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기간이 없는 우유와 핵발전소

[기고] 썩은 우유에 화를 내듯 핵발전소 수명 연장에 화를 내야 할 때

"회사 냉장고에 유통기간이 지나 썩어가는 우유가 있습니다. 아직 맛을 보면 먹고 죽을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계속 먹자니 찜찜합니다. 결국 탈이 날 것 같아요. 사장님 보고 남은 거 버리고 새로 한 통 사자고 했더니 냉장고 성능만 개선하면 더 오래 먹어도 된다고 합니다. 그러더니 냉장고 필터 갈고 냉매 교체한다고 큰 돈을 들였다고 하더군요. 우유는 아직 그대로 썩어 가는데, 유통기간이 없는 우유. 누군가 배탈이 나고 병원에서 큰돈을 들이고 고생을 해보아야 바꿔줄 것인지... 썩은 음식이 있으면 옆에 다른 음식들도 함께 못 먹게 된다는 것을 모르네요. 맨 날 ‘내가 뭐 해봐서 아는데’ 하는 사장님이라 이번에도 ‘내가 썩은 우유 먹어봐서 아는데, 내가 우유 썩혀서 치즈 만들어 봐서 아는데...’ 이러면서 은근슬쩍 넘어가려고 합니다. 어쩌면 좋을까요?"

이 질문에 시인 한 분이 답을 했다. 세상에 그런 회사가 어디 있냐고 당장에 그만두고 나와야 한다고. 그런 못된 놈이 사장인 회사는 망해야 한다고 사장에 대한 성토를 한참 했다.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시인에겐 저런 악독한 기업의 이야기는 견디기가 힘들었나 보다. 생각해보면 그리 특별한 감수성이 아니어도 저 이야기는 화나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저런 회사라면 당장에 때려치우고 다른 직장으로 옮겨야 정상적인 반응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저 이야기는 사실 일본의 핵발전소 사고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핵발전소의 수명을 연장하려 한다는 뉴스를 보고 이야기를 쉽게 풀어가고자 만들어 본 이야기다. 핵발전소를 우유에 비유했다. 핵발전소는 만들어질 때부터 이미 고유한 수명이 있다. 조금 오래된 것들은 30년 정도이고 나중에 만들어진 것들은 수명이 40년 정도라고 한다.

  국내 원전 완공년도 및 설계수명 [출처: 교육과학기술부]

그러니까 우유마냥 핵발전소도 유통기간이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 유통기간을 핵발전소가 수지타산이 맞지 않자 은근슬쩍 늘리려고 하고 있다.

이미 2007년까지가 유통기간이었던 고리 1호기는 10년을 연장했고, 2012년이면 수명이 다하는 월성 1호기도 7000억이란 거금을 들여 원자로와 배관부품을 교체하여 수명연장을 위한 준비를 마쳤고, 국민적인 동의 없이 슬그머니 가동을 시작했다.

월성 1호기는 수명연장을 위해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에 수명연장보고서를 냈지만, 사고가능성을 위한 최신 기준에 따라 작성되지 않았음을 이유로 ‘심사보류’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경향닷컴 2011년 9월 23일) 얼핏 보면 정부의 계획대로 수명연장이 진행되지 않는 듯 보이지만 일본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여론이 부쩍 나빠지자 눈치를 보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국민들 관심이 줄어들면 언제고 다시 수명연장을 할 것임이 분명하다.

  6월 29일 일본 총리 관저 앞에서 진행된 원전재가동 반대 집회에 10만여명이 넘는 시민들이 참석했다. [출처: 일본 레이버넷]

이번에 사고가 난 일본 후쿠시마의 발전소도 수명을 연장한 것이었다. 후쿠시마의 사고가 대지진에 의한 쓰나미로 전력공급장치에 이상이 생겼기 때문이라 수명연장과 상관없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진앙지에서 더 가까운 다른 원전에서는 사고가 없었다는 사실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오래된 것이 사고가 난 것이라고 보면 된다. 수명이 오래된 것일수록 사고의 위험이 더 증가하는 것이 당연한 상식이라 할 수 있다.

한수원에서 주장하듯 핵발전소의 주요 부품을 교체한다고 하더라도 위험은 줄어들지 않는다. 수명연장을 하려고 하는 핵발전소는 이미 30년 전 기술로 만들어진 것이라 그 기술적인 결함을 대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월성 1호기와 같은 중수를 냉각재로 쓰는 중수로의 경우,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아직 수명을 연장한 예가 없다. 또 원자로 내에서 일어나는 핵반응은 고에너지를 발생시키는데, 콘크리트는 콘크리트대로 철근은 철근대로 핵분열에서 나오는 중성자 등의 고에너지 입자에 30년 동안 노출되어 얼마나 손상을 입었는지조차 모르는 실정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후쿠시마 발전소의 경우, 사고의 시작이 원자로 압력용기와 같은 주요 부품의 손상이 아니라 핵발전소에 전력을 공급하는 주변부 시설의 고장이었다는 사실은 설사 핵심부품에 문제가 없어도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핵발전소는 주요부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작은 것 하나라도 가벼이 볼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수원이 핵심부품 몇 가지를 교체한 채 수명을 연장하겠다고 하는 것은 그만큼 위험하고 무책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위에 우유 이야기를 듣고 화를 내시던 시인은 남의 회사 내부 사정에 너무 격하게 반응한 것은 아닐까, 걱정을 했다. 회사에 다니는 사원이 아닌데 남의 이야기만 듣고 화를 낸 것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그런데 우유를 핵발전소에 비유해서 지어낸 이야기라고 하자, 다시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유통기간 없는 우유를 먹게 한 사장에 대한 분노와 회사를 옮겨야 한다는 처방을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일로 놓고 보자, 우리가 이 나라를 떠나야 한다는 새로운 이야기가 되어버린 탓이었다. 내가 회사를 떠나지 않으려면 사장을 쫓아내야 하니 핵발전소 수명을 연장하고자 하는 이 나라에 계속 살려고 한다면 정권을 교체해야 하는 것이 답이 아닐까? 정권을 교체하고 핵발전을 포기하게끔 해야 하는 것이지 않는가?

그 시인이 해준 답 속에 지금 대한민국 핵발전소가 가지는 문제점이 그대로 담겨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은 이 나라를 떠나느냐 아니면 핵발전소를 포기하는 정권으로 교체를 이루어내는가 이다. 아니다. 나라를 떠난다는 것은 쉬이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니 답은 하나가 아닐까? 핵 발전을 포기하는 정권을 만들어내는 것만이 살 길일 것이다.

  <원자력은 밝은 미래의 에너지>라는 안전신화를 칭송하는 표어가 내걸린 원전이 있는 후쿠시마현 후타바마치 지역. 지자체는 원전 유치 대가로 정부나 도쿄전력에서 받는 보조금 등으로 형편이 넉넉해지자, 마약중독처럼 원전에 의존하는 체질이 되었다. [출처: 모리즈마 다카시]

일본에서 오랫동안 핵을 반대해 왔던 작가 히로세 다카시 씨는 "핵과 관련해서는 운동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정확하게 아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이야기 했다. 우리는 핵과 관련한 일을 좀 더 자세히 아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체르노빌에서 발생한 사고는 아직도 현재형이다. 고농도의 방사선이 뿜어져 나오는 땅은 사고가 난 지 26년이 지난 지금도 사람의 발걸음을 거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에서 목숨을 일어가는 아이들의 아픈 목소리가 이제 일본 후쿠시마에서 들려올 것이다.

그리고 가게에서 유통기간을 넘긴 우유를 발견했을 때 화를 내는 만큼만이라도 핵발전소의 수명 연장에 화를 내야 할 것이다. 유통기간이 없는 우유를 발견했을 때, 가게 주인에게 따지고 언론사에 투고를 하거나 법정에 고소를 하듯 핵발전소의 수명연장에 대해 같은 반응을 보여야 할 것이다. 핵 없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사람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함께 걸음을 걸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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