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 구속자 이충연 옥중편지

[용산참사 4주기] 그리운 아버지와 열사들에게

불러보고 싶어도 차마 입이 떨어지질 않아 부를 수도 없던 그 이름, 아버지와 열사들을 4년 만에 불러봅니다.

지금도 눈만 감으면 그날의 악몽이 되살아나고, 베개 잎이 다 젖도록 통곡할 수밖에 없는 그날의 기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옆에 계셨던 동지들이 돌아가셨다는 소리는 지금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저를 지켜주셨던 아버지가 그곳에서 나오시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돌아가셨단 이야기를 지금도 믿을 수 없습니다.


저만 산 것이 죄송하여, 동지들과 아버지를 지키지 못했단 죄책감에 죽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전 죽을 수도 없었습니다. 비참하게 돌아가신 아버지와 동지들의 한을 풀어 드리지 못하고서는, 전 죽어도 아버지 곁에 갈 수 없음을 알기에 그럴 수도 없었습니다.

거리에서 “용산참사 진상규명,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외치는 유가족 어머님들의 소식을 들으며 하루하루 곱씹으며 살았습니다. 반드시 명예회복을 하리라. 비참하고 억울하게 돌아가신 아버지와 열사들을 위해 질기게 살아 돌아가리라, 굳은 결심을 하며 버티고 있습니다. 그렇게 4년을 살았습니다.

얼마 후면 어느덧 용산 4주기가 다가옵니다. 올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리는 듯합니다. 355일 만에 장례나마 치러드리던 날도, 아프고 서럽게 눈이 내렸는데 올겨울 내리는 눈이 그날의 기억을 되살아나게 합니다.

명예회복도, 책임자 처벌도 하지 못하고, 용산의 진실을 묻어둔 채, 억울하게 저 세상으로 보내드린 것, 용서하세요. 하지만 355일 동안 다섯 영정을 품에 안고 혼이 나간 듯 목 놓아 울부짖던 유가족 어머님들을 생각하면 그렇게 결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장례식 날, 다섯 분을 제 가슴속에 묻으며 이대로 보내드리진 않을 거라고, 눈물을 참으며 약속드렸지요. 못다 흘린 눈물은 진상규명을 이루고 다시 돌아와 맘껏 흘리겠다고 다짐했었지요. 그리고 3년이 흘렀건만 아직 제힘으로 무엇 하나 해보지도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저의 나약한 마음 한편에선 이곳에서 나간들 무엇을 어찌해나갈 수 있을지 두려움과 걱정이 앞서기도 합니다. 저 자신이 숨이 막힐 듯 거대한 절벽 앞에서 점처럼 작고 보잘것없는 것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포기하진 않을 겁니다. 제가 짊어진 짐은 끝까지 제가 짊어지고 갈 겁니다. 시련은 저를 더욱 강하게 단련하는 과정이라 생각하며 굳건히 지내고 있습니다. 한 평 남짓한 방에서 혼자 4년을 살면서 책을 읽을 때건 잠자리에 들 때건, 화장실에 갈 때건, 제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저에게 자주 묻곤 했습니다.

그동안 책에서 그 답을 찾으며 어떤 날은 희망을 본 것 같아 즐겁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현실의 벽이 높아 보여 절망스럽기도 했었습니다. 하나라고 생각했던 길이 수없이 나뉘고 어디로 가야할지 길을 잃을 때는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할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길을 정확히 알려줄 사람 또한 없을 듯합니다.

이렇게 혼란스럽고 자신이 없을 때는 아버지와 동지들은 어찌 생각하실까. 제 가슴에 대고 묻기도 했지요. 답은 못 해주시더라도 답답한 마음에 위로가 돼 주시고 제 마음이 조금 더 넓어지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열사분들.
나약한 저에게 그리고 용산을 잊지 않고 함께해 주시는 모든 분에게, 그곳에서 힘이 되어 주시리라 믿고, 오늘도 제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아버지, 열사분들. 너무 죄송합니다. 그리고 보고 싶습니다.

살아생전 단 한 번도 하지 못한 말 이곳에서 전합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2013년 1월 용산참사 4주기를 앞두고
안양교도소에서 이충연
덧붙이는 말

이충연 씨는 용산참사로 돌아가신 고 이상림 열사의 아들이다. 그는 용산 망루농성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5년 4개월 징역이 확정되어, 4년째 독방에 갇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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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사 , 이충연 , 용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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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amomile

    용산학살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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