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의 술수에 휘둘리는 현장, 공동투쟁으로 반격하기

[투쟁사업장](3) 한국쓰리엠 노조, 공동투쟁이 자랑스럽다

“야, 조회하자. 모여라!”
조회 시간이 되면 늘 분위기가 어두워진다. 그날도 후배 하나가 알이 없는 보안경을 쓰고 있다가 걸렸는데 팀장이란 사람이 그걸 벗겨 다른 직원들 보는데서 발로 짓이겨 깨부쉈다. 흔히 있는 일이라 서로 눈치만 볼뿐 아무 말이 없었다.

“파트장님도 아시겠지만 보안경 지급이 잘 됩니까? 저놈도 쓰고 싶어서 썼겠습니까! 작업복도 마찬가지지만 신청해도 잘 안 나오니까, 약점 잡히고 근무평가 안나올까봐 겁나서 그렇게 한 거 아닙니까!” 하고 푸념을 터뜨렸다. 그 말을 들은 파트관리자는 다른 팀 팀원들과 우리를 비교하며 한바탕 스트레스를 날려댄다.

그들에게 상식을 말하고 싶어서

내가 일하던 한국쓰리엠이라는 회사는 남들 보기에는 대단히 근로조건이 우수하고 기업 이미지 좋은 외국회사처럼 보였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관리자들의 행동이 쩨쩨하기 이를 데 없는 곳이었다. 그렇지만 누구도 ‘내가 다니는 회사가 이렇다’고 말하지 못했다. 왜냐? 나도 곧 있으면 반장이 되고 조장이 되고 파트관리자가 될 텐데, 그런 말 때문에 어처구니없는 근무평가 점수제에 뒤쳐질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남들은 한국쓰리엠에 노동조합이 생기게 된 이유가 2009년 미국 경제위기를 한국의 노동자들에게 덮어씌워 치졸하게 정리해고 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난 그렇지만은 않았다. 가면 갈수록 많아지고 끝나지 않는 업무를 집에까지 가져가 숙제처럼 하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 팀장이란 작자들의 비상식적 행위에 분노했기 때문이다. 그들과 대등한 입장에서 말하고 싶고 자신 있게 상식을 주장하고 싶었다. 처음 노동조합을 준비하고 결성하면서 현장노동자들의 가입률이 90%를 상회했던 것도 아마 나같이 느낀 사람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노조 활동을 하면서 나 아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게 좋다고 느꼈다. 그러나 가까운 사이지만 떠나는 이들을 잡지 못했을 때 그 자괴감이 날 더욱 힘들게 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노동조합 활동을 하다 2010년 12월에 해고를 당했다.

[출처: 금속노조 자료사진]

노동자가 일터에서 쫓겨난다는 것

난 아직도 해고당하던 그때를 잊지 못한다. 심적 충격 때문이 아니다. 웃으면서 해고장을 나눠주는 관리자를 보면서 내 목표가 하나도 틀리지 않았음을 다시 알았기 때문이다. 인간으로서, 아니 노동자로서 내 일터에서 쫓겨난다는 것이 무얼 뜻하는지 모르고, 자기들 기득권만 지키기 위해 양심은 한쪽에 던져 놓은, 인간이 되려면 아직도 먼 그들을 보며 꼭 승리하리라는 끈기가 생겼다.

그런데 문제는 이 인간만도 못한 관리자 놈들이 이제는 현장노동자들을 갈라치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장노동자에게 근무평가를 매길 수 있는 권한을 준단다. 그걸 또 비조합원들이 나서서 서로 감투를 쓰겠다고 난리란다. 씁쓸하다. 그런 것이 싫어서 노조 가입을 했던 그들이 다시 그 알량한 권력을 얻으려는 것인지... 의도는 알겠지만 눈 뜬 장님과도 같은 그들을 보면서 갈수록 어려워지는 현장의 싸움을 어떻게 돌파해 나갈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그 눈 뜬 장님과 노동자의 중요성을 모르는 자들의 원흉과 싸우자. 그것도 될 때까지!” 이것이 답이라는 생각으로 서울본사 상경투쟁을 시작하게 됐다. 그리고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정리해고 비정규직 노조탄압 없는 세상을 향한 공동투쟁단’ 활동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나쁜 놈도 많지만 그들과 싸우는 우리가 있다

세상에는 나쁜 놈들이 참 많다. 공동투쟁단 활동을 하면서 처음 느낀 점이다. 그런데 그들과 싸우는 사람도 참 많다. 많은 사람이 모였지만 당하는 수법이나 억울한 사연도 비슷하다. 역으로 놓고 보자면 우리가 너무 준비가 안 되어 있고 무언가 잘못돼 있다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이렇게 투쟁사업장들이 모이면 당한 만큼 분노의 힘도 비슷할 것이고 반격의 기운도 비슷하게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힘을 때로는 한 군데로 모으기도 하고, 때로는 개별적으로 분산시켜 투쟁해야만 하는 것이 공동투쟁단의 숙제이기도 하지만 지금처럼 경계를 넘어 분야를 가리지 않고 공동 목표를 향해 계속 진행해간다면 어느 한 곳이라도 뚫리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한다.

특히 판에 박힌, 뻔한 집회의 틀을 바꾸고 지금의 방식에 다른 아이디어가 합해진다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조심스레 예상한다. 즐겁게 싸우고 또 반드시 이기겠다는 지금의 투쟁의식만 있다면 더이상 어려워지지 않을 것이다. 공동투쟁단으로서 함께 활동했던 시간을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그때가 반드시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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