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마 성범아, “별이 크리스마스”야

[기고] 불의를 숙고하고 연대하는 2013년 크리스마스

“난 차마 와이프를 데려오면 울까봐 같이 오지 못했...”
말을 맺기도 전에 그 큰 눈망울에 습기가 가득 차더니 눈물을 뚝뚝 내보인다. 함께 오면 와이프가 울까봐 혼자 왔다는 성범이는 눈물만 줄줄 흘렸다. 12월 12일, 서울 신촌에서 열린 ‘별이의 돌잔치’에서 만난 그는 삼성전자서비스에서 일하다 전태일처럼 자신을 던진 최종범의 동료다. 그가 찾은 최종범의 딸 최별의 돌잔치는 기쁘고도 슬프고, 축복하다가도 눈물짓는 그런 잔치였다.

아빠의 빈소를 돌아다니며 누구에게나 살갑게 다가서는 별이를 처음 보았을 때, 곁에 선 이들이 차라리 미웠다. 목놓아 펑펑 울어버렸으면 좋으련만 그마저 가로막는 뭔가가 되어있기 때문이었다. 아니 죽음 앞에 분노와 투쟁의 의지로 굳게 서야 한다는 어설픈 내 마음 한 줄기마저 미웠다. 미워하는 내 맘 한 발 물러서며 보는 궁상스런 내 모습이 미웠다.

그래 난 지금 안녕하지 못하다. 돌잔치에서도 안녕하지 못하고 캐럴 흘러나오는 거리에서도, 크리스마스 트리 불빛 반짝이는 백화점 상가에서도 안녕하지 않다. 철도를 타도 안녕하지 못하고, 학교 선생님을 봐도 안녕하지 못하다. 매번 만날 때 묻고 매번 헤어질 때 던지는 이놈의 “안녕”이라는 단어가 안녕치 못함을 너무 자주 일깨운다. 내게 안녕하냐고 묻지 마. 이젠.

아마 원주는 안녕하겠지?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가 가진 상장사 주식만 합쳐도 13조 8710억이나 된다는, 2008년 2조 2830억에서 5년여 만에 무려 11조 5890억이나 늘어난 가족과 사는 원주는 안녕하겠지. 삼성전자 부회장님이 되어 삼성왕국을 3대째 세습하는 원주의 아빠 재용씨는 안녕하겠지.

휴일도 없이 여기저기 고장난 삼성전자제품 고치러 다녔던 종범이. 이제야 인간의 꿈을 품었지만 그 죄로 입에 담지 못할 욕먹었던 별이 아빠. 노조한다는 이유로 밉보인 동료의 아픔을 껴안고 떠난 최종범은 안녕 못했다. 냉장실에 남편 시신을 두고 세계일류 삼성본관 앞에서 찬바람 맞으며 농성하는 최종범의 아내 미희씨도 안녕 못하다. 돌잡이에서 웃으며 붓을 잡아 올린 별이는 어떨까. 몇 해 지나 크리스마스에 선물 안겨주는 아빠가 없음을 알고서야 지금 안녕하지 못함을 느끼게 되겠지.

벽은 왜 이리 많을까. 입시의 벽, 취업의 벽, 정규직화의 벽, 무노조의 벽. 넘을 수 없는 삼성의 벽, 벽벽벽벽벽... 아니지. 이 또한 어쩌면 주님의 은총인지도 몰라. 시련을 던지시어 님의 양을 강하게 쓰시려는 은총인지도 몰라. 그러니 안녕이니 벽이니 따지는 궁상은 그만 떨어야겠지. 어쩌면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그 벽을 넘어 산타가 올지도 몰라.

성범아 울지 마. 원주의 아빠가 별이에게 산타가 되어 올지도 몰라. 스크루지 영감이 개과천선하듯 어쩌면 재용씨가 따스하게 별이를 찾아올지도 몰라. 그러니 재벌의 탐욕, 자본의 착취 따위의 날선 마음은 접어두는 것이 좋을지 몰라. 이렇게 많은 캐럴송이 울리고 이렇게 많은 크리스마스트리가 반짝이고 이렇게 많은 기부들이 넘치는 세상에서 계급투쟁은 떠올리지 않는 게 현명한지도 몰라.

그러니 기도하는 마음으로 청소를 해야지. 산타가 들어오는 저 굴뚝이 막히면 오다가 돌아갈지도 몰라. 재용씨가 별이를 찾아오는 길목에 농성도 벽이 될지도 몰라. 재용씨 오는 길목에서 “삼성이 종범이를 죽였다”고 외치면 그게 벽이 될지도 몰라. 산타 오는 길에 빙판이라도 있다면 삼성본관 농성장 바람 막는 침낭 벗어 사르르 녹여야 겠지. ‘넘삼벽’이라고? ‘넘을 수 없는 삼성의 벽’은 없는 거야. 축복스런 크리스마스엔 벽은 없을 거야. 아무리 원주와 별이 사이가 멀어도 같은 세상에 함께 사는 사람이잖아. 축복은 벽을 타고 넘나들 거야. 주님은 영원히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별이와 원주의 벽을 결코 그냥두지 않으실 거야.

만약에, 만약에 이번 크리스마스에 기적이 없다면 어떡하지? 내 딸 수랑 영이랑 크리스마스케익이라도 자르며 캐럴 한곡은 불러야 할 텐데. 어떡하지? 아마도 주님은, 아마도 산타는, 아마도 재용씨도 무척 바쁘실 거야. 그러니 오지 못해도 분노하지도 실망하지도 말자.

내가 별이에게 산타가 될 수 있어. 내 딸 꼬마 수, 아기 영이에게 산타였듯 난 별이에게 산타가 될 거야. 수랑 영이랑 앉아서 얘기할 거야. 이번엔 별이에게 산타가 될 거라고. 십년 넘게 놓아두었던 저금통의 동전을 쏟아 놓고 수랑 영이랑 함께 셀 거야. 그리고 별이 통장을 만들 거야.

내 동전 통장보다 더 큰 선물을 할 거야. 별이 아빠와 별이 아빠의 동료들이 일하던 삼성전자서비스센터를 찾아다니며 얘기할 거야. “별이의 크리스마스를 함께 해요”, “별이에게 산타가 되어주세요”, “삼성을 바꾸는 산타가 되어주세요” 산타의 모자를 빌려 쓰고 그렇게 난 찾아다닐 거야. 아빠 없이 입시경쟁, 취업경쟁, 고용경쟁을 이겨낼 작은 도움이라도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함께 별이 통장을 만들자고 할 거야. 같이 아빠가 되어주자고 할 거야.

그렇게 돌며 은총을 모아 난 크리스마스엔 별이를 찾아갈 거야. 삼성본관 앞의 별이 엄마에게 갈 거야. 그날 함께 할 분들이 나만은 아니겠지. 별이에게 우리의 캐럴을 들려줄 거야. “메리 크리스마스” 대신 또렷하고 나즈막하게 이렇게 축복해 줄 거야. “별이 크리스마스”

행여 기적 없는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최종범의 겨울, 미희씨의 겨울, 그 겨울을 결코 별이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 산타 모자를 벗을 거야. 바쁘셔서 오지 못한 주님을 찾아볼 꺼야. 바쁘셔서 오지 못한 산타를 방문할 거야. 바빠서 오지 못한 재용씨를 방문할 거야. 그땐 크리스마스 선물보따리 대신 다른 것을 들고 있겠지. 수천 수만의 안녕하지 못한 우리가 재용씨를 찾을 날 꼭 오겠지. 울지마 성범아, 우리가 축복이고 기적이 될 거야. 그러니 지금은 우리 함께 “별이 크리스마스”를 준비하자. 2013년 12월 24일,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 시대의 작은 예수인 최종범을 찾아, 미희씨를 찾아, 별이를 찾아 강남역 근처 삼성전자 본관 앞으로 모여드는 꿈을 꿔보자. 그런 촛불들로 우리 사회가, 2013년 크리스마스가 잠깐은 환해지는 꿈을 꿔보자.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이 올해는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하지 않고, ‘별이 크리스마스’라고 이야기하는 꿈을 꿔보자. 우린 할 수 있을 거야. 수천 수만의 동방박사들이 저마다의 선물을 갖고 그날 별이도, 별이와 같은 아이들도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찾아올 거야.

[제안]

1. 2013년 12월 24일을 ‘별이의 크리스마스’로 명명할 것을 범사회적으로 요청합니다.

2. ‘별이’는 2013년 오늘, 쌍차나 코오롱이나 한진이나 콜트콜텍의 어느 해고자의 딸일 수도 있고, 강정이나 밀양의 어느 어르신의 손녀일 수도 있고, 용산이나 어떤 철거 현장의 아이일 수도 있습니다. 아빠가 안전하게 돌아오길 바라는 철도노동자의 아이들일 수도 있습니다. 매 맞아 죽은 어느 아이일 수도 있고, 영문을 모른 채 엄마품에 안겨 난간 위에서 떨어진 어느 아이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너무 해맑은 아이. 말하자면 ‘별이’는 2013년 차별받고, 소외당하고, 탄압당하는 우리 모두의 미래에 대한 아픈 상징입니다.

3. 그러한 2013년 ‘별이’를 기억하고 연대하기 위해 2013년 12월 24일 모두 함께 연대의 촛불을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4. 수도권의 시민들은 24일 저녁 7시부터 1박 2일,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함께 연대의 촛불을 들 것을 제안합니다.

5. 영남 지역 시민들에게 24일 저녁 7시부터 1박 2일, 밀양의 고 유한숙 어르신의 분향소 앞에서 연대의 촛불을 들 것을 제안합니다.

6. 그 외 지역의 시민들에게 해당 지역의 삼성 관련 기관, 또는 한전과 현재 공공철도를 지키기 위해서 노동자들이 싸우고 있는 철도역 앞에서 등 연대의 촛불을 들 것을 제안합니다.

<‘별이 크리스마스’ 기획단에서 드리는 글>

조건준 님의 글은 진즉 쓰여져 크리스마스 즈음해 발표하기로 했던 글입니다. 그러던 며칠전(12월 20일) 극적으로 노사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충분한 내용은 아니지만, 최종범 열사의 유가족들과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 그리고 연대하는 모든 이들의 힘이 모여 이룬 값진 소식이었습니다. 근래 <삼성노동인권지킴이>가 출범하고, 삼성백혈병피해자 본 교섭이 시작되고, 별이 돌잔치에 이어 별이 크리스마스까지 사회적 연대가 넓어져 갔던 것도 압력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철도노동자들의 힘있는 투쟁과 이에 응답한 ‘안녕들’ 못한 이들의 사회적 출현과 분노 역시 이들로 하여금 서둘러 교섭 자리로 나오게 만든 힘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삼성전자 본사는 사태해결을 위한 어떤 진정성도 노력도 하지 않았습니다. 끝내 조문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조문은커녕 용역들을 동원해 시시때때로 분향 장소를 폭력적으로 침탈했습니다. 교섭 당사자도 처음엔 천안센터장이었다가, 나중엔 경총으로 바뀌었습니다. 160여개에 이르는 불법 위장하도급사를 거느리고 있는 삼성전자서비스도 실제 교섭에 나서면서도 끝내 책임을 회피해 나갔습니다. 노동조합을 인정하고, 생활임금 보장 수단으로 리스 차량과 유류비를 실비로 제공하겠다. 건당수수료 제도와 월급제를 임단협에서 성실히 논의하겠다고 했지만 이는 당연히 그간 했어야 할 일들이고, 노동법이나 근로기준법 상의 권리에 불과합니다. 여전히 삼성의 무노조 정책은 바뀌지 않았고, 삼성전자서비스를 통한 불법파견, 불법하도급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삼성은, 삼성전자 본사는 변한 게 없고, 현재도 이 일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합니다.

하여, 이런 삼성의 행태를 규탄하고, 마지막 가시는 최종범 열사를 위로하고, 추모하며, 그 뜻을 기리는 ‘별이의 크리스마스’ 자리는 애초 제안대로 치루기로 했습니다. 차디찬 냉동고를 나와 비로소 저 하늘의 별이 되어가시는 최종범 열사와, 땅 위에 남은 최별을 기억하는 자리입니다. 우리 시대 끊이지 않는 불의와 부정을 숙고하고 연대하는 자리가 되기를 바래봅니다. 여전히 2013년 크리스마스는, ‘별이 크리스마스’입니다.(기획단)

■ 삼성전자 본관 앞 ‘별이 크리스마스’

24일 19시 / 기독교계 성탄전야 기도회 <온누리에 사랑을>
24일 20시 / 추모제 및 연대한마당 <온누리에 연대를>

* 여전히 우리의 연대는 소중합니다. 같은 시각 밀양의 고 유한숙 어르신 분향소와 강정주민들, 철도노동자들 등이 외롭지 않게 함께 연대해 주시길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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