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잇고 강정을 보듬는 한 땀

[기고] 이어붙이는 뜨개행동단

대한문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

2013년 3월 대한문에 자리 잡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24명의 죽음을 위로하고 추모하던 분향소가 있던 자리에 화재가 발생하였고 화재로 소실된 천막이 있던 자리, 그 자리에 다시 천막이 쳐지는 것을 막기 위해 구청직원들과 경찰들은 정체성 없는 화분으로 공간을 메워버렸다. 정체성 없는 화분을 보다가 문득 이 공간을 우리들의 추모의 꽃동산, 우리들의 정원으로 만들어 보고 싶어졌다. 몇 몇의 활동가들이 모여 농성정원 프로젝트를 실행하기 위한 기획을 하였고 그 결과 테이블도 만들고, 화단도 만들고, 텃밭도 만들고, 뜨개물로 분향소를 꾸미기도 했다. 분향소가 많은 이들의 공간으로 소통하길 원하는 마음이었다. 조금씩 바뀌어 가는 대한문 분향소는 SNS를 통해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고 매주 일요일마다 대한문에 모이는 이들이 생겼다. 뜨개질과 수다 그리고 다과의 시간은 쌍용차해고노동자들의 이야기와 연대의 마음을 나누기에 더 없이 좋은 공간으로, 소통의 장으로 자리잡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구청과 경찰은 이 공간의 모든 것들을 단 몇 시간 만에 쓰레기차에 싣고 사라졌으며 이에 저항하는 사람들까지 모조리 쓸어버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 대형 화단을 설치하고는 24시간 경찰이 지키는 어처구니없는 행태를 보였다. 다시 한 주, 두 주 후 다시 뜨개질로 모인 이들이 대한문에 돗자리를 깔았다. 억울함이 연대의 마음들을 만들었고 한 땀 한 땀 코바늘에 코를 꿰어 나가게 한 것이다. 뜨개질 모임은 뜨개물로 제작한 현수막도 걸고 흉물스러운 화단주변의 나무들을 감싸기도 했다. 그러던 중 몇몇의 활동가들이 제주 강정마을에 다녀왔고 이들의 제안으로 <강정의 코> 이어붙이는 뜨개모임이 만들어졌다.





<강정의 코> 이어붙이는 뜨개모임

대한문에서 쌍용차해고노동자를 연대하는 마음을 담아 매주 일요일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모임을 갖고 강정에 보낼 뜨개물을 만들어 갔다. 오가는 사람들의 관심은 늘 질문을 동반한다. “뭐하는 거예요?” “왜 여기에서 뜨개질을 해요?” 라는 질문에 우린 답하기로 했다. 작은 게시판을 만들었고 모임이 있는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대한문 한 귀퉁이에서 뜨개농성을 이어 나갔다. 길을 가다 멈춰 서서 바라보는 사람도 있고, 함께 배워도 되느냐며 아예 주저앉아 함께하는 이들도 있고, 집에서 떠왔다며 작은 뜨개물을 부끄럽게 전달하고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매주 진행하는 뜨개농성은 개인들의 SNS를 통해 조금씩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6개월간 대한문의 뜨개농성은 정리되고 있었다.

서울 마포, 과천, 덕소, 완주, 서산, 제주 등 전국에 자발적인 소모임들이 만들어 지고 이들은 서로서로 자신들의 모습과 만들어지는 뜨개물을 공유하며 격려와 지지를 이어나갔다. 어떤 이들은 모양 뜨기 방법을 물어오기도 하고 그 물음에 답을 하는 이미지를 공유하기도 했다. 또 어떤 모임은 뜨개물 기계를 제작하여 공유하고 워크숍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대한문을 시작으로 뜨개모임은 점점 늘어갔고 개인참가자들의 수도 늘어가기 시작했다.

제주도 강정마을에 편지와 뜨개물 보내기 시작

대한문에 모인 뜨개농성 활동가들은 제주도에 설치할 날짜를 12월 9일부터 15일까지 일주일로 정하고, 강정으로 뜨개물을 보내달라는 웹자보도 만들어서 각자의 SNS로 홍보하기 시작했다. 날짜는 다가오고 날은 추워지고 관심은 많았지만 과연 얼마나 뜨개물이 모일지 걱정이 많았다. 뜨개모임은 뜨개농성으로 불리기도 하고, 강정의 코들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강정의 코들은 제주 강정마을에 편지를 보냈다. 뜬금없이 찾아가 민폐를 끼치고 싶지는 않았고 사전에 강정마을 분들과 충분한 소통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왜 강정의 코가 되어 제주도에 가는지 충분하지는 않겠지만 마음을 담아 보냈다. 그리고 다시 1달여 시간이 지나고 제주도에 뜨개물이 도착하기 시작했다고 연락이 왔다.

전국의 마음이 강정에 모이던 날

강정의 코들이 제주에 도착한 날 모두는 밤 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작업시간은 일주일, 작업내용은 해군기지 건설 공사장 입구와 사제단이 매일 미사를 드리는 사제단 천막, 그리고 평화센터 등 마을 곳곳에 뜨개물로 이어 붙이는 작업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보다는 전국에서 보내준 뜨개물을 살펴보는 재미에 잠을 이룰 수 없었던 거다. 박스를 열 때마다 터져 나오는 환호성과 그 안에 담긴 짧은 편지글들은 감탄을 멈추지 못하게 했다. “함께하지는 못하지만 정성을 다해 짜봤어요. 제주해군기지 반대! 강정의 코들 파이팅!”





<강정의 코> 이어붙이는 뜨개행동

강정에 도착한 첫 날은 해군기지 공사장 주변과 마을을 돌아다녔다. 어느 곳에 어떤 형식으로 설치할지에 대한 논의를 하기 위해서다. 매일매일을 기록하기 위한 기록 담당을 정하고 다음날 어느 공간에 어떤 뜨개물을 어떤 형태로 설치 할 것인지 등을 이야기하며 각각 역할을 나누기로 했다. 일주일간 <강정의 코>가 되어 함께한 사람들은 30여 명이 넘는다. 서로들 잘 모르지만 마음은 하나였다. 강정에 뜨개로 연대한다는 것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공사장 입구로 나가면 경찰들이 사제단 신부님과 수녀님들이 미사를 드리는 중간중간 공사차량 진출입을 방해한다며 사람이 앉아 있는 의자를 통째로 들어 도로 한 귀퉁이에 옮기고는 경찰 20~30여 명이 빙 둘러 싸고 고립을 시킨다. 다시 차량 통행이 없으면 풀어주고 또 차량이 지나가면 다시 고립. 이러기를 몇 번 반복하다보면 아침 미사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린다. <강정의 코>들은 첫 날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너무도 익숙하게 반응하시는 신부님과 수녀님들의 모습에 “아... 일상이 되어버렸구나” 안타까운 마음에 되려 숙연해지기도 했다. 미사천막 여기저기, 공사장 입구 이곳저곳, 마을 구석구석 이어붙이는 뜨개행동단의 손길은 바쁘다.

올 겨울 들어 가장 춥다는 시기에 와서 고생한다며 위로하시는 마을 어르신의 목소리가 정겹다. 호호 손을 불어가며 한 땀 한 땀 이어 나가는 모습이 처음에는 어색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어르신들의 마음에 따뜻함이 느껴지셨나 보다. 제주도는 역시 바람이 강했다. 높은 나무에 뜨개물을 붙이기 위해 사다리를 올라타고 있으면 바람에 휘청휘청 몸을 가누기가 몹시도 힘이 들었다. 어느 날인가는 우박에 비바람으로 온 몸이 흠뻑 젖은 날도 있었다. 매일 저녁 마을 중앙 사거리에 있는 평화센터에서는 강정마을을 찾아오신 분들과 강정 시킴이들, 마을 주민들과 함께 다음날 설치할 뜨개물을 함께 만들기도 하고 뜨개방법을 가르치기도 하는 워크숍을 했다. 밤늦게 숙소에 들어가면 대충 씻고 다음날을 기약하며 잠이 든다. 다시 아침이 온다. 부스스 일어나 양치만 하고 눈꼽을 떼어내며 공사장으로 간다. 이상하게도 전 날 설치한 설치물에 부족함이 느껴지고 조금씩 더 손보게 된다. 처음에 한 그루 감싸기로 했는데 다시 10그루 20그루의 나무를 감싸고 싶어진다. 이렇게 늘어만 가는 뜨개물의 설치가 부담이기보다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강정마을 곳곳에 이어붙인 뜨개물들은 강정마을 분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농성의 새로운 형태를 만들었다는 뿌듯함이 함께한 모두의 가슴에 남아 있으리라 짐작해본다. 평화적이고 일상적인 연대가 예술과 결합하여 또다른 형태의 모습을 만들어 낸다. 제주 올레길을 관광하는 여행객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고, 공사장의 인부들이, 경찰들이 살짝살짝 눈길을 주며 미소짓게 하였으며, 사제단과 수녀님들의 눈시울을 적셨고, 강정마을 사람들에게 희망과 위로가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뜨개농성은 이후 모임을 지속적으로 이어 나가고 밀양으로, 또 다른 현장으로 지속적인 연대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이어 붙이는 뜨개농성은 모임참가가 자유로우며 소집의 주체나 실천행동 단위가 별도로 존재하지 않으나 SNS를 통한 지속적인 관계맺음과 만남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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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s

    따뜻하고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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