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서 보낸 7년, 후회하지 않는 이유

[연속기고](3) 해고자로 살아가기

[필자주] 3월 29일과 30일에 걸쳐 “해고자의 날” 행사가 열린다. 29일에는 ‘해고에 맞서는 투쟁의 역사와 전망’이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하고, 3월 30일에는 ‘봄날은 왔어! 해고는 갔어!’라는 문화제가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린다. 해고가 만연한 시대, 해고자들이 죽어가는 시대, 해고자들을 살리고 우리 모두가 연대의 권리를 누리는 자리이다. 많은 분들이 함께 연대해주었으면 좋겠다.


정리해고 된지 7년!

참으로 어렵고 긴 시간이다. 해고되기 전 나의 가정은 다른 가정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가정이었다. 한 여자의 남편으로, 두 아이의 아빠로, 그리고 부모님의 아들로 그 책임과 의무를 다 하며 좀 더 행복한 삶을 위해 최선을 다 하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느닷없이 찾아 온 공장 폐업과 정리해고! 이 정리해고는 나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고, 행복하고 단란한 가정을 소망했던 소박한 나의 꿈마저 빼앗아가 버렸다. 그리고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정리해고 당시 중학교에 입학을 하였던 큰 아이가 이제는 대학생이 되었고, 초등학교를 다녔던 작은아이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부모의 부재 속에 사춘기를 홀로 보내야 했던 아이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남편의 해고로 가정의 경제는 아내 혼자 책임져야 했다. 그러면서 가정 경제는 계속 궁핍해지고, 급기야 어렵게 장만한 작은 집마저 팔면서, 아내의 불만은 커져만 갔다. 아내의 고통이 커져 갈수록 집안의 분위기는 삭막함으로 변해갔다. 또한, 아이들은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학원이라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한 채 홀로 공부를 해야 했다. 그러면서 가족 구성원들은 차츰 대화가 사라져 갔다.

거리에서 보낸 7년의 해고기간 동안 아내로부터 두 번의 이혼 요구를 받았다. 가정의 경제를 홀로 감당해야 했던 아내는 더 이상은 힘들다며, 가정과 투쟁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혼을 요구하기까지 아내는 얼마나 힘든 시간을 홀로 고뇌하며 힘든 시간을 보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아내에게 한없이 미안해진다.

지난 7년의 해고자 생활은 마치 사람의 생활이 아니었을 만큼 처참했다. 한 여름 더위를 식힐 선풍기 한 대를 돌리지 못했고, 세찬 바람이 몰아치는 한 겨울에도 공권력의 방해로 바람을 막을 천막 한 동을 치지 못한 채 길거리에서 비닐 한 장에 의지해 잠을 청해야 했다. 이렇듯 이 나라에서 해고노동자는 사람으로 인정받기가 어렵다. 이것이 바로 해고노동자의 삶이다.

어느 누구든 투쟁이 좋아서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토록 오랜 시간을 투쟁할 것이라 생각하고 투쟁을 하는 사람 또한 없을 것이다. 이 부당함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투쟁을 시작했고, 이 투쟁을 당당히 승리하기 위해 포기할 수 없었으며, 그로 인해 7년이라는 세월을 거리에서 해고자로 살아왔다.

이 세월은 분명히 힘들고 어려운 세월이었다. 그러나 강물처럼 유유히 흘러가버린 그 세월을, 끝이 보이지 않는 이 투쟁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나 자신을 믿기 때문이다. 내 스스로 선택한 것이고, 내가 해 나가야 할 투쟁인 것이다.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지금의 고통과 어려움은 승리를 쟁취하기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그 밑거름을 바탕으로 승리의 새싹은 돋을 것이고, 그 새싹이 무럭무럭 자라 커다란 나무가 되어 많은 노동자들의 그늘이 되어주고, 쉼터가 되어 줄 것이다. 그 날을 염원하며 많은 해고노동자들은 오늘도 거리에 당당히 설 것이다. 이 글을 빌어 해고자의 아내로, 자녀로 함께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가족들에게 미안함과 함께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힘들고 어려웠던 오랜 시간을 잘 참아주고 견디어 준 부인, 딸, 아들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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