융과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등 몇 차례 경제위기 시기의 노동자민중의 생존권을 중심으로 한 투쟁과 저항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민주노총을 비롯한 대중운동은 정리해고 반대 등 일자리 지키기 중심의 운동으로 투쟁이 전개되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제대로 전체 노동자민중의 과제로 돌파하기 보다는 제한적인 투쟁사업장의 노동자민중의 헌신적인 투쟁에 기대어 왔었다라는 표현이 더 솔직할 것이다.

즉 지난 IMF 경제위기 당시 민주노총은 소위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이라는 노선에 입각하여 사회적합의주의 노선을 걷고 있었다. 또한 놀랍게도 1997년 12월 민주노총은 '경제위기 극복과 고용안정을 위한 노사정 3자 기구'의 설치를 정부에 요구하였다. 1998년 1월 민주노총 중앙위원회에 제출된 '1998년 투쟁방침'에 따르면, "IMF 경제위기의 정세조건을 고려할 때, 상층교섭과 대중투쟁의 결합에 의한 공세적 투쟁을 배경으로 노동자의 사회적 참가를 관철하고 전반적인 사회구조개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 언급되어 있다. 그리하여 1998년 1월 노사정위원회가 출범하게 된다.

당시 노동시장의 동요와 노동계의 반발을 의식한 자본과 정권은 노동진영을 주요한 협상파트너로 삼아 압박해 나갔고, 노사정위원회의 구성을 통해 합의를 통한 고통분담 체제들을 완성시켜 나갔다. 결국, 1998년 2월 민주노총은 정리해고제 수용과 근로자파견법 법제화를 핵심으로 하는 노사정 합의를 전격수용하게 된다. 민주노총의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법의 수용은 1996-1997년 총파업을 통해 잠시 늦춰졌던 노동법 개악의 고삐를 풀어버렸다. 결과적으로 정리해고제를 전 사업장으로 확산시켰다.

그 후 익히 알다시피 민주노총을 비롯한 대중조직은 자본의 경제위기에 맞서 노동자민중을 조직하기는커녕 일부 사업장에는 비정규직노동자들을 희생양을 삼기까지 하였다. 지난 경제위기 시기의 불철저한 인식과 투쟁은 노동자민중에게 비정규직과 정리해고라는 낙인으로 오롯이 남아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지난 1997년 IMF 경제위기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시기에 ‘비판적 성찰’은 사회운동에게 너무나도 중요하다.

공황은 정치위기에서 사회적 위기를 연쇄적으로 호명한다

다시 말해 IMF 경제위기 시절, 지난 경제위기시기에 노동자민중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렴하고 반자본 사회정치적 전망을 명확하게 제출되고 그 위기해결 프로그램을 강력하고 당당하게 추진할 수 있는 역동적인 사회운동(정치세력)이 있었다면, 경제위기라는 고통과 불만과 불안 속에서도 문제해결의 의지와 희망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사회운동은 경제위기 혹은 공항시기에 사회운동 내의 다수가 사회보장에 대한 요구를 ‘전략적’수준으로 의미를 부여하며 사회보장제도를 설계하는 데 몰입하거나 매우 교과서적인 케인스주의적 처방을 주문하고 있는 현실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이는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의 노동자운동을 비롯한 현재의 지배적인 운동노선이 실리주의적이고 타협적인 노선으로 경도되어 온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또한 여기에는 사회운동 내에서 사회정책, 사회보장제도를 다루는 지배적인 방식이 사회보장제도가 특정 모델과 경로를 중심으로 수렴한다는 주류 이론을 그대로 수용하여 사민주의적 복지국가 모델에 대한 전망을 명시적으로 드러내는 상황이 반영되어 있다.

다시 말해 1998년 당시 김대중 정부 집권 상황에서는 참여연대 등의 NGO들이 관련 정책대안을 만드는데 상당한 개입을 할 수 있었지만 현재는 그조차도 매우 제한적인 상황이라는 점도 매우 신중히 고려되어야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시민운동이든 노동운동이든 정부와의 협상과 개입전술에 의존하면 할수록 오히려 양보만 커지는 상황을 우리는 익히 알 수 있다. IMF 경제위기 당시와 같이 양보하고 고통을 분담하면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인식에 갇혀서는 노동자 민중의 생존과 정치적 전망을 개척할 수 없다.

또한 정부의 최소한의 양보를 압박할만한 역량조차 한계적인 것이 현재 노동자 민중운동이 처한 상황이다. 1930년대 대공황 당시의 미국을 보더라도 본격적인 뉴딜정책의 도입은 실업자, 노동자계급, 사회주의 운동의 ‘아래로부터의 투쟁’이 있기에 가능했다. 따라서 경제위기에 맞서 사회보장 확대를 위한 사회운동의 대응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회운동의 단결과 통합이 그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그

래서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를 넘어서려는 장기적 운동의 전망 속에서 현재의 경제위기가 노동자 민중의 생존과 권리를 극단적으로 파괴하는 것에 맞서는 투쟁을 조직하고자 한다면, 공황에 대한 사회운동의 입장과 요구는 두 가지로 집약될 것이다. 노동자 민중의 생존이 더 이상 후퇴하는 것을 막기 위한 기제 및 방법으로써 노동자운동과 케인스주의에 기대지 않는 아래로부터의 사회보장제도의 요구, 그리고 더욱 급진적인 운동의 형성을 위한 단결의 매개가 그것이다.

공황,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가?

현실의 운동은 계급투쟁의 역관계에 따라 결정된다. 사회운동의 운동주체, 대중투쟁의 형성 없이는 아무리 급진적인 요구와 대안도 공허할 뿐이다. 대중운동이 취약한 상황에서 자본주의의 객관적, 구조적 위기라는 조건에만 착목하여 공황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선전, 선동하는 것만으로는 노동자민중의 투쟁이 형성되지는 않는다.

IMF 경제위기의 학습효과가 있다고는 하나 구조조정 투쟁의 패배와 지속된 투쟁의 패배 속에서 집단적 투쟁을 통한 승리의 전망을 공유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노동자민중은 그것이 또 다른 어리석은 기대일지라도 손쉽게 자신의 고용을 방어하기 위해 고통분담과 임금동결 또는 실질임금 삭감에 동의하고 투쟁에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공황이 가져오는 극단적인 생존의 위협 속에서 대중들이 노동자민중의 보편적인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배타적 이해만을 관철하기 위한 반동적인 정치로 쏠릴 수도 있다.

따라서 사회운동은 무엇보다도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의 해결불가능성과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변혁의 필요성에 대한 교육과 토론, 선전, 선동을 강화하면서도 이와는 독자적으로 대중투쟁을 형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중투쟁의 요구와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바로 자본주의 체제 변혁을 위한 이행요구를 중심으로 현재의 투쟁전선을 세워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운동의 급진적인 이행요구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실현 불가능한 급진적 요구나 급진적 이념을 선동하는 것만으로는 사고될 수 없다. 그것은 신자유주의 하에서 분할되어 있는 노동자대중의 계급적 단결, 즉 정규직과 비정규직(실업자, 반실업자), 여성과 남성, 이주노동자와 정주노동자의 단결을 고취할 수 있는 대중투쟁의 요구 그리고 최저임금을 뛰어넘는 삶의 요구로서 생활임금의 요구, 실업자의 권리 등을 중심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한 세기 전 ‘빵, 토지, 평화’라는 구호를 중심으로 러시아 혁명이 시작되었던 것처럼 다가오는 공황에서 사회운동은 대중들의 요구를 제대로 반영한다면 아주 기본적인 요구조차도 혁명적 요구로 전화할 수 있는 것이다.

케인스주의자들은 현 경제위기에 대한 자본주의적 해결이 가능하다는 관점에서 대안과 요구를 제출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것이 갖는 명백한 한계를 인식하고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변혁 없이는 현재의 위기가 해결불가능하기 때문에 역동하는 공황시기에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변혁운동의 전략과 전술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만 공황은 노동자민중의 위기이자 새로운 세상을 위한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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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 , 케인스주의 , 실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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