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유골함 탈취, 경찰 ‘범죄’가 사태 키웠다

[기고] 삼성전자서비스 투쟁 승리 날, 장례절차 시작될 것

삼성전자서비스에서 수리기사로 일하며,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투쟁하던 삼성전자서비스 지회 염호석 분회장이 2014년 5월 17일 향년 34세에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일한 만큼 대우받지 못한 고통과 삼성의 노조탄압에 의한 고통을 유서에 남겼다.고인은 삼성전자서비스지회와 부모님에게 남긴 유서에서 자신의 시신을 안치한 후 삼성전자서비스 투쟁이 승리하는 날 그 때 정동진에 화장해달라고 했다.

[출처: 삼성일반노조]

그런데 불과 하루만인 5월 18일 고인의 시신이 안치된 서울의료원 장례식장에 300여명이라는 대규모 경찰병력이 들이닥쳐서 폭력적으로 시신을 탈취해가는 반인륜적인 충격적인 사태가 벌어졌다.

경찰이 들이닥치기 직전의 상황은, 고인의 아버지가 장례절차를 노조에 위임하겠다는 애초 의사를 변경하여 부산에서 장례를 치르겠다고 하는 가운데 노조와 아버지가 계속 대화중인 과정이었다. 그런데 합의금 브로커로 보이는 신원불상의 2, 3인이 장례식장이 아닌 인근 식당에서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던 중 아버지가 어떤 연유로 경찰에 직접 신고를 하여 시신인도요청을 한 것이다.

놀라운 것은 신고한 지 채 10분도 되지 않아서, 그것도 휴일인 일요일 저녁시간에 기동대 병력 무려 300여명이 득달같이 장례식장 앞마당으로 들이닥친 것이다. 이는 시신탈취 사건이 경찰의 철저히 준비된 사전 작전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징표이다.

또한 경찰은 출동사유도 전혀 밝히지 않고 ‘하나, 둘, 셋’ 구호와 함께 무장한 경찰력을 앞세워 방패로 밀고 심지어 방패 날을 세워 조합원과 조문객들을 정확히 겨냥하여 찍어 내렸다.

조합원들과 조문객들은 도무지 경찰이 왜 출동했는지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에 경찰의 일방적인 시신탈취 행위에 저항할 수밖에 없었다. 고인이 투쟁에 승리할 때까지 시신을 안치하라고 유서에 남겼고 부모님도 동의해 모든 장례절차를 노조에 위임한다는 위임장까지 써주었다는 사실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잠시 후 현장으로 온 아버지도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동에 놀라서 노조간부와 변호사의 설득에 동의해 경찰 지휘관에게 일단 병력을 빼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시신인도요청 신고자가 신고 철회의 취지로 병력을 빼달라고, 일단 대화를 더 해보겠다고 한 것이다.

그렇다면 병력을 빼고 당사자 간의 합의를 지켜보는 것이 원칙이고 정상적인 법적 절차이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경찰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진압을 계속했다. 경찰은 계속되는 유족들의 항의와 출동 이유를 묻는 질문에도 일절 대답하지 않았고, 오히려 조합원과 유족 23명을 폭력적으로 연행했다. 체포연행과정에서도 체포사유와 진술의 기회 등 미란다 원칙을 전혀 고지하지 않았다. 넋이 나가 공황상태에 빠져있는 조합원과 조문객들의 얼굴에 최루액을 계속적으로 난사했다.

그러한 끝에 결국 경찰병력 뒤로 고인의 시신을 실은 엠블런스가 빠져나가버렸다. 이는 명백히 경찰과 삼성 자본이 아버지의 신고를 유발, 이용해 시신탈취작전에 돌입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참세상 자료사진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

경찰은 어떠한 현장조사과정도, 당사자 간 면담도, 중재절차도 거치지 않았다. 애초부터 막무가내로 병력을 대거 투입해 공격하고 최루액을 난사하고 잡히는 대로 연행했다. 공공의 위험이라거나 범죄행위가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 아니라 장례절차에 관한 분쟁은 당사자 간의 대화와 합의의 문제이다. 이러한 경우에 경찰이 중재에 참여할 수는 있다. 그러나 폭력적인 진압은 어떤 근거도 없는 명백한 경찰공권력 남용이다. 신고주체인 아버지가 병력을 빼달라고 몇 차례나 요구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마저 묵살했다는 사실은 시신탈취라는 천인공노할 반인륜적 패륜적 범죄의 주체가 다름 아닌 경찰이라는 사실을 더욱 확실하게 해준다.

결국 부산으로 이동한다던 시신은 5월 20일 밀양화장장에서 화장되고 말았다. 부산 행림병원에 빈소가 차려지긴 했으나 알고 보니 시신이 없는 가짜 빈소였던 것이다. 당일 아침에서야 화장 소식을 안 조합원들이 아버지와는 다르게 아들의 유지를 지키려는 생모를 모시고 화장장으로 달려갔으나 경찰병력은 그 곳에서도 벽을 둘러치고 이들을 막았다. 조합원들과 함께 생모는 ‘아들의 유지를 지켜야 한다. 유해라도 돌려 달라’며 외쳤으나 경찰은 길을 열어주고 안내해주기는커녕 생모에게 최루액을 뿌렸다. 악마와 같은 행태이다.

동료를 잃고 시신마저 탈취당한 조합원들과 아들을 잃은 어머니에게 최루액을 뿌리고 진압하는 경찰은 국민을 보호하는 공권력이 아닐 뿐만 아니라 인간이기를 포기한 악마라고 칭해야 한다.

[출처: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법적으로 고인의 유체와 유골은 유족인 제사주재자에게 승계되는데, 제사주재자는 공동상속인들 간의 협의로 정해진다. 그런데 공동상속인인 어머니와 아버지는 5월 17일 고인의 유언에 따라 모든 장례절차를 노조에 위임하였을 뿐, 이후 아버지가 변심해 일방적으로 시신을 인도해간 후에는 제사주재를 양친 중 누가 할 것인지 단 한마디의 협의도 없었다.

따라서 지금은 양친이 제사주재자 및 장례절차를 협의해야하는 법률적 단계이다. 협의가 없는 상태에서 아버지가 일방적이고 배타적으로 장례절차를 주재하는 것은 무효가 될 수도 있는 문제이다.

그런데 경찰은 무슨 근거로 이처럼 사적인 장례절차에 개입하는 것인가. 실로 통탄할 일이다. 나아가 시신탈취라는 충격적인 수단과 그 유례없이 폭력적이었던 과정에 대해서는 더더욱 분노를 금할 수가 없다.

고인은 세상을 떠나면서까지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의 처우가 개선되기를 소망했고, 자신의 희생으로 노동자들이 삼성의 노조탄압을 이겨낼 수 있기를 염원했다. 이러한 고인의 소망과 염원을 이어 받아 시작될 노동자들의 투쟁의 열기가, 삼성으로서는 도저히 버텨낼 수 없는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리고 대기업 재벌만을 비호하고, 국민의 절대 다수 노동자들의 피맺힌 요구는 사회 안전이라는 기만적 명목으로 무참히 짓밟으며, 정의를 말하는 노동자들의 입을 틀어막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경찰은 반드시 고인의 유언이 실현되지 않도록 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노동자들과, 고인의 죽음을 추모하고 그 유지를 존중하는 양심적 시민들은 이러한 삼성자본과 경찰의 시신탈취라는 반인륜적 죄악 앞에 더 큰 분노를 모으고 있다. 이러한 분노가 모여서 결국 고인의 뜻대로 우리는 반드시 삼성 자본과의 싸움에서 기필코 이기고 말 것이다. 삼성과 경찰에게 지금부터의 투쟁과 실천으로 똑똑히 보여줄 것이다.

지금부터 벌어질 모든 싸움과, 삼성 및 경찰이 입게 될 모든 피해는 삼성과 경찰이 스스로 초래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고인의 유언대로 삼성전자서비스 투쟁이 승리하는 날 진정한 장례절차가 다시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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