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이 우리를 도와줄 수 있어?”...그 절망에서 시작합니다

[기고] 2014 대학생 노동해방선봉대를 시작하며

2013년 여름, “공공부문 민영화 저지! 비정규직 정리해고 노조탄압 없는 세상! 평등세상 앞당기는 노동자계급정치 실현!”을 외치며 전국의 대학생들이 모였습니다. 노동해방과 평등세상을 꿈꾸는 대학생들이 전국을 돌면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힘을 주었습니다. 인천공항 비정규직, 유성기업 노동자들과도 연대했고 울산 희망버스 투쟁에 함께했습니다. 비정규직, 정리해고, 노조탄압 등 억압적 현실을 바꾸기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며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밀양 송전탑 저지 투쟁을 벌이고 있는 밀양 주민들과도 만났습니다.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 안에서 우리는 유명인과 야당 정치인의 달콤한 언설이 아닌 노동자민중 스스로의 투쟁이야말로 희망이라는 사실을 가슴 한가득 느낄 수 있었습니다.


노동해방이라는 전망의 상실이 절망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희망 속에서도 우리는 절망을 발견했습니다. 밀양 송전탑 건설현장을 보고 돌아온 저녁, 한 주민이 우리에게 물었습니다. “대학생들이라고? 당신들이 우리들을 도와줄 수 있습니까?” 저는 이 말을 듣고 순간 그야말로 멍해졌습니다. 크게 내건 ‘노동해방’이라는 말이 무색해지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절실히 연대를 구하는 그들에게 우리가 현실적인 힘으로 다가가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어쩌면 이 어려움은 진지하게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이 겪고 있는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노동운동을 집단적 가능성으로 인식하지 못하면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채로 자본주의의 혹독한 착취를 감내하고 있습니다. 이 현실 속에서 노동자 민중들은 지금 당장 도움 받을 수 있는 것만 찾고 있습니다. 실력을 가진 야당의 관심을 호소하고, 때로는 ‘착한 자본가’의 등장에 대한 기대를 갖습니다. 심지어는 많은 노동자 민중들이 새누리당 세력을 지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땅의 노동자 민중들이 노동해방과 평등세상의 꿈을 포기하고 있는 까닭은 그들의 탓이 아닙니다. 그 포기의 중심에는 전망을 포기한 파탄난 노동자정치가 있습니다. 노동운동 지도부 다수는 노동자정치를 선거 때 표 찍는 행위로 제한시켰습니다. 노동해방이라는 전망의 포기는 노골적으로 선언되었습니다. 썩은 체제를 변혁하고 노동자 민중이 주인 되는 세상을 건설하겠다는 전망 대신에 자본주의를 인정하면서 조금씩 개혁하겠다는 발상이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체제를 근본적으로 변혁하는 투쟁은 구시대의 유물로 취급되었습니다. 그리고 투쟁하는 노동자민중과 함께 반(反)자본주의 정치를 펼쳤어야 할 진보정치는 민주당에게 이른바 ‘야권연대’를 구걸해왔습니다. 민주당이 어떤 세력입니까. 이명박, 박근혜 정권과 똑같이 노조를 파괴하고 규제완화와 민영화를 추진했던 신자유주의 세력입니다. 진보정당은 야권연대와 패권주의 협잡정치만 일삼으며 민주당과 같아졌고, 똑같이 타락해갔습니다. 그 결과는 정치 자체에 냉소하며 노동자정치와 전투적 투쟁에 대한 고민을 아예 포기한 수많은 노동자들의 모습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대학생들이 ‘노동해방’을 내거는 이유

이 절망이 2014년, 다시금 ‘노동해방’이라는 단어를 내걸고 대학생들이 나서는 이유입니다. 절망과 대안의 상실 속에서도 노동자 민중들 스스로가 해방되기 위한 투쟁에 나서고 있습니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의 사슬에도 노동자들은 민주노조를 만들고 있습니다. 민영화와 노조탄압을 획책하는 자본에 맞서 투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투쟁들에 연대하면서 함께 다른 세상을 만드는 꿈을 꾸고자 합니다. 그것은 바로 노동해방과 평등세상의 꿈입니다. 그 세상은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극소수 자본가들의 이윤을 위해 희생되기를 그만두고 공공성과 복지를 향유하는 사회입니다.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와 탄압이 없는 사회, 민중들이 더 이상 생계를 비관하여 자살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사회를 꿈꿉니다.

이 꿈은 우리 대학생들의 꿈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다니는 대학은 자본의 이윤추구를 위한 공간으로 전락한지 오래입니다. 학생들은 고액 등록금을 내고 학교를 다니면서도 늘 졸업과 취업 등 경쟁압력에 시달려야 합니다. 정부는 학령인구 감소를 핑계로 대학구조조정의 칼춤을 신나게 추고 있고, 사립대학 자본은 또 이것을 핑계로 돈이 안 되는 비인기 학과와 학문을 말살시키려고 합니다. 부실대학이 양산되어 온 것은 대학을 이용하여 돈벌이를 해온 이 나라 자본의 책임이자 대학의 설립요건을 완화시켜준 역대 정부의 책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과구조조정과 부실대학 선정의 피해는 오로지 학생들만이 짊어지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자유를 박탈당한 채 학과 자치공동체를 삽시간에 잃고 안 그래도 불안정한 사회에 진출해야 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대학생들은 대학공공성을 요구합니다. 등록금으로 고통 받지 않아도 되는 대학, 돈 안 되는 학문이라고 해서 제거당하지 않는 교육, 더 이상 불안하지 않아도 되는 대학을 원합니다.

부당한 교육현실에 저항하며 대학공공성을 요구하는 대학생들의 투쟁은 노동자들의 투쟁과 맞닿아 있습니다. 멀리 볼 것도 없이 대학 내에서 당장 이 만남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만약 대학의 교원노동자들과 청소노동자들이 자본에 의해 탄압당하고 이윤추구의 도구로 전락한다면 우리의 교육환경 또한 더욱 악화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 대학생들은 각 대학에서 민주노조를 만들고 대학자본에 맞서 투쟁하는 청소노동자들과 연대해왔습니다. 이번 여름, 대학생 노동해방선봉대는 전국 각지 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하면서 더욱 넓은 시야와 노동해방의 전망을 가지고자 합니다. 더 나은 대학,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길을 고민하고자 합니다.

  2013 노동해방선봉대 기간 중 유성기업 노동자들과 함께 노학연대 문화제를 개최했다

이윤보다 인간을!

전쟁 같은 현실이라고들 합니다. 누구보다 노동자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매년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기자재에 깔려, 반도체를 만들다가 백혈병에 걸려 산재사망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올해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은 2달 만에 8명의 동료를 산재사망으로 잃어야 했습니다. 1년에 산재사망으로 사망하는 노동자가 통계만으로 무려 2000여 명입니다. 그 배수의 노동자들이 산재신청조차 못한 채 죽어가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세월호 참사와 통계에 잡히지 않는 이라크 전쟁이 지금 이 순간 노동자들의 일터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나라 자본들이 더 많은 이윤을 위해 안전투자를 회피하고 노동자를 쥐어짠 결과입니다. 그들에게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은 이윤추구에 방해가 되는 한낱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것은 사실상의 기업살인이자 대량학살입니다.

그럼에도 10대 대기업의 사내유보금은 400조여 원에 이르고 수십 수백억 원의 배당금 잔치를 연일 벌이고 있습니다. 자본가들은 대체 만족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것으로 모자라 우리 모두의 안전과 생명을 돈벌이 수단으로 만드는 의료민영화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효율성과 경쟁력, 때로는 선진화라는 미명 하에 철도민영화 등 여러 민영화를 계속해서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민영화는 결코 효율적이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세월호 참사에서 여지없이 드러났습니다. 역대 정부는 안전관리를 민영화하여 해운자본가들의 연합인 해운조합 스스로가 안전관리 업무를 맡는 우스꽝스러운 꼴을 연출했습니다. 노무현, 이명박 정부는 수난구호법을 개정하여 구조업무조차 민간업자에게 팔아넘겼습니다. 그 결과로 사고 당시 해경은 잠수용 전문 바지선조차 소유한 게 없어 구조를 못 하는 무능함의 극치를 보여주었습니다. 대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이었습니다. 이처럼 가진 자들이 얘기하는 ‘효율성’은 이윤추구의 효율성일 뿐이며 사회 전체로 보면 극도로 비효율적입니다. 또 다시 ‘효율성’과 ‘경쟁력’, ‘선진화’를 근거로 들이대며 민영화를 추진하는 것은 정부가 자본의 이윤을 보장해주기 위해 또 다시 노동자 민중에 대한 범죄와 학살을 저지르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노골적인 계획은 의료민영화 추진으로 현실화되려고 합니다.

비정규직 문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삼성, SK와 같은 재벌들은 저임금, 불안정 노동자들을 손쉽게 부려먹기 위해 불법파견을 사용하며 교섭과 고용안정 의무를 회피하고 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차별, 배제와 탄압은 더욱 심해지고 있습니다.

세월호, 민영화, 비정규직, 산재사망, 대학기업화. 이 모든 과정의 밑바닥에는 노동자 민중의 생명과 안전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극도의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의 탐욕이 있습니다. 자리 하나 챙기려고 민중의 안전과 생명을 유린하는 더러운 관료들이 있고 이들이 지탱하는 정권이 있습니다. 자본의 이윤을 보장해주기 위해 발악하는 박근혜 정권, 이 정권을 퇴진시켜야 합니다. 민영화를 당장 중단해야 하고, 비정규직은 철폐되어야 마땅하며, 노조탄압은 사라져야 합니다. 그리고 이윤보다 생명이, 인간이 중시되는 사회를 건설해야 합니다.

가만히 있어! 우리가 하고 싶은 말입니다

지난 2일, 새누리당 국회의원 조원진은 세월호 유가족에게 “가만히 좀 있어!”라는 고성을 질렀습니다. 정몽준의 아들이 몸소 보여준 것과 같이 이 나라 지배계급의 참으로 야만스럽고 ‘미개한’ 인식을 드러내는 사건이었습니다. 그의 사진과 해당 발언 내용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이 사회 현실을 떠올렸습니다. 그것은 이 사회 지배자들이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보여 온 태도와 너무나 닮아있었습니다. 신성여객 버스노동자였던 진기승 열사는 자결하기 전 ‘이제는 노동운동 같은 거 하지 않을 테니 제발 복직시켜 달라’고 자본가에게 몇 번씩이나 무릎을 꿇어야 했습니다. ‘부산 시민의 좋은 친구’라던 생탁 막걸리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에게 휴일에 일을 시키면서 밥 대신 고구마를 끼니로 주었습니다. 세월호 참사에 항의하면서 이윤보다 인간을 위한 사회를 요구했던 거리의 노동자들은 물대포를 맞아야 했습니다.

우리를 무시하는 그들은 우리가 울타리 속의 온순한 시민이 되기를, 가만히 있기를 요구합니다. 그렇지 않았을 때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온갖 징계와 해고 서류, 고구마 혹은 물대포입니다. 그러나 가만히 있어야 할 것은 우리가 아닌 바로 이 사회 지배자들입니다. 그들이 오만하게 날뛰며 행하는 그 매일 같은 학살을, 탄압을 멈추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파괴하고 규제완화, 민영화, 비정규직으로 세월호 참사를 불러온 자본과 박근혜 정권, 그들의 지배가 지금 당장 중단되어야 합니다.

이제 자본주의 착취와 탄압을 온 몸으로 겪는 노동자들의 집단적인 힘이 필요합니다. 7.22 노동자 총파업 주간에 박근혜 퇴진 정치총파업이 성사될 때, 이 절망의 고리를 끊어내는 투쟁이 시작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학구조조정과 대학기업화로 고통 받는 대학생들 역시 사회를 바꾸는 행동에 나서려고 합니다. 이윤이 아닌 생명이라는 우리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발로 뛸 것입니다. 대학생들이 노동해방을 당당하게 내걸고 억압의 현실을 바꾸기 위해 투쟁할 것입니다.

이번 선봉대 기간 동안 우리는 밀양 송전탑 건설 저지 투쟁에 다시 연대합니다. 만약 “당신들이 우리를 도와줄 수 있는가?”라고 물었던 그 주민을 다시 뵐 수 있다면 그때 하지 못했던 이 말을 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당신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당신들을 도와준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도움을 기다리는 대신 우리 스스로가 세상을 바꾸어야 합니다. 동지들과 함께 연대하고 싸우며 노동해방 세상, 평등세상을 더불어 만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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