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벌에 기댄 삶이었는데, 이제는 감자를 캐요”

[기획연재] 새만금 생명 보고서(4)

[편집자주] 새만금 갯벌을 살리고 무분별한 간척 사업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높았던 2003년, 갯벌을 아끼는 시민들이 환경 재앙의 현장을 기록하고, 주민들의 삶을 기록하자는 뜻에서 출발한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은 그동안 매월 첫째 주 토요일과 일요일 새만금 현장을 찾았다. 지난달까지 모두 120여 차례의 조사를 마쳤다.

헛된 공약으로 점철된 새만금 간척사업을 누구보다 아파했던 이들은 지난 10년의 발자취를 백서로 발간했다.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이 펴낸 <2013 새만금 생명 보고서>는 지난 10년의 기간 중앙정부와 전라북도, 토건자본들의 무자비한 개발에 대한 반성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리고 사라진 생명들과 주민들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새만금 시민생태조사단의 도움으로 보고서 일부를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그리고 시민생태조사단의 참가자들의 목소리로 사라진 갯벌이 우리 곁에 다시 돌아오기를 염원하는 희망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새만금 물막이 이후 갯벌에서 조개를 캐던 여성들이 매일같이 갯벌에 나가지 못하고, 한 달에 3~4일 정도 밖에 갯일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 정도 수입으로는 생계유지가 어려워 마침 일손이 필요한 이웃 동네로 나가 품을 팔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김소자(가명, 여, 52세) 씨는 2007년 봄 50여 일간 바다에 나가지 않고 이웃 광활면에서 감자 캐는 일을 했다. 광활면의 봄 감자 생산량은 전국의 20%를 차지하는 규모로 하우스 재배가 주를 이룬다. ‘광활 감자는 알이 당차고 밤 맛 같이 맛있다’고 널리 알려져 있다.

  2006년 9월 10일, 김제 거전갯벌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허리가까이 까지 차는 바닷물 속에 들어가 백합을 잡는 모습 [출처: 주용기]

김씨가 작업장에 나가는 시간은 새벽 4시다. 감자작업이 비닐하우스 안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시작해야 덥기 전에 끝낼 수 있다. 새벽에 나가면 작업별로 인원이 구분되어 하우스에 투입된다. 감자를 캐는 호미질 일당은 3만원, 크기에 따라 선별하는 작업은 4만원, 감자박스를 저울에 올리고 트럭에 올리는 사람은 5만원을 받는다. 5만원 일당은 힘들기 때문에 남자들이 도맡아서 한다. 이렇게 할당된 ‘한 배미 반’ 면적의 일을 끝내면 오후 1시나 2시가 된다. 한배미만 작업하면 오전 11시에 끝나지만 기존의 바다에서 버는 일당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보통 1배미 반 정도는 맡아야 한다. 그래야 갯일 나가서 번만큼은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감자 선별작업을 했고 평균 1배미 반 이상을 했기 때문에 하루 일당을 6만 원 정도로 유지할 수 있었다. 김씨가 35일간 벌어들인 수입은 200만원이 채 되지 않았다. 하루 작업시간은 8시간에 이르렀다. 이것을 갯일과 비교해 보면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있다.

갯일은 물때에 맞춰 하루에 4시간이나 최대 5시간이면 마칠 수 있다. 수입도 갯일이 더 높아 하루에 6만 원 정도는 손쉽게 벌 수 있었다. 김씨는 더운 하우스에서 고생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 오죽하면 “바다 일은 약과여. 감자 캐는데, 아이고 후레아들 놈(의 감자작업)…”이라고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뿜어냈다.

  2007년 5월 27일, 김제 거전갯벌을 의지해 백합을 잡아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어민들의 모습. [출처: 주용기]

“어선으로 바다 일 하던 어민, 지금은 공공근로”

박진석(가명, 남, 60세) 씨는 14살부터 바다 일을 시작했다. 2001년까지 1.9톤 배를 운영하면서 맨손어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태우고 다니면서도 하루에 15만원, 20만원을 받고 함께 조개를 캤다. 하지만 보증을 잘못 서 준 바람에 배를 잃고 그 뒤로는 손을 놓고 놀고 있다.

배운 것이 ‘배타는 것’ 뿐이니까 빚이라도 얻어서 배를 해보고 싶지만 새만금을 막는다니까 다시 시작할 기회가 없어 답답할 따름이다. 빚을 져도 비전이 있어야 빌려주고, 갚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한 3년이라도 방조제 공사가 중단된다면 바다 일을 하고 싶다. 그러면 먹고 살고 빚은 갚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새만금 간척을 하기 전에는 5~600만원은 어디서도 쉽게 빌려서 쓸 수 있었다. 갚는 일도 그만큼 확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만금 간척이 시작되고 나서는 돈이 다 묶여 돈을 빌릴 수가 없다.

친구들도 그렇고, 동네에 서로 돈이 없기 때문이다. 그전에는 갚을 가능성이 있었지만 지금은 빌려줘도 받을 가능성이 그만큼 없어졌기 때문에 돈이 풀리지 않는다고 짐작만 하고 있을 뿐이다. 분명 돈이 있을만한 사람들도 ‘딱 쇠때(열쇠) 채 버리고’ 더 죽는 소리를 할 뿐이다.

  2007년 6월 3일, 바닷일을 하지 못하고 벼농사일에 전념하고 있는 마을 주민 [출처: 주용기]

박씨가 어선을 운영하며 고기도 잡고 조개를 캘 때는 남을 도와주면서 살았을 정도로 경제적으로 풍요로웠다.

지금은 가끔씩 망둥어 낚시나 하러 다니거나 영세민으로 하루 일당 2만원에 취로사업에 나간다. 배와 바다를 잃고 유일한 생계는 이렇게 한 달에 15일 동안 일해 벌어들인 수입뿐이다. 한 달 수입 30만원으로 생활을 해야 한다. 그 대신 진봉면 일대 가라는 데는 다 쫓아가서 풀도 뽑고, 쓰레기도 줍고, 닥치는 대로 일을 한다.

[연재 순서]

1. 새만금 조류 조사 10년, 8만 마리의 도요새는 어디 갔을까? 오동필 물새팀 실행위원
2. 군산에서 가장 큰 포구, 이제는 황량함만 자리해. 여길욱 저서생물팀 실행위원
3. 새만금 지역 어민, 지금은 어떻게 사나? 김경완 문화팀 실행위원
4. 내가 만난 새만금 어민. 김경완 문화팀 실행위원
5. 지금도 돈이 되는 실뱀장어 어장. 김회경 동화작가
6. 새만금은 끝나지 않았다. 생태조사단 10년. 이성실 어린이책 작가
7.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오동필 실행위원 인터뷰. 문주현 참소리 기자
8.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문주현 참소리 기자
9. 소외받은 자의 우울한 완장. 김형균 새만금 시민생태조사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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