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를 조직하는 사람들

[기획연재]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권리찾기(4)

[편집자주] 전체 노동자의 83.7%가 10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한다. 노동자 조직률은 1%도 채 안 된다. 대부분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이 장시간 노동으로 부족한 임금을 메우고 있다. 혹시라도 잔업이 없어지면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지니 물량을 따라 이곳저곳 이동한다. 대다수인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가 권리를 찾지 못하면 노동자의 미래는 없다. 노동자들의 노동이 즐겁고 권리가 충만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 이제는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조직화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이 권리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더 많이 노력하고 힘을 쏟아야 할 때다. 총 다섯 차례에 걸쳐 글을 싣는다.


민주노총에서 2기 전략조직사업으로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을 ‘지역’ 중심으로 조직하기로 한 바 있다. 그러나 이미 오래 전부터 지역에서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을 조직해온 사람들이 있었다. 금속노조의 지역지회들이 그런 역할을 해왔고, 2000년 이후에 급격하게 확대된 지역일반노조도 지역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을 조직해왔다. 2011년 이후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조직화는 기존의 방식과 달라야 한다는 생각 속에서 새로운 전망을 갖고 조직사업을 시작한 단체들도 있다.

이 모든 노동자들의 고민과 의지를 여기에 다 담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우리가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을 조직한다 함은 맨땅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땀흘려온 이들의 경험을 배우고 지금도 그런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많은 이들의 목소리를 들음으로써 시작된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그런 점에서 너무나 많은 이들이 조직사업을 하고 있지만 여기에서는 중소영세사업장 조직화를 위해 애쓰고 있는 일곱 동지들의 목소리를 듣고자 한다. 이 짧은 인터뷰는 그 동지들의 문제의식을 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고민을 함께 나누어보고자 한다.

10년간 만들어온 공단노조운동, 실패와 경험을 담아 새로운 10년을 준비한다.
-성서공단노동조합 (임복남/성서공단노조 부위원장)


2002년 10월 17일, 당시만 해도 아직은 생소한 공단노조라는 이름으로 성서공단노동조합이 출범하였다. 당시 성서공단에 민주노총 사업장들이 격심한 노조탄압으로 인해 많은 사업장들이 위장폐업, 위장 부도로 어려움을 겪는 것을 지켜보면서 공단노조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출처: 성서공단노동조합]

“당시 지역에는 자본으로부터 ‘성서공단에 노조가 설립되면 회사가 망한다.’는 이데올로기가 광범위하게 유포되어 있었습니다. 2001년 성서공단 안의 금속연맹 삼일산업노조가 사측의 탄압으로 조합원들이 퇴사하여 노조가 해산되는 등 민주노조가 들어서면 그 회사를 고의적으로 부도내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버리는 일도 있었죠. 그래서 성서공단에서 더 이상의 기업별노조로는 유지가 힘들다고 생각했고, 그에 대한 대안으로 지역노조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2002년 초 지역의 노동운동단체(현장연대) 소속 활동가 3명이 성서지역에서 ‘성서 노동과 자치연대’를 구성하였고 성서공단 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진로 모색과 함께 전국에서 활동하는 지역노조 활동가들과의 수차례 토론회를 거치며 성서공단노동조합을 결성하였습니다.”

성서공단노조의 가장 큰 목표는 성서지역을 노동 친화적 지역사회로 만드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지난 10년간 꾸준하게 선전전과 문화제 등을 진행하면서 공신력을 획득하고 있다.

“성서공단노조는 매월 소식지를 발행해서 3~4차례의 출근선전전과 4~5차례의 중식선전전을 진행합니다. 봄과 가을에는 ”생활임금쟁취, 비정규 없는 성서공단 만들기“라는 이름으로 중식시간 공단 곳곳 거리를 다니면서 ‘밥 한술 뜨고 노래 한 자락 듣고’라는 제목으로 자투리 노래공연을 합니다. 그리고 여름에는 공단 건너편 주거지역에 위치한 와룡공원에서 성서주민들과 함께하는 ‘수요공연’을 진행합니다. 이 수요공연은 매주 노동 사안에 대한 주제를 가지고 공연을 합니다. 성서공단은 도로하나를 사이에 두고 생계공간과 생활공간이 함께 접해 있는 지역적 특색이 있기 때문에 성서지역을 노동자 친화적 지역으로 만들기 위해 지역주민사업도 함께 합니다.”

영세사업장에서 저임금과 열악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는 노동자들은 좀 더 나은 곳에서 일을 하고 싶어 일하던 회사를 떠나지만 돌아오는 현실은 똑같다. 나은 곳을 향해 돌고 돌아도 제자리. 사업장은 떠나지만, 노동자들은 성서공단 안을 끊임없이 돌고 돈다. 그래서 성서공단노조는 성서공단 전체 노동자들의 권리향상을 위해 공단협약을 체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기업별노조를 넘어 지역으로, 특히 차별받고 있는 영세사업장, 이주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하여 지역노조를 만든 것은 의미가 큽니다. 또한 성서공단노조가 노조 내부 사업에 국한하지 않고, 지역적 연대뿐만 아니라 반빈곤 의제, 장애인 의제, 소지역운동 의제 등에도 결합하고 있는 것은 소수의 노조가 아닌 지역적, 사회적 노조를 지향하기 때문입니다. 성서공단노조운동은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그간 수많은 사업들을 시도하였으며, 많은 실패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도 여전히 많은 실패와 함께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도들을 진행할 것입니다. 공단노조운동, 누구도 가지 않았던 길을 처음 가는 노조로서 갖는 고립감과 두려움이 없지 않았지만, 성서공단노조 10년의 역사 속에서 축적되는 내용들은 분명히 운동의 자산이며, 10여 년 동안 만났던 정주노동자, 이주노동자들의 작지만 그 성장과 변화 역시 운동의 자산일 것입니다.”

새로운 터전에서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모색한다.‘새터’
-거제·고성·통영지역 (김진아/노동건강문화공간 새터)


거제·고성·통영 노동건강문화공간 ’새터’가 지난해 3월 출범을 알리며 던진 출사표는 <단위사업장의 한계를 넘고, 지역의 한계를 넘어, 전국의 노동자가 하나 되는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만들어가기 위한 출발>이었다.

“산추련(마산창원산재추방운동연합) 회원들을 비롯해 대우조선 정규직 노동자들 내부에서는 현장권력에만 목을 매고 있을 상황이 아님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내부의 정규직들만 조직해서 얼마나 희망이 있을까’에 대한 문제의식이 공감되었죠. 단위사업장의 한계를 넘어, 지역으로 나가서 공동체들을 만들고 비정규직들을 조직하는 일들을 해보자하는 결의를 모아 [새터]를 만들게 된 것입니다.”

새터에서 상근활동을 하고 있는 김진아 동지는 ‘공단 중심의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삶의 변화가 기업단위의 조직화로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노동권만이 아닌 생활권 요구를 포함하는 투쟁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새터의 기본입장이라고 설명했다.

“문턱을 더 낮추고 비정규직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 그 안에서 사람들을 모아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기존의 노동조합이 가지고 있던 경직성 때문에 비정규직노동자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니까요. 또 다른 측면에서는 지역의 공동체 공간으로서의 역할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가족, 직장, 자녀의 교육, 취미 등을 모두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노동자들에게 새터가 생활권과 노동권을 함께 이어주는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배움의 공간, 실천의 공간, 연대의 공간, 나눔의 공간으로 말이죠.”

[출처: 울산노동뉴스]

이처럼 노동자들을 지역으로 조직하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거제·고성·통영은 조선 산업을 통해 지역이 유지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조선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습니다. 당연히 조선소를 배경으로 살아가는 노동자들이 많이 존재하는데. 그들 중 사내하청 노동자는 그나마 나은 편입니다. 만연한 불법파견에 다단계하청노동자, 거기에 물량팀, 돌관팀 이라는 이름으로 그날에 물량에 따라 떠돌아다니는 노동자들이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물량 팀이나 돌관 팀은 팀장이 물량계약을 하고 일을 하는데, 개별계약서 작성도 없이 일하다보니 팀장이 임금을 들고 튀어버리면 어디 가서 하소연 할 곳도 없고, 다쳐도 개인 돈으로 치료하기가 일쑤입니다. 심지어 일하다 죽어도 책임을 서로에게 떠맡기기에 급급하죠. 이러한 일들은 한 사업장의 문제만 머물지 않고, 전체 조선사업장으로 퍼져나갑니다. 여기서 벌어진 일이 저기서도 벌어집니다. 다른 이름으로 다른 공간에서 일하지만 하나일 수밖에 없는 노동자, 거제․고성․통영 모든 노동자들이 함께 현실의 문제를 바꾸어 가고, 스스로가 일구어가는 희망을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불안정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의무, 공단조직
-서울남부지역노동자권리찾기사업단 (권순만/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서울남부지역노동자권리찾기사업단 ‘노동자의 미래’. 처음 ‘노동자의 미래’라는 이름을 듣고 무슨 뜻일까 궁금했다. 말 그대로 노동자의 미래를 연다는 뜻인가? 서울남부사업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권순만 동지는 노동자의 미래에 대해 ‘과거를 살아가는 현재 노동자들의 미래(희망) 찾기’라고 말한다.

“서울남부지역노동자권리찾기사업단‘노동자의 미래’는 서울 구로·금천지역 즉, 예전 구로공단으로 일컬어졌던 구로디지털산업단지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조직대상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굴뚝 산업의 대명사였던 이곳 구로공단에 십여 년 전부터 고층건물이 하나둘 들어서더니 지금은 첨단산업단지라는 겉모습으로 화려하게 변신에 성공을 했습니다. 겉모습이 화려해진 만큼 그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삶도 화려해 졌느냐, 현실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상시적 고용불안에 저임금, 장시간노동은 물론이고 기본적인 근로기준법조차 준수되지 않고 있는 현장이 부지기수이죠. 오히려 과거보다 못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서울남부는 민주노총 2기 전략조직화사업의 핵심 사업으로 2010년 선정되어 사업 준비기를 거쳐 2011년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선전전은 기본이고, 시민들을 대상으로 대중강좌, 최저임금시기에는 최저임금사업, 건강권사업, 매월 마지막 주 목요일에는 가산디지털단지역에서 바지락광장을 열어 중고 책 마당, 먹을거리 장터, 무료 법률 상담 등을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시기별 집중사업도 진행하는데 지난해부터 ‘무료 노동 이제 그만’이라는 캠페인사업도 진행했다.

“‘무료 노동 이제 그만’이라는 사업은 지역의 전체 노동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의제를 찾는 데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장시간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 이를 보충하기 위한 잔업과 특근, 근로계약서도 없이 야근이 이뤄지다보니 수당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 일이 다반사고, 1시간미만의 연장근무수당은 관행처럼 지급되지 않고 있었죠. 또한, 작업시간 전에 체조를 시키고, 휴게시간 끝나기 5분전에 작업대에 앉게 하고, 퇴근시간이후 30분씩 청소를 시키는 등 말 그대로 무료로 노동을 착취당하고 있다는 불만들이 모아졌습니다. 일상적이고 작은 문제지만 특정 한 사업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 지역 노동자들 사이에 공감대가 이뤄졌던 불만들이었기 때문에 지역 노동자들에게 크고 작은 호응이 있었습니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이러한 활동을 기반으로 현재 남부사업단은 지역 사용자단체와 지자체, 노동부에 지역협약 체결을 요구하고 있다. 협약을 체결하고자 하는 의미와 과제는 무엇일까.

“중소영세사업장에 노동자들은 독자적으로 현장을 바꿔낼 수 있는 상태에 놓여 있지 않습니다. 노동조합을 만든다고 해도 영세한 사업장은 지불능력도 없을뿐더러 폐업하면 그만입니다. 우리가 지자체나 사용자단체를 상대로 협약을 맺으려는 것은 바로, 지역의 전체 노동자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물론 협약서 한 장으로 바뀔 수 있는 부분은 적을 겁니다. 그러나 최소한 노동자들이 저항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보자는 것이죠. 그러한 경험들을 축척해 광범위한 대중들의 직접행동을 조직하는 것, 그것이 협약체결의 의미와 목적이 아닌가 싶습니다.”

서울남부 사업단은 지역의 노동자들이 공감하는 의제를 끊임없이 발굴하고 그것이 맞는 것인지에 대한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그 역할이 일부 사업단에 속해있는 활동가들의 몫 많은 아닐 것이다.

“지금 우리는 공장 안에서의 투쟁이 더 이상 공장 밖으로 확대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반성이 필요합니다. 이 땅에서 노동자로 살고 있는 어느 누구도 자본의 착취로부터, 고용의 불안정성에 대해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것이 바로 불안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의무가 아닐까 싶습니다.”

가장 가까이, 현장에서 고민한다. 무엇을 할 것인가.
-안산·시흥지역 (박정현/현장활동가)


안산시와 시흥시를 거쳐 조성되어있는 반월공단과 시화공단. 1970년대 말부터 조성되기 시작한 반월공단은 단순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노동 집약적 산업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30년이라는 세월을 말해주듯이 기반 시설 역시 노후화되어 있어 언제 사고가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 같은 상태라는 지적이 끊이질 않는 곳이다. 우리나라 최대의 중소 제조업체가 밀집해 있는 반월·시화공업단지는 과연 어떤 모습이고 그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어떤 모습일까.

“공단은 삭막해요. 버스정류장에 글자는 다 지워지거나 뜯겨져 있고. 버스는 잘 다니지도 않아요. 드문드문 가로수가 있지만 관리가 안 돼 사람 얼굴높이까지 늘어지고, 보도블록은 다 깨져있고, 잡초는 웃자라있죠. 빈 공장 터에는 쓰레기만 쌓여있고. 사람 냄새가 안나요. 중간 중간에 공원과 운동장이 있긴 하지만, 어떤 공원에서는 일 년 내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정말 아무 일도요.”

“제가 일하고 있는 공장을 얘기하면 라커룸 입구에 보드마카하고 마카지우개가 준비되어 있어요. 일단 처음 오면 빈 락커를 찾아서 원래 있던 이름을 지우고 자기 이름을 쓰는 걸로 일을 시작해요. 그런데 아침에 쓴 이름이 야간에 지워지고, 야간에 쓴 건 다음날 아침 지워지고 이런 식예요. 공장을 나간 노동자들은 파견업체에 가서 다시 이력서에 이름을 쓰겠지요. 지갑에 파견업체 명함 두서너 개 꽂혀있고, 일간지처럼 생활정보지를 구독하는. 대부분이 비정규직노동자들이니 이런 게 일상이 되었어요.”


실제로 안산역 주변 거의 모든 건물에 파견업체가 들어서 있다. 지역의 노무·인사관리는 파견업체가 모두 담당하고 있다고 농담 삼아 말하기도 한다.

반월·시화공단에 들어가 일을 한지 1년 쯤 된 박정현 동지. 지역의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권리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고, 그것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현실 속에서 가끔 조바심이 생기기도 한다.

“저 일하는 공장 가까운데서 프레스에 팔이 날아간 사고가 있었어요. 그런데 같은 사고가 그 전에도 두 차례나 더 있었다는 거죠. 공장에서 내놓은 사후대책이 뭔지 아세요. 무당을 불러서 굿을 했어요. 그 설비에는 아무런 안전 조치 없이 또 다른 사람이 와서 12시간 서있죠. 주말 특근 한 번 빼려면 조상님 제사부터 낳지도 않은 애 돌잔치, 별별 얘기가 다 나와요. 미안한 표정부터 짓고 굽실거려도 반장이 볼펜 한 번 집어던지고 지랄을 떨고 나서야 일요일 하루를 쉴 수 있어요. 다시 또 출근하고 일 하는 거. 이거 말고는 노동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아. 아무것도 없구나. 이들에게도 뭐가 있어도 있어야겠다. 그래서 가장 고민인 건 노동자모임을 조직하는 거예요. 아직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지는 못하지만 불만 있는 사람들의 모임, 뭔가 활동적인 걸 같이 해보자는 얘기도 나왔죠.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모임 이름도 짓고, 회칙도 만들고 카페도 만들어서 그럴싸한 노동자 모임으로 만들 생각입니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것이 노동조합운동을 바로 지켜내는 것
-녹산공단조직화대책위 (신상길/민주노총 부산본부 서부산상담소)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딱, 눈이 맞았죠.”

녹산(김해)공단조직화대책위 활동을 함께하고 있는 신상길 동지는 조직화대책위 구성과정을 소개해 달라는 질문에 한마디로 ‘눈 맞아서’ 시작했다고 표현했다.

“녹산공단 내에는 조직되어있는 노동자수가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만큼 노조운동의 경험이 축척되어있지 못하고 활동력도 취약한 상황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단조직화는 어쩌면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고, 지역 동지들도 각자 단위에서 고민만하고 있던 문제의식들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면서 ‘해보자’했을 때 모두가 망설임 없이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녹산공단조직화대책위는 2010년과 2011년을 거치면서 각종 실태조사와 토론회 등을 통해 지역 의제를 만들어 왔고, 특히 공단 내 식당을 중심으로 공단 노동자들을 직접만나면서 대중접촉면을 넓혀가고 있다.

“점심시간 식당을 중심으로 하는 선전전이 출퇴근 선전전보다 효과적이에요. 출퇴근시간은 부수는 많이 나가지만, 혼자 읽고 버리는 게 대부분인데, 식당 앞에서 하면 일단은 공장 안으로 들고 들어가게 되는 거죠. 그래서 동료들과 같이 읽기도 하고 토론도 하기도 합니다. 버리더라도 공장 내 화장실 같은데 버리게 되니까 똥 누면서라도 보는 사람이 생긴다는 겁니다.”

이렇게 배포되는 선전물에는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나라별 언어로 번역된 선전물도 있다. 녹산 대책위에서는 이주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한 여러 프로그램들을 진행하고 있는데, 노동법 학습소모임, 한글모임, 국가별 공동체모임 등이 지역에서 이뤄지고 있다. 작년에는 이주노동자체육대회를 진행했는데, 반응이 아주 좋았다.

“실제로 이주노동자들과 상담을 하게 되면 공단에 있는 현실을 정확히 볼 수 있습니다. 하는 일은 물론이고, 노동조건이나 환경 등은 최저수준, 그러니까 가장 밑바닥 조건에서 일하기 때문에 공단 내 현실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이주노동자들의 상태라고 봅니다. 그래서 그들을 조직하지 않고서는 공단의 현실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이죠.”

녹산공단 조직화 사업단은 정기적인 소식지 발간, 홍보물 제작, 선전 및 현장 활동, 초동주체 발굴, 각종 의제사업, 대중강좌, 희망 강좌, 건강권사업, 실태조사사업 등 진행되어 왔다. 그리고 앞으로 진행할 사업들을 통해 공단 내 내부동력 형성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서두르거나 질러가지는 않을 계획이다.

“조직사업을 하면서 그 결과를 당장의 조직된 숫자로만 평가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것은 아주 나쁜 습관입니다. 숫자가 아닌 활동력으로 평가되어야 하고, 장기적인 계획 속에서 지속적인 사업으로 나아가기 위해 민주노총을 포함한 운동진영 내부의 협력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자본은 지속적으로 하향평준화 시키려 들 것인데,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이 조직되지 않으면 노동조합운동은 발전하지 못합니다. 노동조합운동을 바로 지켜내기 위한 것이 바로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것입니다.”

특별하지 않게, 노동자라면 누구라도 나서야 한다.
-인천노동자권리찾기사업단 (이대우/금속노조 인천지부 수석부지부장)


“인천은 전통적으로 공단 밀집지역입니다. 인천공업단지, 남동공업단지, 부평공단, 인천기계공업공단 등 총10곳의 산업단지가 조성되어있습니다. 그 중에서 부평공단을 전략지로 삼은 것은 사실 지리적으로 접근성이 가장 좋았기 때문입니다. 통계상으로 보면 전기전자업종이 40%정도를 차지하고 있고, 50인 이하 사업장이 50%이상으로 주로 영세사업장이 밀집되어 있습니다. 전기전자업종이 많다보니 여성노동자 수가 70% 정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인천노동자권리찾기사업단은 작년 불법파견업체 실태조사를 시작으로 휴업수당받기운동, 집단진정운동 등을 진행했고, 올해는 4월부터는 ‘근골격계 질환 통증자 및 사업주의 법 이행 여부 실태 조사’를, 5월은 이주노동자 문제, 6월에 불법파견-작년에는 파견업체 중심이었다면 이번에는 사용사업체 대상으로-사업을 진행 할 예정이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불법파견에 대한 사업을 지속적으로 진행하는 이유에 대해 인천사업단 이대우 동지는 인천이 그만큼 파견업체의 천국이라고 설명한다.

“안산시 다음으로 파견업체가 가장 많은 곳이 인천입니다. 그만큼 노동자들이 파견업체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것이죠. 노동자들에게는 이미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물량확보를 많이 해서 잔업과 특근을 얼마큼 할 수 있는 곳이냐 아니냐입니다. 일부 노동자들이 정규직 자체를 거부합니다. 정규직으로 일거리도 없고 잔업도 없는 회사에 메여 있느니 물량 많고 잔업 많은 회사를 찾아다니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인식이 팽배해져 있다는 거죠. 그만큼 노동조건이 대동소이하고 전체적으로 하향 평준화되어 있는 현실을 반영하는 참 씁쓸한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인천사업단은 금속노조인천지부와 기업지부가 함께하는 지역공동운영위원회의 주요 사업의 일환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만큼 정규직 노동자들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모두가 그 필요성을 공감하지만 그만큼의 역량을 투여하기 힘든 것이 미조직 사업입니다. 사업단이 처음 꾸려졌을 때는 서로 다양한 사업을 해보자고 결의를 모았는데 실제 운영과정에서는 결합력이 생각만큼 되지는 않았습니다. 노조에서 일상적으로 해야 할 일을 사업단으로 옮겨가다보니 일종의 미비사업을 외주 준 것처럼 되어버려서 1년 동안 운영해 본 결과 한계가 드러나더군요. 그래서 지금은 지회들의 결합력을 높이기 위해 선전전 등 지회 중심으로 별도 실천 활동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실, 전략조직이라는 용어가 좀 그래요. 조직화사업이 노조의 일상 업무가 되어야 되는데 특별한 업무처럼 포장되는 것 같아서요. 지부나 지회가 중심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도 그런 의미입니다.”

이 외에도 전국에서 지역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해 애쓰는 이들이 있다. 민주노총이 2기 전략조직사업으로 중소영세사업장 조직화를 위해서 많은 재정과 인력을 투여하였지만, 민주노총이 진행해왔던 경험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전국에서 조직활동을 하고 있는 이들의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이 열정이 민주노조운동 내부의 흐름을 바꾸고 아직 조직되지 않은 이들과 더불어 투쟁할 수 있도록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연재순서

1. 중소영세사업장, 불안정노동자에 주목 - 김철식(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2.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로 산다는 것 - 윤정호(반월시화공단 노동자)
3. 전략조직화 사업을 조직문화 혁신으로 - 오상훈(서울남부전략조직화사업단)
4.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를 조직하는 사람들 - 이미숙(반월시화공단 조직활동가)
5.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조직화가 운동 - 김혜진(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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