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이 없는 사람들, 고향을 꿈꾸는 사람들

[밀양을 함께 살다](1) 강정마을과 밀양, 그들도 우리처럼

[편집자 주]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을 하는 주민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담은 <밀양을 살다>가 출간되었다. 밀양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또 다른 시대의 고유명사가 되어 버린 용산, 강정, 쌍용차를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읽었을까? 2012년 겨울, 박근혜의 대통령 당선이라는 모진 소식을 ‘함께살자 농성촌’에서 함께 들었던 사람들. 2014년의 차디찬 소식들을 마주하며 여전히 함께 살기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시대를 살아내는 공감과 연대의 힘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연재는 <민중언론 참세상>과 <밀양구술프로젝트>가 공동으로 기획했다.

  밀양 송전탑 127번 움막 앞에 모인 80대 할머니들 [출처: 김용욱 기자]

<밀양을 살다>를 읽으면서 내내 든 생각은 아! 사람들의 고향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8년 전 강정마을 해군기지 유치소식을 듣고 한없는 눈물과 분노로 40의 나이를 다 보냈다. 그 시간 동안 부르짖었던 숱한 이야기가 세상이란 커다란 벽에 부딪쳐 메아리도 없이 허공을 맴돌았다. 정부와 해군, 삼성과 대림 대기업은 결국 강정바다 구럼비를 파헤쳤고, 이전의 모습은 사라져 삭막한 콘크리트 더미에 묻혀갔다. 고향을 잃은, 아니 고향이 없는 세상이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겨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발전이라는 이름 아래 혹은 공익이라는 이름 아래 그리고 민주주의 다수결의 원칙이라는 이름 아래 정작 중요한 사람과 사람과의 신뢰 관계는 무시되었다. 직접적인 연관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을 짓밟고 그리고 무시하고 멸시하는 모습이 경제냐 안보냐의 차원만 다를 뿐 밀양과 강정은 똑같다.

강정에서 처음 반대위원회를 결속하고 꾸려나가는 내내 사람들은 고향을 지키려는 의지 하나로 밤을 새도 힘이 들지 않고 돈이 들어가도 아깝지 않고 농사일을 망쳐도 다 감내했다. 그런데 높은 빌딩이나 자동차 넒은 길, 부와 발전의 상징들은 정작 사람들의 마음을 삭막하게 만들고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돈과 연결하며 손익의 관계로 만들어갔다. 정작 중요한 것들을 외면한 까닭에 이러한 일들이 더 심화되고 결국은 우리가 당하는 일들이 어떤 것인지도 인지하지 못할 지경에 다다른 것 같다.

고향이라는 것 고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 고향을 꿈꾼다는 것은 아마 안식과 쉼이 있다는 것일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지척의 동네로 이사를 가려고 해도 정작 내 집 내 마을을 떠날 수 없는 것은 이곳이 내가 나고 자란 내 고향 내 안식처 쉼터이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높은 빌딩이나 넓은 길을 발전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래서 길이 뚫리고 빌딩이 세워지면 발전이 됐다고 부러워한다. 그러나 정작 그 속에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설 자리를 잃고 설 자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모습을 본다. 고향은 그런 곳이다. 굳이 큰 수고를 하지 않아도 쉼터가 있고 삶터가 있고 이웃이 있다.

할머니들이 지키려는 것 그것은 단순한 땅 마을이 아니라 고향이다. 80의 세월이 어떠했을까 책을 통해 전해지는 것은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그 세월을 고스란히 견디게 해준 곳, 한 세기의 세월을 견디게 해준 곳, 수많은 아픔과 기쁨 희망 절망 그 모든 것을 살아가게 만들어 준 곳. 수많은 이야기가 생겨나고 사라져가는 그곳을 지키려고 몸부림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의 관계보다 돈을 우선하는 세상에서 고향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몸부림은 비웃음과 조롱거리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발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40대가 다 가도록 고향을 벗어난 적이 별로 없던 나는 다른 지역의 모습을 본 적이 별로 없다. 다만 TV를 통하여 비쳐지는 모습만 볼 뿐이다. 그러다가 해군기지반대 운동을 하면서 서울이나 기타 지역을 다니다 보면 비행기를 타고 내릴 때 끝없이 이어지는 빌딩이나 아파트를 보게 된다. 숲이 있었던 자리도 논이 있었던 자리도 온통 길과 건물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시골의 사람들보다 화려하고 멋진 모습을 한 사람들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모습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저들은 무엇 때문에 저렇게 바쁘게 움직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보다 더 넓게 더 많이 더 크게 더 높이 더.더.더. 결국 사람들의 생각은 더더더 병에 걸려 버렸다. 그 많은 건물 중에 자신이 거할 한 평 땅도 취하기 힘들면서 많은 사람들이 높은 건물 넓은 길이 발전이라고 생각 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 모습이다.

해군기지가 들어서기 전 강정마을은 굳이 넓은 땅이 필요치 않은 동네였다. 내 땅이 없어도 농사가 가능했고 힘에 부친 농사일을 해도 이웃이 있고 친구들이 있고 서로 일도 도와주고 서로 벗도 되어서 너나없이 풍족하지는 않아도 살아가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이제는 그렇지 않다. 돈이 우선인 동네가 되어 가고 이웃도 없이 점점 삭막해져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발전은 물질에 있지 않다. 높은 건물 넓은 길이 발전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 살고 더 나은 사람도 더 못난 사람도 없이 서로를 돌아보면서 사는 게 발전이다. 굳이 대문도 필요 없고 네 것 내 것의 경계도 없이 서로를 보듬으며 사는 게 발전이 아닌가 한다. 있는 자나 없는 자나 똑같이 잘 살 수 있는 곳 그것이 발전이 아닌가 싶다.

밀양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사는 동네가 그런 동네가 아닐까 싶다. 서로를 보듬으며 관계를 발전 시켜 나가는 곳. 이 땅의 수많은 고향이 그런 곳일 것이다. 넓은 길이 없어도 서로 협력하고 서로 돌아보고 서로 이웃이 되어서 서로가 힘이 되고 서로가 사는 이유가 되어서 소소한 다툼은 다 덮어지는. 그렇기 때문에 밀양의 할머니들은 누구보다 고향이 소중하고 소중해서 고향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고 계실 것이다.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 고향을 지키려는 사람들 누가 더 위대한지는 각자의 판단에 의한 것이지만 적어도 나는 밀양의 할머니들의 싸움은 투쟁이 아니라 고향을 지키려는 위대한 여정이라고 생각 한다. 남에게 없는 고향의 애틋함을 가슴에 담고 그 고향을 지켜내려는 몸부림이라고 본다. 쉴 새 없이 자재를 실어 나르는 헬리콥터의 굉음을 들으면서 그들의 괜한 부지런을 보면서 썼던 글로 마무리 한다. 밀양의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고향을 지키려는 무수한 동력자들에게 응원의 갈채를 보낸다.

밀양

헬리콥터 쉴 새 없이 뜨고 내릴 때
애타는 가슴들은 발을 구르고
행여 하늘을 바라보며 소망을 띄운다
여전히 가슴이 없는 경찰 강 건너 불구경하듯 웃고 떠든다
저놈의 헬기는 어떻게 하며...
저 망할 경찰들은 어떻게 하며
우리네 병든 할머니 할아버지는 어떻게 하냐
긴 한숨만 절로 난다.

밀양2

망할
이놈의 새끼들은 무슨 생각을 하냐
몇 푼의 돈만 쥐어주면
별 지랄 염병을 다 떤다
무너뜨리고
부숴뜨리고...
사람들의 가슴이야 어떻든
사람들의 마음이야 어떻든
기계처럼 움직여
마음도 없이
가슴도 없이
지랄 염병 다 떤다
개 자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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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탑 , 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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