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이지 않는 ‘도가니’

[칼럼] 성폭력에 쉽게 노출되는 지적장애여성...대책마련 시급

공지영 작가의 ‘도가니’라는 책이 나왔을 때 책을 읽다가 성폭력 내용을 보는 것이 힘들어서 책을 덮고, 다시 읽고를 반복했던 기억이 있다. 그 후 ‘도가니’라는 영화가 나왔을 때도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를 보고 나서도 한참 동안 가슴이 먹먹해져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했다.

도가니를 통해 장애여성 성폭력은 엄청난 사건으로 우리에게 다가왔고, 일명 ‘도가니법’이 만들어지게 됐다. 이 법은 장애인성폭력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장애인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이끌어내는 밑거름이 됐다.

그러나 2011년에 시작된 도가니 열풍이 식기도 전에 우리지역에서도 장애여성 성폭력 문제가 드러났다. 2012년 7월, 6개의 시설을 운영하는 자림복지재단에서 근무하는 몇 직원이 시설 내 성폭력 사실을 알린 것이다.

성폭력에 쉽게 노출되는 지적장애여성

2010년 여성가족부에서 실시한 성폭력 실태조사 결과 장애여성 피해율은 비장애인 성인여성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장애유형 내에서도 정신적 장애여성 피해는 다른 유형의 장애여성에 비해 많았다.

장애여성의 강간 피해는 0.7%, 강간미수 피해는 0.7%로 각각 성인여성 0.2%, 0.4%보다 높았다. 정신적 장애여성의 강간 피해율은 1.0%로 외부신체기능 장애여성 강간 피해율 0.6%보다 높고, 강간미수와 심한 성추행은 정신적 장애 여성에게만 발견됐다. 성희롱 피해율도 5.2%로 외부신체기능 장애 성희롱 피해율 3.3%보다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오랫동안 아는 사람에 의해 지속되는 성폭력

지적장애여성을 대상으로 성폭력이 발생하면 몇 가지 특징이 드러난다. 먼저 성폭력 피해가 매우 오랫동안 발생한다. 2010년 장애인성폭력실태조사 결과처럼 대부분이 강간 피해로 임신이나 출산을 하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1999년 강릉에서는 지적장애를 가진 초등학생이 동네 어른들로부터 오랫동안 성폭력을 당했지만 수년이 지나 임신이 돼서야 주변에서 알게 된 경우도 있다.

자림복지재단에서 있었던 성폭력도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20년 전에 발생했다. 더구나 시설이라는 폐쇄적 공간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신고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가해자들이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성폭행했다.

두 번째는 대부분 아는 사람에 의해 발생한다. 특히 지적장애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은 가족·동료·이웃·시설의 직원 및 자원활동가 등 피해자와 평소 잘 알고 있거나 보호관계에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는 피해자가 피해를 주변사람에게 이야기하더라도 알려질 가능성이 매우 낮다. ‘설마 그런 일이…’라는 인식과 비장애인인 가해자의 말에 더 신뢰를 가지기 때문이다.

2008년 청주에서는 8살 때부터 할아버지를 비롯해 큰아버지, 작은 아버지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지적장애여성에 대한 판결에서 이들의 행위가 매우 심각함에도 지적장애를 가진 손녀(조카)를 돌볼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매우 낮은 처벌(집행유예)을 받은 적도 있다. 이처럼 보호자로 인식되는 사람들에 의한 성폭력은 피해자를 보호했던 점이나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로 처벌 또한 미약해서 문제가 되기도 한다.

피해 은폐되는 경우 허다...진술신빙성을 이유로 거짓말로 몰기도

피해가 은폐되기도 쉽다. ‘도가니’처럼 시설 안에서 발생하면 피해자 이야기를 제 3자가 신중하게 듣고 고발하지 않고서야 묵인 혹은 은폐될 확률이 높다. 자림복지재단도 시설 원장과 법인 대표이사가 피해자들의 성폭력을 인지했음에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은폐했다. 또 가해자가 대부분 시설 대표자일 가능성이 높다. 시설의 직원들이 성폭력 피해를 알았더라도 직장상사를 고발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성폭력이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기도 한다.

네 번째는 지적장애여성에게 애정을 위장하여 접근하는 경우다. 친밀한 관계나 보호자라는 점을 강조하고, 사랑한다는 표현을 하거나 예뻐서 만지는 거라고 하거나 혹은 재미있는 놀이 등으로 유인한다. 이런 이유로 접근하기 때문에 친밀감과 성폭력에 대한 구분이 모호한 지적장애여성은 매우 심각한 성폭력에 노출되지만 주변에 이 문제에 대한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다. 또 지적장애여성이 성행위에 동의하지 않거나 거부하면 심각한 폭력이나 협박이 동반돼 폭력에 대한 심각한 후유증으로 드러난다. 자림복지재단의 많은 피해자도 성폭력과 함께 심각한 신체적 폭력을 경험해 후유증이 수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지적장애여성 피해자들은 피해 발생 연도, 피해 당시 나이 등 숫자를 기억하는 데 어려운 점이 있어 진술능력 문제나 진술 신빙성 등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가해자 측은 이런 점을 이용해 지적장애여성의 진술이 거짓이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자림복지재단 가해자들이 성폭력 피해자들의 진술이 ‘있을 수 없는 거짓말’이라거나 ‘누군가가 시켜서’ 또는 ‘이미 공소시효가 지난 옛 일이니 문제될게 없다’는 식이다.

그러나 자림복지재단 성폭력처럼 장기간에 걸쳐 반복적인 피해로 입은 피해자들은 피해 장소와 피해 내용을 혼란스러워하기도 한다. 비장애인들도 반복적으로 장기간 피해를 당하면 피해 연도와 일시를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지적장애여성 피해자가 기억을 정확히 못하는 것은 지극한 당연한 일이다. 중요한 것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고 피해사실 자체가 거짓은 아니라는 점이다.

지적장애여성이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한 사회가 되기 위해

지적장애여성들이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장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개선이 필요하다. 장애인이 문란하다거나, 피해자가 유발시켰다거나, 즐겼으면서도 주변에서 부추겨서 성폭력으로 고소하는 것이라는 등의 왜곡된 인식에 변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장애여성의 안전한 삶을 위한 사회적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최근 지역 내 장애인 시설들의 각종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자림복지재단은 시설내 성폭력, 절차를 무시한 이전보상금, 노인시설 설치 문제. 전북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거주인에 대한 부당노동, 생활인 간 성폭력, 공금 횡령 등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매년 지역에서 발생되고 있는 장애인 복지시설에서의 성폭력과 장애인인권침해 문제에 대해 전라북도는 보다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민·관이 함께 하는 자리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그리고 장애인복지시설은 사회복지사업법의 영향을 받는 기관이다. 사회복지현장에서 매번 발생하고 있는 이런 문제에 대해 사회복지현장의 자성과 대책마련이 필요하다. 창피하니까 덮는다거나 클라이언트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그냥 지나가기를 기대하기 보다는 적극적으로 문제에 개입하고, 해결방안을 마련하려는 실천적 노력이 있을 때 장애인복지시설 문제가 예방되고 근절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출처=참소리)
덧붙이는 말

황지영 씨는 성폭력예방치료센터 부설 성폭력상담소장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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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 장애인 , 도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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