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로 올라간 누이

[기고] 각별한 인연의 재능교육지부를 지켜보며

나에겐 하늘로 올라간 누이가 있다. 연극공연장이 많은 곳으로 유명한 대학로 끝자락, 서울시 종로구 혜화1동 창경궁로 288번지. 혜화동 성당이 있다. 그 성당 30미터 종탑꼭대기에 누이가 살고 있다. 그녀의 이름은 오수영이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2008년 12월부터 민주노동조합총연맹 민간서비스노동조합연맹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재능교육지부 조합원들은 회사로부터 부당하게 해고되어 길거리에서 노숙을 하며 싸우고 있다. 그녀도 그 조합원들 중의 한명이다.

그녀는 그 긴 이름의 노동조합 이름보다 학습지 선생님이라 불리길 바라며 회사의 부당함에 저항하고 싸우고 있다. 세월이 이제 만 5년이 넘어 6월 11일이면 2,000일이 된다. 그야말로 말이 5년이고 2,000일이지 너무나도 길고 험난한 시간이다.

지난 2월 6일. 2,000일이 다가오는 시간의 압박감 때문인지 재능교육 본사 건물을 마주보고 있는 건너편 혜화동 성당 꼭대기에 여민희, 오수영 두 사람이 올라갔다. 그날은 온 나라에 불어 닥친 수십년 만의 한파로 하루 종일 직장인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얼어터진 수도배관들을 고치고 있던 날이었다.

정신없이 일하는 도중에 몇 군데에서 문자메시지가 들어왔다. 지금 기억으로는 ‘긴급. 학습지노조 조합원 여민희, 오수영 혜화동 종탑 농성 돌입. 저녁 7시 집회 연대 요청.’... 처음에는 “이게 뭐지?” 하는 마음이었는데 점차 시간이 지나고 날아오는 문자를 보면서 마음이 다급해졌다. “이거 뭐가 잘못되는 거 아닌가? 이 추위에 미쳤구나.” 그날따라 직장일은 더디 끝나고 마음만 바빠졌다.

퇴근을 서둘러 혜화동으로 갔다. 그야말로 귀때기가 떨어져 나가는 날씨다. 해가 저문 저녁 시간에 불어대는 한겨울 바람은 지상에 있는 나도 못 견딜 정도로 매서운 추위다. 하물며 30미터 종탑 꼭대기위에 있는 두 명에게는 그야말로 살인적인 추위일 거라 생각하니 너무나도 마음이 아팠다.

오전부터 현장에서 이를 지켜봤던 서부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는 긴급 운영위원회를 소집했다. 논의 끝에 우선 급한 대로 종탑 농성장들에 대한 식사를 맡기로 했다. 종탑 꼭대기에는 난간이나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어 자칫 불상사가 있을 상황이다. 상임활동가가 부담을 안더라도 나를 포함한 운영위원들은 향후 어떤 식으로든 이를 지원하고 책임을 지자고 결의했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종탑 꼭대기에 올라간 두 명 중 오수영은 그 가족들과 동네에서 자주 보면서 친하게 지내는 사이다. 평소에는 나를 “이상선 동지~”라고 하며 운동에 대한 뼈있는 얘기로 훈수를 둔다. 그러다가 뭐 필요하거나 부려먹을게 있으면 “상선이 형~”이라고 부르며 나름 귀여운 애교를 떠는 누이다. 그 남편 또한 나를 동네 형이라 부르며 텃밭에서 소주도 나누고 초등학교 2학년 아들과는 서로 놀리면서 장난을 즐기는 사이이다.

마흔 중반이 넘도록 장가를 못간(?) 동네 오라버니가 안쓰러운지 생일이면 생일이라고 챙겨주고 농성장에 먹을 거라도 있으면 꼭 나를 챙겨서 직접 손에 쥐어주며 “형, 이거 가져다 어머니 드려”라고 하던 누이다. 지네 집은 회사가 손배 가압류하여 딱지가 붙어 있었는데도....

2011년으로 기억한다. 갑자기 아파서 누워 있다고 연락을 받아 강북 삼성병원에 병문안 갔다. 거의 사람을 못 알아보고 누워 있는걸 보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 뭐라도 해주고 싶어 주변의 몇 사람이 병원비 모금을 했다. 나또한 건강이 안 좋아져 노동조합 활동을 그만두고 쉬고 있었던 시절이라 병원비를 모금하는데 조금을 보탰다. 다들 넉넉지 않은 사람들이 자기 때문에 마음을 써주었다고 너무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며 눈물짓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재능교육지부 투쟁은 2008년 12월 한겨울부터 시작한 투쟁이다. 본사가 있는 혜화동 언덕길은 그동안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거리농성을 위해 쳐놓은 천막이 구사대와 용역깡패들에 의해 수십 번 깨지고 박살났다. 한때는 아예 접근을 못하게 쇠꼬챙이를 울타리에 밖아 담장을 치기도 했다. 바로 앞의 고가도로가 헐리고 왕복 4차선의 중앙차선 도로가 생기고 그간의 세월동안 주변의 환경도 많이 바뀌었다.

합법적인 집회를 못하도록 돈으로 용역을 사서 경찰서에서 24시간 대기시키고, 경찰은 불법집회라 하여 사람들을 연행했다. 그 와중에 여민희는 구치소에서 실형을 살기도 했다.

재능교육 박성훈 회장은 강남 타워팰리스에 살면서 자신을 포함한 가족들은 몆백억 돈으로 떵떵거리고 살고 있다. 그 돈으로 사람을 사서 조합원들을 괴롭히고 협박하면서 수십 건에 이르는 고소, 고발, 거액의 손배 가압류로 피를 말리고 있다.

누이가 땅에서는 도저히 안되겠다 싶었는지 하늘로 올라 간지가 120일이 넘었다. 세상 온천지가 얼어붙었던 혹한의 겨울을 훌쩍 지나 이제는 여름이다. 한 낮의 태양은 모든 것을 바짝 마르게 하는 계절이다.

처음 거리 농성을 시작했을 때 30대 초중반의 나이가 무색하도록 앳돼 보였던 모습이 이제는 40을 넘긴 불혹의 나이가 얼굴에 묻어난다. 가끔 페이스북에 올리는 글을 보면 삶에 지쳐가는 모습이 보인다. 서비센터 상임활동가는 땀띠로 고생할까 봐 여름용 옷을 장만했다고 사진과 글을 올렸다. 그러나 계절의 변화만큼 상황은 그다지 변하지 않고 있다.

종탑 농성 이후부터 일주일에 2~3일은 혜화동 가는 버스를 탄다. 요즘에는 종탑을 올려다보면 그 추웠던 계절보다 더욱 마음이 춥다. 노동조합 내부가 둘로 갈라져서 각각의 목소리로 회사측과 싸우고 있다. 이를 연대하고 함께 했던 사람들도 둘로 갈라져서 서로가 상처를 내면서 회사측과 싸우고 있다. 모두가 함께해도 힘들었는데 둘로 갈라져 싸우다 보니 그야말로 적전분열이다.

소위 운동하는 혹자들은 시청파니 종탑파니 하면서 패를 나누고 있다. 그럼 난 무슨 파인가? 그동안 애써 이를 거부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고민하고 행동하는 것은 종탑 쪽에 가깝다. 주변에서 재능교육지부 노동조합 내부 문제를 두고 걱정들이 많다. 나 또한 여러모로 걱정이 되어 그저 지켜보는 것이 내부 갈등을 치유하는 거라 생각했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난 비정규 노동조합 활동을 10여 년을 함께 해왔던 재능교육지부와의 인연은 각별하다고 생각한다. 2011년 1월초에 조합원 전체가 집단으로 해고되어 투쟁했던 홍익대 투쟁할 때 전 위원장인 고 정종태 열사상을 받은 적이 있다. 그 자리에 6살배기 조카딸을 데려가며 잘 알아듣지는 못하더라도 재능교육지부 투쟁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이런 나를 무어라고 불러도 좋다. 현재 나의 간절한 마음을 표현하며 글을 마무리 한다.

난 하늘로 올라간 내 사랑하는 누이가 지금이라도 땅으로 내려왔으면 좋겠다. 그저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는 그녀가 밝고 건강한 모습으로 “상선이 형~”이라고 소리치며 나를 막 부려먹던 예전의 모습을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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