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7일, 매우 특별한 자동차가 오는 날

[기고] H-20000 프로젝트, 쌍용차 투쟁 다시 세우기

봄꽃 흐드러지게 피어나던 5월의 어느 날 작업복을 입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한 공업사에 모였다. 비록 회사에서 주는 작업복이 아니었지만 작업복을 입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주말인데도 쉬지 못하는 점에 대한 불만은 없었다. 아이들까지 와서 아빠 옆에서 마냥 신나게 뛰어놀았다. 아, 아빠들과 아이들이 같이 있는 시간도 오랜만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투쟁하는 이에게 일상은 사치일 수 있기 때문임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들이 복직한다는 것은 그들이 잊고 있었고, 포기하고 있었던 일상의 삶을 영위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 앞에 흰색 코란도 자동차가 나타났을 때 일순 긴장감이 감돌았다. ‘내가 차를 다시 만들 수 있을까?’, 아마도 그런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던 모양이다. 공구가 가지런히 갖추어지고, 한 조각, 두 조각 자동차의 몸을 이루던 부품들이 분해되어 나갈 때, 그들의 얼굴에는 긴장 대신에 지금껏 그들에게서 보지 못했던 표정들이 살아났다. 작업복에 검은 기름이 묻어나도, 손이며, 얼굴에도 기름이 묻어도 그들은 즐거웠다. 구슬땀을 흘리며 차체를 분해하고, 엔진까지 뜯어내가는 과정에서 그들의 표정은 점점 더 살아났다.

“이게 얼마만이야.” 이게 얼마만인가. 4년만이다. 2009년 정리해고에 맞서 파업을 벌이기 전까지, 그들이 공장에서 쫓겨나기 전까지 그들은 지겹도록 매일 이 자동차를 조립했다. 라인에 선 노동자들은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오는 자동차가 지겨웠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그들은 그 생활을 그리워하고 있음이 역력했다. 솔벤 냄새가 지독해서 피하는 우리를 보고 기꺼이 웃어준다. 니들이 자동차에 대해 뭘 알어 하는 것 같았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한 여성 활동가는 눈물바람이다.

재조립이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라인에서 작업했던 노동자들은 허당이다. 그들은 자신들 앞에 놓인 부품이나 부분만 장착해왔기 때문에 전체를 조립하고, 자동차가 굴러가게 하는데는 별 소용이 없다. 정비지회장 문기주나 정비지회 출신 김정우 지부장을 비롯한 정비 쪽 출신들이 얼굴에 흘러내리는 구슬땀을 연신 닦아내면서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때로는 의견이 엇갈려서 목소리 높이며 논쟁을 하듯 하면서도 그들은 즐거웠다. 몸에 밴 기술, 몸에 밴 작업공정... 누군가 말했다. 머리로 외워서 익힌 게 아니라 몸으로 익힌 것이기 때문이라고. “걱정했는데, 복귀하면 당장이라도 일할 수 있겠어. 손이 굳지 않았네.” 그러면서 신기하다는 듯이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는 해고자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그들의 표정이 살아났다

H-20000 프로젝트는 올 초부터 구상을 했다. 자동차 부품이 대략 2만 개인데, 2만 명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프로젝트를 만들자고 생각했다. 대선이 끝나고 다시 쌍용차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드는 것만 같았다. 새누리당의 원내대표라는 자가 국정조사 약속을 이행하는 대신에 무급휴직자 복직으로 끝났다는 태도를 한겨울을 국정조사를 요구하며 송전탑에 올라가 있는 노동자들 앞에서 버젓이 보일 때였다. 대한문 분향소가 불타고, 다시 4월 5일 중구청과 경찰에 의해서 철거되는 일을 겪었다. 매일 대한문에서는 분향소를 되찾기 위한 투쟁이 전개되었지만 시민들의 호응은 예전만 못했다.

그때부터 시작한 일이 H-20000이었다. 올해 상반기는 이 프로젝트 하나 제대로 성사시켜서 쌍용차 문제를 다시 부상시키자는 것, 오로지 믿을 것은 시민들의 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누구는 자동차 바퀴를 사주고, 누구는 엔진에 들어갈 부품을 사주고, 누구는 차 문을 달아주고, 누구는 시트를 대주고 하는 식으로 퍼즐 조각을 맞추어간다면 여론의 흐름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세상일은 생각처럼 되지 않았고, 바람은 불지 않았다. 그런데도 우리는 중고차 시장을 뒤져서 차를 구입했고, 그들이 입을 작업복을 준비했다. 그리고 자동차정비공업사를 물색해서 작업에 들어갔다. 세상에 단 한 대 뿐인 자동차, 해고자들이 거리에서 싸우는 것만이 아니라 공장에서 자동차를 만들던 노동자라는 것, 그들이 돌아갈 곳은 공장이라는 점을 각인시킬 수 있는 일이 이것뿐이라고 생각을 다지고 다졌다.

마침 5월말로 국회의 6인 협의체 활동이 종료된다. 불을 보듯 뻔하게 국정조사는 물 건너가는 것, 여당이 국정조사는 필요 없다고 뻗대는 상황에서는 불가능할 것인데, 해고자들이 만든 자동차를 보여줌으로서 그 물꼬를 돌리고 싶었다. 마침 6월초가 되니 새로운 증거들이 드러났다. 이 나라에서 내노라하는 회계 법인이 회계 조작한 증거들이 나타났다. 감사조서에 회계사의 사인마저도 하지 못할 정도로 조작된 회계자료를 근거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대량해고하기 위해 기획이 세워졌음이 드러나고 있다.

이게 쌍용자동차만의 문제일까? 먹튀 자본이었던 상하이차에게 얼마나 많은 돈을 받았으면 상식에도 어긋나는 숫자마저 조작된 회계 자료를 갖고 기획 파산을 했을까? 억눌린 진실들이 이제 온몸을 비틀면서 세상에 그 모습의 일단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국정조사는 쌍용차 해고사태의 진실을 위해서 반드시 건너야 하는 강이다. 강을 다 건너면 얼마나 무모하리만치 저돌적으로 정리해고를 밀어붙였는가를 알게 될 것이다. 그렇게 쫓겨난 노동자들은 자괴감으로 자살의 길을 택했고, 어떤 가정에서는 가족 중에 누군가가 죽음의 길로 갔다. 그 깊은 죽음의 수렁 앞에 서 있는 쌍용차 해고자들의 문제를 푼다는 건, 이 나라에서 횡행하는 정리해고의 부당성을 입증하는 상징이 될 것이고, 그래서 다시는 쌍용차와 같은 정리해고를 없애는 일이 될 것이다. 만신창이가 된 노동권의 회복에, 그리고 경제민주화에, 우리 사회 전체 민주주의에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6월 7일, 서울광장을 찾아줄 사람?

나는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의 표정을 4년 전부터 보아왔다. 2009년 5월 파업에 돌입하여 공장을 점거하고 77일간 투쟁을 할 때 그들은 비장했고, 아마도 우는 것만 같았다. 자본의 힘 앞에 목줄을 잡힌 동료 노동자들이 그들을 공격해올 때 그들은 맞으면서 울었다고 했다. ‘산 자와 죽은 자’로 나누어 노동자들끼리 대결시키는 자본과 권력에 맞서서 “함께 살자!”고 외쳤던 그들만 공장에서 쫓겨났다.

그리고 지난해 4월초 스물두 번째 죽음이 있은 다음에 찾은 평택 공장 앞에서 그들을 보았다. 눈동자는 풀어지고, 망연자실한 그들의 얼굴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너무도 쉽게 보았다. 언제고 저들도 죽음의 길로 들어갈 수 있다는 절박함으로 만든 게 ‘함께 살자! 희망지킴이’였다. 쌍용차 해고자들은 대한문으로 올라왔고, 시민들이 그들을 찾아주었다. 사회적인 지지와 연대 분위기 속에서 그들의 표정은 조금은 죽음의 그림자를 벗기 시작했다.

4년 동안 보지 못했던 표정, 노동자들의 진지하고 즐겁고, 그리고 건강한 그 표정을 일순간 나는 보았다. 그들은 이 사회 대부분의 노동자들처럼 가족이 있고, 아이들이 있고, 저녁이면 돌아가 쉴 집이 있고, 전화로 불러내서는 술 한 잔 기울이는 동료가 있던 노동자들이다. 그들이 돌아갈 곳으로 돌아가게 하는 일, 그들의 뭉개진 자존감을 회복시키고, 그로부터 우리 사회 실종된 뭉개진 인권과 정의를 다시 세우는 일, 아무리 생각해도 이 프로젝트를 하기 잘했다.

쌍용차 해고자들이 만든 자동차에 화가들이 그림을 입혔다. 디자이너들의 손길까지 더해져서 너무도 예쁜 차가 탄생했다. 그 차가 오는 6월 7일, 서울광장에 온다. 대낮부터 책 바자회를 비롯한 장터가 열린다. 저녁에는 모터쇼를 겸한 문화제가 열린다. 작업복을 입은 그들이 자동차 모델로 서고, 선정위원회가 선정한 이에게 차를 기증한다. 물론 공짜다. 전국을 누비며 쌍용차 해고자들의 문제를 알릴 차는 그렇게 기증된다. 송전탑에 올라 171일을 버티었던 한상균, 복기성도 오겠지, 아이들의 손을 잡고 오겠지, 쌍용차 국정조사 약속을 지키라고 목청껏 외치면서도 즐거운 축제의 장이 서울광장에 그날 선다.

그날 광장을 채워줄 사람이 필요하다. 시민들의 성금과 노동자들의 연대의 정신으로 만들어진,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아름다운 자동차와 함께 환하게 웃는 해고자들의 얼굴을 보러 오시라. 나는 그날 서울광장에서 해고자들과 함께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지금껏 보지 못했던 쌍용차 해고자들의 표정을 보러 오시라. 가족들과 함께, 친구들과 함께 놀러 오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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