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양봉수

[인터뷰] 서영호양봉수열사정신계승사업회 초대 사무장 심재근

영원히 이 세상을 떠나 버린 사람을 가슴에 묻고 산다는 것, 그것은 어떤 삶일까. 그를 인터뷰하는 동안, 그리고 이후 그의 말을 나 홀로 되새기는 날들 동안 나는 얼핏 본 듯도 하다. 죽음을 가슴에 묻고 산다는 건 무엇인지, 죽어도 살아서 함께 한다는 건 또 무엇인지도.

재근 씨는 오랜 세월동안 집회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아니다. 내가 그를 자주 본 곳이 집회장이었을 뿐, 그가 떠나지 못한 곳이 어디 집회장뿐이었을까. 휴일 한낮의 철탑 마당. 열사 추모제. 그리고 공장 구석구석. 자동차 정문 앞 술집에서 잘 안 마시는 술을 잔에 채우고 느리게 비우던 긴 술자리. 그리고 그 날, 양봉수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찾아온 그의 복산동 자취방. 그와 함께 지상에서 마지막 밥을 나눈, 이름도 선명한 '함양 식당'. 그리고, 그리고...

[출처: 서영호 양봉수 열사정신 계승사업회]

저 컨베이어 라인에 지금 양봉수가 함께 있다면

"살아 있었더라면 지금도 편안하게, 사는 문제나 여러 가지 이야길 함께 나눌 수 있는 절친했던 친구죠.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의장 2부에 있는데, 그 친구도 같이 의장 2부에서 같이 컨베이어 타고 일하고 있다면... 그 친구가 살아 있었다면..."

양봉수를 추억하는 재근 씨의 마음이 간절하다. 모든 것이 그대로인데, 그날, 양 열사가 컨베이어 라인을 정지하기 위해 누른 버튼조차도 공장 안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없다, 양봉수만 없다. 그 날, 양봉수가 세운 컨베이어도 그대로 그 자리에서 흘러가고 있고, 공장안 시간도 그대로 흘러가고 있다. 징그럽게 피어나던 공장 담벼락 붉은 줄장미도 칭칭 공장 담을 감고 악착같이 살아남았는데, 그날의 또 다른 얼굴들도 살아 있는데 그가 없다. 양봉수만 없다.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와 같은 사람을 다시 만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1990년, 두 달의 간격을 두고 나란히 현대 자동차에 입사한 재근 씨와 양봉수는 5년을 넘는 세월을 함께 공장에서 지냈다. 양봉수는 입사 초기 수습 시절에 연차별 시급에 대한 부당한 문제를 제기하면서 현장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재근 씨가 기억하는 양 열사는 말로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하는 달변가는 아니었다. 오히려 말을 어눌하게 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부당함을 느낀 마음을 어떻게든 표현하기 위해 무척 애를 쓴 듯 하다. 이리저리 다니며 자료를 모으고 그 자료 하나하나를 보여주며 주위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말보다는 행동으로 이야기하고 보여주던 그런 사람이었다.

"참 착하다는 느낌이 드는 사람이었어요. 그 친구가 참 의리가 있었습니다. 해고자 부인들이 남편 면화갈 때 손수 운전해서 먼거리 교도소까지 함께 다니고 마음이 따뜻했던 친구였어요. 자기보다 자기 어려운 사람들 많이 생각하고 챙기던 그런 사람이었죠."

양봉수 열사가 떠난 지 이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재근 씨의 맘속에는 양봉수는 그저 여전히 살아있는 친구 같다. 양봉수의 고향인 무안 집에서 그의 어머니가 손수 해주던 음식에 배인 전라도의 깊은 양념 맛이며, 고향 친구들과 함께 다녔던 광주 번화가 거리의 불빛들. 그리고 집안일을 해결 하러 함께 오가던 서울 길.

재근 씨가 선뜻 먼저 양봉수를 자신의 삶속으로 불러들이지 못했던데 반해 양봉수는 재근 씨를 먼저 자신의 삶속으로 불러와 이런저런 시간과 공간속의 인연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이었다.

양봉수, 그는 외롭고 고단했던 사람

이미 떠난 사람에게 무슨 여한이 더 있을까마는, 그래도 나는 재근 씨에게 양봉수와 함께 한 시간 중에 기억에 남는 일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 가슴에 남는 일이 얼마나 차고 넘치겠냐마는 재근 씨는 그 중에서 양봉수와 학습모임을 함께 하지 못한 것이 안타깝고 후회가 많이 남는다고 했다

입사 동기들 중에 시급 투쟁을 함께 했던 적극적인 친구들이 양봉수와 함께 학습 모임을 만들려고 하다가 양봉수가 학습 모임에서 빠진 일이 있었는데 그 일 이후로 관계가 소원해진 게 가슴에 오래 남는다고 한다. 같은 조직이 아니더라도, 같은 사상과 생각을 공유하며 학습을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양봉수, 그 한 사람만을 특별하고 소중하게 들여다보지 못했던 그 시절의 정서가 재근 씨는 못내 안타깝다. 스스로도 집단의 정서에 갇혀서, 이토록 오랜 세월 그리워할 친구 봉수를 외롭게 버려둔 게 아닐까. 학습모임을 함께 하지 못했다는 후회보다, 홀로 외로웠을 양봉수를 좀 더 가까이에서 들여다 보고 보듬지 못한 안타까움이 재근 씨의 마음을 더 절절히 채우는 것 같다.

"해고되고 혼자 천막농성 할 때인데, 외로웠죠. 소속된 조직도 없고, 현장 분위기도 안 좋았고. 그런 텐트 잘 안치는데 5인용 야외 텐트, 그거 치고... 많이 외로웠죠. 얘기할 사람도 없고..."

분신하기 하루 전날 양봉수와 함께 나눈 식사는 재근 씨가 지상에서 마지막 함께 나눈 밥이었다. 야간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침에 양봉수가 재근 씨의 복산동 자취방으로 찾아 왔다.

"자기 속마음을 다 드러내진 않았는데, 이런저런 이야길 하면서 그런 이야길 하더라고요. 계속 외롭게 싸웠는데 회사가 나를 계속 이렇게 하면 몸에 불을 붙일 거라고. 그래서 내가 그러지 마라 그런 맘 먹지 마라 했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고독한 투쟁, 수많은 동지들이 있지만 함께 하지 못했고, 그때는 이영복이가 회사하고 노사가 합작으로 탄압을 하니, 주변 활동가가 있다고 해도 힘들 때 함께 할 수 있는 동지가 없다는데 실망도 많이 했던 것 같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고.

그때 탄압이 어느 정도였냐면, 스물네 시간 양봉수를 감시하는데, 회사에서 봉수 얼굴을 아니까 출근하면 막아버리고, 그래서 오토바이 타고 화이바 쓰고 들어오면 양봉수가 현장에 들어왔다고 경비들이 또 달려오니까. 잠 잘 때도 침실에만 안 들어갔지 숙소 밖에서 서 있고, 양봉수가 씻고 나오면 따라오고, 그러니 스트레스가 엄청나죠. 그런데도 자기는 소속된 조직이 없다 보니 이야기할 데도 없고, 악랄한 회사의 태도에 분노하고, 함께 돌파하지 못하는 활동가들에 대한 실망이 분신을 결심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민주 노조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 양봉수. 그러나...

양봉수가 재근 씨의 집을 다녀간 다음 날, 그러니까, 분신 당일이었다. 재근 씨는 야간 일을 마치고 나와 축구를 하고 막걸리를 한잔 들이켰다. 그 사이에 재근 씨의 집에는 여러 번 양봉수로부터 걸려온 전화벨이 울렸다. 재근 씨가 자취방으로 들어가니 다시 전화벨이 막 울리고 있었다. 양봉수였다. 양봉수는 재근 씨에게 오늘 집회에 꼭 와달라는 말을 했다. 집회에 와달라는 말. 정말 그 말만 하고 싶어 양봉수는 그에게 전화를 건 걸까.

집회장에 꼭 와달라던 양봉수의 마지막 말을 재근 씨는 지키지 못했다. 야간작업 후 축구를 하고 막걸리까지 마신 재근 씨는 깊은 잠에 빠져 버렸다. 그가 일어난 건 다시 전화벨이 울릴 때였다. 아침에 양봉수가 건 전화벨이 울린 전화기가 다시 그를 깨웠다. 집회시간이 넘어선 오후 네시 사십오분이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침에 걸려온 양봉수의 목소리가 겹쳐지면서 불길한 예감이 더 강하게 들었다.

"양봉수 분신했으니 바로 오라는 전화였어요, 텔레비전 다섯시 뉴스를 보니 그 뉴스가 나오더라고. 현장에 오니 동지들 모여 집회하고 있고 멍하더라고요. 양봉수 분신한 자리는 그을려져 있고... 그때 조합원들이 난리가 났어요. 우리가 지금 컨베이어 돌려도 되냐고, 지금 대의원들 뭐하냐고. 2공장 조합원들 열받아 끓어오르고... 양봉수가 이렇게 된 데는 적극적으로 노동자들 편에 서지 않고 심지어 회사편에 서기까지 한 대의원들도 있었으니..."

당시 대의원이었던 양봉수는 노동자들 편에 서서 열심히 일하는 활동가로 조합원들의 신임을 얻고 있었다. 초선 대의원임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일하는 그를 현장 노동자들은 눈여겨보고 있었던 것이다.

새벽 네시 야참 시간부터 이어진 집회는 여섯시까지 이어졌고 이미 소식을 접하고 아침에 출근하는 조합원들이 이 광경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파업으로 이어졌다. 양봉수가 일했던 2공장에서 시작된 파업은 1공장, 3공장, 4공장으로 번져 갔다. 총파업이었다.

1995년 5월을 지나 2010년 6월 오늘, 그 설레임 첫 마음 그 당찬 첫 걸음
2010년. 공장 담장을 빙 둘러 노동자의 피를 빨아 먹는
징그럽디 징그런 붉은 장미는
1995년에도 봄과 여름 사이의 장미와 다르지 않다
1995년. 봄과 여름 사이 달콤쌉싸리한 뽀얀 속살 아카시아 꽃 맛은
2010년에도 다르지 않고 코끝을 간지럽히고 있다.
그러나, 어용과 민주가 명확하고 선언과 행동이 같던
1995년. 15년 지나 지금
2010년. 선언과 행동은 사리지고 말장난과 찌라시 뿐 어용과 민주는 다르지 않다
열사는 사라지고 실천도 투쟁도 사라졌다
..........

- 강성신, 2010 열사 추모제 추모 결의시 중에서


[출처: 서영호 양봉수 열사정신 계승사업회]

양봉수의 죽음은 민주노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조합원들 스스로 깨닫는 계기가 된 중요한 사건이었다. 민주노조가 사라진 자리. 자본가와 그의 대리인인 어용노조가 차지한 노동조합이 노동자를 어떻게 고통에 빠뜨리고 죽음으로 몰고 가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준 사람이 양봉수였다.

그는 열사이기 이전에 외롭고 고단했던 사람, 그래서 재근 씨에게는 더더욱 가슴에 단단하게 배인 화석같은 사람이다.

양봉수의 죽음이 민주 노조가 각인되는 강렬한 계기가 되었다고는 하나 1998년은 또 한번 현장 노동자들을 뒤흔든 해였다.

"내 옆의 동료가 잘려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노동조합도 우리를 지켜 주지 못하는 구나, 나 스스로 판단하고 나 스스로 살아남아야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나도 1998년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현장 노동자들의 의지보다 앞서 노동조합이 먼저 정리해고를 수용했던 그때. 그 시절의 노동조합의 결정은 현장 노동자들의 의지보다 훨씬 뒤처져 있었다. 함께 살고자 했던 대다수 노동자들의 뜻에 반해 갑자기 정리해고를 수용해 버린 그 당시 집행부의 결정은 여전히 내게 의문이다. 이 문제를 풀지 않고 어떻게 현대 자동차의 노동운동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1998년은, 양봉수의 죽음. 그 죽음이 이룬 탑을 다 무너뜨린 한해였다.

나이도 들었고, 책임져야 할 것도 늘어났지만

재근 씨는 열사 추모 사업회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처음엔 양봉수와의 깊은 우정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그의 죽음 이후 단 몇 초라도 양봉수를 잊을 수 없었다던 사람. 그 절절한 그리움이 그를 늘 열사 추모 사업회에 머물게 했지만 친구의 죽음은 그를 좀 더 넓고 단단한 땅에 서게 한 것 같다. 그가 몸담고 있는 열사 추모 사업회 홈페이지 대문에 이런 글이 쓰여 있었다. 장승 같은 이 글로 재근 씨의 마음을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18년 전 5월 12일은 양봉수 열사가 분신하신 날입니다.
열사의 뜻을 이은 현장 노동자들의 자발적 투쟁으로
우리는 그때 어용노조를 갈아엎고 민주 노조를 지켜 냈습니다.
나이도 들었고, 책임져야 할 것도 많아졌습니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생각보다는, 자신의 이해와 실리만을 지키겠다는 생각에
타협하고, 묵인하고, 방관하며, 침묵했습니다.
지금 우리 앞에 10년 넘게 이어온 비정규직 투쟁이 서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두 노동자가 이백일 넘게 목숨을 걸고 매달려 있습니다
현장 노동자들은 투쟁으로 쟁취해온 권리를 넘겨줄 수 없다며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투쟁들, 목소리를 끝내 외면한다면 어찌 민주노조일수 있겠습니까?
현재 열사 정신계승은 비정규직 투쟁에 함께하는 것입니다!


양봉수 열사 약력

△1967년 4월 전남 무안 출생
△1986년 2월 목포 덕인고등학교 졸업
△1990년 10월 현대 자동차 입사 (의장 2부)
△1991년 소위원 활동
△1992년 2월 성과분배투쟁 관련으로 해고
△1993년 1월 원직 복직
△1994년 의장2부 소위원회 부의장, 대의원 당선
△1995년 2월 의장2부 마르샤 투입 관련 회사측의 합의사항 불이행에 맞서 라인정지건으로 두번째 해고
△1995년 5월 12일 공동소위원연합 2기 출범식 참석을 위해 정문 진입시 경비들의 폭력적인 저지에 항거하며 본관정문 앞에서 분신
△1995년 6월 13일 대구 동산병원에서 31일간 사투끝에 운명. 양산 솥발산 공원 묘역에 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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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 정리해고 , 열사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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